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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이들..어른들의 죄가 참 크다"
[주말에세이] 이은정
"그래도 그때는 구름과 노을에 부푼 계절도 있었는데.."
2008년 05월 16일 (금) 10:39:26 평화뉴스 pnnews@pn.or.kr
중2짜리 조카 녀석이 가출을 했다. 벌써 두 번째다. 처음 가출했을 땐 형부를 탓했다.
공부하기 싫은 녀석을 억지로 학원일정 짜가며 숨도 못쉬게 조아댔다고 형부를 닦달했다.
“원인을 알고 재발을 막기 위해선 청소년 상담이나 가족상담을 받는 게 좋겠다”면서.

헌데 정말 이번 가출은 나도 어리둥절했다.
하루에도 백번 넘게 기분이 시시때때로 바뀌는 녀석 때문에 집안 분위기도 매일 살얼음판이었지만, 그래도 별 탈 없이 팍팍한 중2생활에 적응해 가는 듯이 보였던 것이다.

학교 앞에서 우연히 부모와 맞닥뜨린 녀석은 “도저히 미안해서 얼굴을 못보겠어요.”하며 고개를 숙였다 한다.
그러면서도 집에 오자마자 새 휴대폰을 사 달라고 엄마를 졸라 대는 것이었다.

더욱이 기가 막히는 건, 가출한 이유가 자기 험담을 하고 돌아다니는 친구를 잡아서 혼내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중간고사를 코앞에 두고도 분해서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한다. 아마도 제일 좋아하고 친한 친구가 가출을 밥먹듯이 하는 녀석이다 보니 겸사겸사해서 친구 따라 같이 집을 나간 것 같았다. ‘시근머리’가 멀쩡한 듯하면서도 철딱서니 없는 짓을 되풀이하는 녀석의 심리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중학생들에게 방과 후 수업을 지도하는 한 엄마는 “그게 다 애들을 학교와 학원에 잡아두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루는 “너거들은 스트레스를 우째 푸노?”했더니 “공부시간에 친구랑 문자 주고받아요.” 하더란다. 가만히 보니 책상에 아주 작은 구멍을 파놓고 책상 안에 휴대폰을 집어넣어 그 구멍을 통해 수업 시간에도 문자를 주고받는단다. 알 수 없는 분노 때문에 학교 화장실 형광등을 다 깨뜨리고 다니는 애들도 있다. 심지어 형광등 갓을 들어내어 전선까지 끊어 내는 통에 수백만원의 돈이 들 정도라 한다.

나의 중학 시절을 곰곰이 떠올려봤다. 그랬다. 나 역시도 마음이 우글우글했었다.
치솟는 열정이 불쑥불쑥 차올라 어디에건 모든 걸 걸고 싶었다. 좋아하는 가수얼굴을 그림으로 그린다고 밤을 꼴딱 새기도 했고, 한밤중에 자다가 일어나 공연히 눈물을 펑펑 쏟기도 하고. 비오는 날 버스종점까지 무작정 실려갔다가 차비가 없어 구걸했던 일, 친구와 싸우고 시험을 엉망으로 쳤던 일, 노는 애들과 어울린다고 담임한테 출석부로 머리를 마구 맞았던 일, ‘점수 1점을 위해 친구와 경쟁해야 하는 학교가 싫다’고 일기에 적던 일, 매일 싸우는 부모님이 싫어서 밤늦도록 골목을 싸돌아다니던 일...

그래도 그때는 여유가 있었다. 입시준비는 고3쯤이나 돼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음악발표회나 무용발표회 연습을 했다. 중학생이 학원을 다닌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우리는 운동장에서 ‘오징어가생’도 하고 팝송을 외우기도 하면서 깔깔거릴 때가 더 많았다. 시험기간에는 한 집에 모여서 같이 밤새워 공부했다. 물론, 밤참 먹으면서 잡담 나눌 때가 훨씬 많았지만. 구름과 노을을 바라보며 부푼 계절을 보내곤 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 아이들의 생활은 정말 지옥이다.
입시경쟁이 훨씬 치열해졌고 공부스트레스가 더 많은 데다 몸의 성장은 훨씬 빨라졌고...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좁은 책상에 갇혀 학교와 학원을 전전긍긍하다가 컴퓨터 게임으로 그나마 위안을 찾게 되니 어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입시제도 탓만 하면서 그 질서에 편승하고 있는 어른들의 죄가 참 크다.


   
[주말 에세이 71]
이은정(전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이 글은, 2008년 5월 2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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