오늘 제 17대 이명박대통령이 취임했다. 먼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축하를 드린다. 부디 청년들이 희망을 꿈꿀 수 있고, 서민들도 신명낼 수 있는 선진 한국을 만들어 주기 바란다. 부디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 주고, 민족의 자존심을 만방에 떨쳐 주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반대한 이들도 기꺼이 이명박대통령을 인정하면서, 소모적인 정쟁을 넘어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어제로 5년 임기를 마친 노무현 전대통령은 처음부터 반대자들에 의해 대통령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여러 차례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명문대 출신이 아니어서, 아니 상고 출신이어서, 당시 야당 내에서도 비주류 출신 대통령이어서 그랬다고 많은 정치평론가들도 분석했다.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불행이었지만, 우리 사회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도 불행이었다. 역사상 유례없는 대통령 탄핵을 겪어야 했으며, 임기 내내 소모적인 갈등으로 아까운 국력을 소진해야 했다.
"미숙한 민주주의 고통, 노무현 정권으로 끝나야 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취약한 민주주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많은 정치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평화적 정권교체로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민주적 절차가 낳은 결과에 모두가 승복하는데서 완결되는 것이다. 제도적 정권교체는 이루어졌지만, 심리적 동의와 내면의 승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 그것은 지난 5년의 한국 민주주의가 실은 매우 불완전하고 미숙한 민주주의였음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미숙한 민주주의로 인한 고통과 불행은 지난 노무현정권으로 끝나야 한다. 투표율이 낮았다느니, 지지 투표자가 전체 국민의 30% 정도에 지나지 않았느니 하는 것으로, 이명박대통령이 부정되어서는 안된다. 이명박대통령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과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서 그렇다.
"검증 안된 정책들, 대통령 됐다고 그대로 주장하면 넌센스"
그렇다고 대통령의 정책들이 그대로 다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권력의 형성과정 뿐만 아니라, 권력의 집행 과정도 민주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언론 자유와 다수결 원리, 3권 분립과 법치주의 등이 권력의 행사 과정에서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것들은 민주주의의 최소한이다. 21세기 민주주의에서는 소수자에 대한 존중(소수자 민주주의), 민간의 정책결정 과정에의 참여(참여민주주의), 민-관 파트너십(거버넌스), 토론민주주의, 사회적 타협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정상적 절차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는 민간의 의견과 이해가 꾸준히 반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책결정 과정과 집행 과정은 비판과 검증에도 늘 노출되어 있어야 한다. 소수 의견이라고 묵살되어서도 안된다. 밀어붙이기나 지시형의 강압적 리더십이 아니라 설득과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조정형 리더십이어야 한다.
특히 이명박대통령의 정책은 대선 과정에서 제대로 된 토론과 검증을 거치지 못했다. 역대 선거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정책 경쟁이 실종된 선거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통령의 공약들도 꼼꼼히 검증받고 토론되어야 한다. 대통령으로 당선됐으니, 모든 공약들과 새 정부의 정책들이 그대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넌센스다.
"언론도 제대로 된 비판.검증 서둘러야"
새 정부도 그러한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국민적 토론을 존중해야 한다. 비판적 여론에도 귀 기울여야 하며, 비판적 의견과 소수자의 견해도 정책결정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당연히 언론들도 제대로 된 비판과 검증을 서둘러야 한다.
그 외에도 오늘부터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이명박정부에 몇 가지 주문이 없을 수 없다.
이명박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그리고 대한민국이 성공하는 5년이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인수위원회 시절에 보인 우려스러운 행태들이 적지 않아서 더욱 그렇다.
"설익은 정책 남발...조급증을 버려라"
먼저 이명박정부는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인수위원회가 두 달 가까이 보여준 실망스러운 행태의 중심에는 설익은 정책들을 남발하는 조급증과 아마추어리즘이 있었다. 임기 중에 대운하도 마치고, 경제도 살리고, 교육도 바꿔놓겠다는 조급한 생각을 버리는 것이 좋다. 임기 내에 성과를 내놓겠다는 무리한 목표보다는 민주주의의 원칙과 절차와 과정을 충실히 지켜 가면서, 먼 미래를 위한 초석을 다져 놓겠다고 접근하는 것이 좋다.
