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 심상치 않다.
이를 계기로 시작된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위한 국민서명은 벌써 백만을 훌쩍 넘어섰다. 두 차례의 대규모 촛불행사가 열리자 정부는 불법이니 사법처리니 정치공세니 하며 여론을 눌러보려 하지만 민심이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촛불행사는 또 열리고 탄핵서명도 천만 명을 목표로 계속될 예정이다. 정부는 물리적인 탄압을 비롯해 강경한 대응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겠지만, 이는 자칫 범국민적 항쟁이라도 불러일으킬 분위기다.
그 와중에 다른 주요 사안들, 대운하, 의료보험 및 공공서비스 민영화, 소비자 물가 및 사교육비 폭등, 부자들을 위한 감세 정책, 지방분권 정책 백지화 등등 서민생활을 직접 괴롭힐 주요 문제들이 슬그머니 파묻힐까 걱정이다.
대선기간 중 BBK 문제에 유권자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동안 위장전입, 자녀 위장취업, 탈세 등 명확히 드러난 문제들마저 경제 살리기라는 실속 없는 구호 속에 파묻혔던 것과 비슷한 사태가 벌어질 것만 같다.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쉽게 용서하고 잘 잊는가.
"30개월 이상 위험부위까지..사료 수입과 비교도 되지 않는 미친 짓"
주요 문제들이 파묻히는 일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물론 실제로 광우병이 수입되는 사태다.
사료 등을 통해 광우병 인자가 국내에 들어올 가능성은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있어 왔다. 하지만 개나 고양이 사료로도 쓰지 않는다는 30개월 이상 된 소들의 위험부위까지 변변한 검역도 없이 들여오는 것은 사료 수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미친 짓이다. 미 농무부가 직접 나서서 안전을 광고한다고 해서, 비틀거리다 주저앉아 지게차에 떠밀려 가는 소들의 모습이 국민들의 뇌리에서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광우병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은 주요 언론을 통해 여론을 호도하고 국민들의 판단력을 마비시키려 드는 정부와 여당의 야무진 욕심이다. 여러 차례의 지방선거와 대선 및 총선 승리로 정부 여당은 나름의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 자신감이 이제 국민의 기억력과 판단력에 대한 습관적 과소평가로, 권력도취병의 전형적 증상인 오만과 독선으로 발전하고 있다. 집권세력의 독선은 독재정치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정치적 파멸로 치달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국민에게나 정치권에게나 모두 불행한 일이다.
"여차하면 '의료보험'도 없이 '광우병' 맞아들여야 할 처지"
독재정권이 탄생하고 유지되려면 적어도 상당수의 열성적 지지층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 여당이 내놓은 주요 정책들에 환호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 대다수 국민들은 오히려 인수위의 무능과 내각의 비도덕성에서 이미 이명박 정권의 본색을 목격했고, 부자와 대기업을 위한 그들만의 정책들을 보며 실망을 넘어 절망과 냉소에 빠져들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경제 살리기이고 한미동맹인지 국민들은 납득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여차하면 이제 의료보험도 없이 광우병을 맞아들여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덕분에 취임 두 달밖에 안 된 대통령의 지지율은 그 유례가 없는 30% 대이다. 여권의 깊은 반성이 필요할 때지만, 국민들은 그것도 별로 기대하지 않는 듯하다.
"집권하자마자 위기 맞은 정권...그들 스스로 자초하는 불행"
무능한 야당 혹은 진보세력이 여권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부추기거나 조직해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지금의 심각한 국면에서 국민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조차 확신시키지 못하고 있다. 진보정당은 둘로 쪼개져 한 동안 힘든 시절을 보내야 할 처지다. 그렇다고 당명조차 부끄러운 친박연대나 골수 보수당인 자유선진당이 여당과 차별화되는 대안을 내놓을 것 같지도 않다. 정치권에서 기대할 바가 없어 답답해진 국민들이 직접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를 얕은 정략적 계산에 따라 폄하하고 거스르는 정치집단에게는 미래가 없다.
지금이라도 국민들의 성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소수 기득권층이나 정치집단이 아니라 가난한 다수 국민들을 제대로 섬기라고 권하는 바다. 대운하, 의료보험 및 공공서비스 민영화, 공교육 파괴 정책들부터 백지화하고, 쇠고기 협상 다시 하지 않으면, 여권은 국회, 지방의회, 지방정부까지 장악하고도 집권하자마자 위기를 맞는 진기록을 세울 것 같다. 그들 스스로 자초하는 불행이다.
[홍승용 칼럼 38]
홍승용(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대구대 독문학 교수. garam2000@naver.com)
홍승용 교수님은,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나 강원도 원주와 춘천에서 자랐으며, 서울사대 독어과와 서울대 대학원을 거쳐 지난 ’83년부터 대구대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문예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미학이론], [부정변증법], [프리즘],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등의 역서와 [루카치 리얼리즘론 연구], [저항의 아름다움], [변혁주체] 등의 논문을 썼습니다.
(이 글은, 2008년 5월 6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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