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다른 지역이 얼마나 대구의 그런 푸념에 고개를 끄덕거려 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오히려 언론들은 새로 임명된 공기업 CEO의 절대 다수를 영남 출신이 점령했다고 아우성인 분위기이다.
대구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현실이 걱정스럽다면, 그래서 진정 답을 찾고 싶다면, 우선 냉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무엇을 보완하면 대구의 추락을 막아낼 수 있을지, 냉정하게 원인을 분석하고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필자의 분석으로는 대구의 낙후 원인은 중앙에 있지 않다. 내륙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조건도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대구소외론은 대개 정치적 의도를 숨긴 허위의식(이데올로기)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대구소외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이는 지역의 정치권과 관료, 그리고 지역의 언론이다. 대구의 낙후에 가장 크게 책임져야 할 대구사회 지도자들이 대구소외론을 가장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들의 숨은 의도는 면피하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의 정치인과 행정 관료들은 잘 된 것은 자기 공이고 잘 안되는 일은 늘 중앙 탓한다. 지역의 언론들도 지역민의 분노를 자극해 독자층을 확보하려 한다. 지역민이 대구소외론을 믿어주면 줄수록 자신들은 땅 짚고 헤엄치기다. 문제는 그로 인해 대구가 계속 낙후될 수밖에 없다는데 있다. 대구 낙후의 원인을 잘못 짚고서야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대구가 계속 낙후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우리 내부에 있다. 중앙의 권력구조와 지정학적 조건이 때에 따라서는 대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일 수 있으되, 결정적인 원인은 아닌 것이다. 결정적인 원인은 우리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첫째, 우리에게는 비전이 없다. 우리 대구를 어떤 도시로 끌고 가자는데 대한 공유된 비전이 없는 것이다. 대구가 낙후되고 있는 현실에 이보다 더 큰 원인이 어디 있겠는가? 그 책임은 넓게는 대구의 여론 주도층에, 그리고 핵심적으로는 대구시와 시장에게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니, 다른 경쟁 도시가 뭔가를 하려 한다는 소문이 들리면, 중앙정부에서 무슨 국책사업을 계획한다는 소리가 들리면, 자칭 어느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람이 어떤 그럴듯해 보이는 그림을 제시하면, 대구시가 통째로 휩쓸리고, 그러다가 실패하고, 아니면 말고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침몰해 가고 있는 것이다. 철학이나 신념을 담고 있는 계획도 아니고, 미래비전으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된 정책도 아니며, 지역민의 공감대 위에서 마련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중앙정부를 설득하고 중앙정부 예산을 따올 수 있겠는가?
둘째, 대구 공무원 사회의 무사안일과 나태가 또한 문제다. 적극적인 도전정신을 읽을 수가 없다. 뭔가 해보자는 의욕도 충만해 보이지 않는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열심히 공부하고 익히며 소화해서, 대구를 그에 맞춰가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냥 편안한 월급쟁이로 만족하려 한다. 대구를 살려내겠다는 책임감도, 의욕과 문제의식도 엿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래서는 아무리 좋은 정치적 조건이라 할지라도 대구가 살아날 수 없다.
셋째, 기획력이 부족하다. 예컨대, 어떤 사업을 기획할 경우, 특히 중앙정부를 설득해서 중앙정부 예산을 따내야 할 경우, 사업의 필요성, 타당성, 경제성, 파급효과 등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논리적 설득력을 높여 상대를 설득해 냄은 물론 나아가 상대를 적극적인 협조자로 이끌어 내야 하는데, 그런 기획력이 부족한 것이다. 대구가 지금 힘들고, 대구에는 이 사업이 필요하니 도와 달라고 매달리는 식이다. 민주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는 설득력이요 소통의 능력이다. 그런데 설득력은, 이 사업이 당신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당신이 갖고 있는 어떤 고민을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상대의 관점에서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늘 나의 관점, 나의 입장에서 내 할 얘기만 하고 만다. 그것은 설득력과 소통의 능력과 기획력에 있어서 낙제다. 대구시 공무원의 기획력을 높일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넷째, 시민사회와 함께 하는 개방적 리더십, 거버넌스식의 행정 문화가 매우 취약한 것도 문제다. 중앙정부의 예산을 따낸 경우라도 지역 시민사회의 반대에 부딪치거나 지역 시민사회 및 전문가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없는 경우, 그 사업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지금은 협치(Private-Public Partnership, Governance)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대구를 위해 필요한 사업이니, 무조건 따라와 주고 지지해 달라고 하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한 시대인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대구 공무원사회는 거버넌스의 중요성, 민-관 파트너십의 필요성에 대해 너무 둔감하다. 시민사회를 경계하는 눈치이고, 협치의 프로세스를 거추장스럽게 여기기 일쑤다. 이래서는 대구가 눈에 띄는 사업을 기획해 낼 수도, 그 사업을 성공시킬 수도 없다.
다섯째, 위의 몇 가지 주문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시장이 먼저 문제의식과 철학을 갖고 해결해 보겠노라고 팔을 걷어부쳐야 한다. 최근(7월 22일), 시장과 시 간부진이 시민사회단체 간부들과 간담회 자리를 가진 것은 만시지탄의 아쉬움이 있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그 자리가 대구 낙후의 원인을 아프지만, 우리 안에서 찾아 차근차근 해결해 가는 첫 발이었기를 기대해 본다.
[홍덕률의 시사칼럼 78]
홍덕률(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 사회학과. 대구사회연구소 소장. drh1214@hanmail.net)
(이 글은 2008년 7월 29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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