목표와 성과에만 매몰되어 절차와 과정을 소홀히 하면서 조급하게 일을 추진하다가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고, 차근차근 일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SKY.고소영 정권?...대통령 최고의 가치는 사회통합"
대통령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국정 목표 가운데 하나는 국민통합이어야 한다.
특히 분열로 인해 추악한 비극을 여러 차례 겪어야 했던 우리 사회에서 국민통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반도의 민족 분열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데 온 정성과 지혜를 발휘해야 하며, 지역간(영호남간, 수도권과 비수도권간) 분열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도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IMF 외환위기 이후 심각해져 온 계층간 분열, 양극화의 완화를 위해서도 정책 역량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대통령과 인수위가 보여준 정책이나 행보를 보면, 태산같은 걱정이 앞서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존의 분열과 분단에 대한 철학적 문제의식이 매우 취약해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분열과 분단의 구조로부터 이익을 챙기는 기득권층(극우 분단주의자, 부동산 재벌, 영남 엘리뜨, 친미 엘리뜨)의 이해를 적극 대변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첫 인사 발표가 있자마자, SKY(소망교회-고려대학교-영남) 정권, 고.소.영(고려대학교-소망교회-영남) 정권, 강남 정권, 부동산 정권 등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업체의 대표는 영리를 위해 그럴 수도 있고, 한 정당이나 정파의 대표 역시 정당이나 정파의 지지기반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이 되고 국정을 책임지고 나서까지 그래서는 안된다.
대통령은 모름지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소외된 지역을 일으켜 세우며, 북녘 동포의 배고픔과 고통에 대해서도 함께 아파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회 통합은 많은 대가를 치르고서도 이뤄내지 않으면 안되는 대통령과 국가의 최고 가치여야 하는 것이다.
"자신 만이 선(善)인가?...밀어붙이기는 안된다"
며칠 전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워낙 사건이 많고 상식이 팽개쳐지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이번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대통령의 말이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대운하는 반대가 많더라도 밀고 가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라면 정말이지 걱정이다. 반대 의견을 반대를 위한 반대로 몰아붙이고, 정치적 동기를 가진 반대로 폄하하면서 자신만이 선(善)이고 자신만이 국가를 생각한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독선이다. 밀어붙이기로 국가를 이끌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대한민국이 그런 수준을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다.
"부도덕과 오만을 경계하라"
많은 국민이 경제에 대한 기대로 이명박대통령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대통령과 정부는 그것을 도덕에 대한 경시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이명박정부에서도 장관이나 국가 지도자들은 부동산 투기에서 자유로와야 하며, 표절시비나 각종 부도덕한 의혹들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 경제만 살려내면 된다는 사고는 정권의 실패뿐만 아니라, 국가의 품격과 사회통합력과 국가경쟁력마저 떨어뜨리고 말 치명적인 함정이다.
오만도 금물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오만은 누구에게나 독이지만, 특히 권력에게는 경계 목록 1호임에 틀림없다. 권력은 끊임없이 겸손해야 한다. 하루에 세 번씩 경청하는 자세, 섬기는 자세, 봉사하는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옷매무새와 마음가짐을 가다듬지 않으면 안된다.
"민주개혁 10년의 정책, 승계와 극복의 과제를 분별하라"
지난 두 달여의 인수위는 마치 점령군처럼 비친 면이 없지 않았다. 그것은 국가를 위해서는 비극이다. 정권은 교체됐지만, 과거 10년의 민주개혁 정부들의 정책이 송두리째 뒤집혀서는 안된다. 이전 정부의 정책들은 극복되어야 할 것도 있지만, 승계되어야 할 것들도 적지 않다. 민주주의의 진전, 한반도 평화 정책, 권위주의 청산, 정경유착의 척결, 국가균형발전 정책 등이 그것이다.
이전 정부의 정책이기 때문에 버리려 한다면, 속좁은 정권으로 비판받을 것을 넘어, 국가적 비극을 낳게 될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이전 정부들의 성공과 실패, 남겨진 과제들을 정확하게 분석해 내고, 승계의 과제와 극복의 과제들을 잘 분별해 추진해야 할 것이다.
[홍덕률의 시사칼럼 75]
홍덕률(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 사회학과. 대구사회연구소 소장. drh1214@hanmail.net)
(이 글은, 2008년 2월 25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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