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배우 김재만이 극을 쓰고 연출을 맡은 연극 <발칙한 놈들>이 지금 ‘예술극장 온’에서 펼쳐지고 있다. 지난 2월 26일부터 오는 3월 22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공연은 올해로 100년이 되는 신극의 역사를 기념하고 그 시간동안 연극이라는 토양위에 꽃을 피워온 수많은 연극 선 후배들에게 헌정하고자 기획되었다. 특히 창작 초연인 <발칙한 놈들>에 이어 4월부터 두 번째 공연 <헛소동>이 바통을 받아 지역의 중견 배우들이 총 출동, 신극 역사의 오늘에 선 배우들의 ‘열전’을 보여 줄 예정이다.
어두운 무대에 스포트라이트가 불 밝히면 한명의 사내가 뛰어나와 말한다.
"저는 기필코라고 합니다. 네, 제 이름이 기필코입니다. 이상하죠."
그가 퇴장하자 여장을 한 사내가 통통 달려 나와 말한다.
"성자에요, 양성자. 우리 엄마가 이번에는 꼭 딸을 낳아야지 하면서 이름먼저 지어 놓으셨대요. 근데 나 같은 괴물이 태어난거죠." 다시 퇴장.
그리고 한 사내가 달려 나와 말한다.
"심한입니다. 한, 심한입니다. 마음 심자에 나라 한자,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리라고 우리 할아버지께서 직접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퇴장과 함께 암전, 무대가 밝아지면 세 명의 사내가 무대 위 세 개의 의자에 속옷차림으로 앉았다. 기필코, 양성자, 한심한, 남자들.
남자가 말하는 여자, 남자가 말하는 남자 이야기
연극 ‘발칙한 놈들’은 남자들이 이야기하는 여자 이야기다.
어머니, 아내, 딸, 그리고 엄마를 닮은 여자, 혹은 모든 여자들까지. 여자는 굴절되고 일방적으로 몰아세워진다.
연극 ‘발칙한 놈들’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남자가 말하는 남자 이야기다. 아버지, 자식, 남편으로서 남자인 자신을 드러낸다.
연극 ‘발칙한 놈들’은 여자 이야기를 하는 남자,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남자가 이야기하는 가족 이야기다. 드러내고 굴절되고 몰아세우고 상처받고 위로받고 분노하고 결국 파국에 이르는 개인들을 통한 가족 이야기다.
기필코, 양성자, 한심한, 남자들. 이름들은 캐릭터를 각인시키는 키워드가 되고 이어질 이야기를 짐작케 하는 메시지가 된다. 배우들은 그들의 트라우마를 그대로 드러낸다.
배우와 무대, 그리고 열전
배역은 3개다. 오직 하나의 작품에 여덟 명의 남자 배우가 등장한다. 여덟 명의 배우가 배역 3개를 놓고 각축을 벌인다. 여덟 명이 만드는 3인 3색은 협력이자 열전이다. 극은 등장인물의 성격과 감성, 호흡, 행동양식에 배우들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쓰여 졌다. 신파가 나오고 노래를 부르고 무용을 한다.
3명의 배역이라 했지만 한명이 더 있다. 중간을 넘어서 마지막으로 갈 즈음 불쑥 등장하는 흰 가운의 의사. 서너 마디의 대사를 읊고는 퇴장하는 까메오다. 연극 <발칙한 놈들>에는 총 19명의 까메오가 출연한다. 한의사에서부터 아나운서, 회사원, 가정주부, 교사 등 일반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객은 매번 다른 의사를 만난다.
무대의 배경이 ‘비뇨기과’라는 것은 자료를 보기 전에는 솔직히 알지 못했다. 정신병동인가, 감옥인가 하는 생각이 언뜻 들기는 했지만 극이 진행 될수록 배경은 중요치 않았다. 배우열전이라는 말 대로 극 보다 배우들에 열중케 하는 면이 있었다. 배우들의 몸짓, 대사, 표정에 의해 배경은 수시로 바뀌었고 무대는 채워졌다. 숨 막히게 웃었고 꾹꾹 눌러 참다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극의 메시지가 주는 감정적인 반응이 아닌 배우들의 연기가 준 반응이었다.
무릎을 두드리면 발이 튀어오르듯.
고전극에서 보았던 “오 내사랑, 당신을 따르겠어요” 가슴에 칼을 푹 찔러 넣는 류의 장면에 더 이상 눈물이 펑펑 솟는 일이 드물어진 것은 그 상투성과 동시에 건조해진 심장 때문일지 모른다. 때문에 <발칙한 놈들>의 파국이 우발적인 살해나 목을 매다는 장면으로 ‘너무 나갔다’라는 생각, 상투적이라는 냉소를 가질 수 있겠지만, 결국 그러한 생각들을 말소시키는 것은 <발칙한 놈들>을 연기한 ‘발칙한 배우’들이다.
기필코, 양성자, 한심한 남자들은 발칙한 놈들이 아니다. 연극 <발칙한 놈들>은 ‘발칙한 배우’들의 ‘발칙한 연극’, ‘발칙한 열전’이다.
공연 정보
일시: 2008년 2월 26일- 3월 22일 저녁 8시 (일요일, 월요일은 공연이 없습니다)
장소: 예술극장 온(대구시청에서 동인파출소 중간쯤)
출연진 : 조영석, 손성호, 천정락, 박상희, 구주완, 강석호, 안건우, 김병수
입장료: 현매 20,000
연극 팁!
1. 예매를 하면 20% 할인된다. (당일 날 정오에 전화 예매를 했는데, 가능했다)
2. 날짜에 따라 출연 배우들이 다르다. 진정 배우들의 열전을 보고자 한다면 새로운 배우들의 극을 모두 봐 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겠다.
3. 4월에 시작되는 <헛소동>과 함께 통합권을 구입하면 30% 할인 된다. 이 외에도 여러 할인 방법이 있으니 알뜰하게 이용하자. (문의 : 053-424-8340)
글.사진 평화뉴스 류혜숙 문화전문기자 pnnews@pn.or.kr / archigoom@naver.com
(이 글은, 2008년 3월 6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