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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악한 시대에 건강하게 버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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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용 칼럼]
"각자의 위치에서 독창적이고 끈질긴 싸움의 미덕을 발휘하자"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 동안 꿈꿔온 일들을 하나하나 회심의 미소를 띠며 추진하고 있다. 그 추진력은 이미 예상을 뛰어넘어 버렸다.

촛불이 바다를 이루든 말든, 중고등학교 학생들만 아니라 초등학교 어린이들까지 감히 대통령을 조롱하고 욕하든 말든 아랑곳없이, 미제 쇠고기는 수입되고, 남북관계는 악화 일로로 치닫고,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에 대한 무력진압은 일상화되었다.
부자들을 위한 세제개편과 공기업민영화와 언론장악은 어김없이 진행되고 있다. 운하를 위한 삽질도 정말 포기한 것인지 여론 눈치 좀 보다 언제 다시 시작될지 장담할 수 없다.

야당들은 어느 문제 하나 효과적으로 풀어내지도, 실감나게 쟁점화하지도 못하고 있다. 아예 그 존재감조차 희미해져가고 있다. 이제 정부와 한나라당은 야당이나 언론의 발목잡기 때문에 할 일 못한다는 말을 어디서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유례없이 좋은 환경 속에서 하고 싶은 대로 일을 밀어붙이고 있으니 그 결과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욕설과 냉소만으로 시대 문제를 풀 수는 없다"

물론 이는 그래야 마땅하다는 당위론일 뿐이다. 경제가 아무리 침체되고 설사 서민생활이 생지옥이 되어도, 그 책임을 실제로 정부와 한나라당이 떠맡으려 들 것 같지도 않다. 미국 대통령과 공동으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면서 단 몇 초도 안 되어 들통이 나는 거짓말을 대통령이 거리낌 없이 해치울 수 있는데, 무엇인들 믿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아무리 오랜 세월 통념으로 굳어진 게임의 규칙이라도 일단 의심의 눈으로 다시 보면서, 어떤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다고 각오하는 것이 이 시대를 버텨내는 건강법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욕설과 냉소만으로 시대 문제를 풀 수는 없다. 현정권이 구사하는 비논리와 무리수들은 조만간 부메랑이 되리라 굳게 믿고, 다수 국민이 함께 편히 갈 만한 길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 좋은 길 찾아가기는 장애 요인들을 미리 확인하고 제거하면서, 동시에 힘든 고개 넘을 에너지를 찾아내고 살려내는 일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가장 중요한 무기로는 다수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 혹은 무기력을 빼먹을 수 없다. 정치적 불만이 합당한 정치의식과 결합되지 못하면 엉뚱한 해답에 현혹되어 더 큰 불행과 체념을 초래하기 일쑤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서민들의 불만이 이명박 정부 탄생의 주요 요인이 되지 않았던가. 뿐만 아니라 현 정부가 노골적으로 추진하는 양극화 강화 정책들의 최대 피해자들 다수는 이명박의 대안으로 그보다 더 원칙적으로 보수파인(양극화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는) 박근혜나 이회창을 떠올릴 것 같다. ‘서민’이니 ‘원칙’이니 하는 수사에 언제까지 끌려다닐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국민 정치의식의 발전은 이 시대의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사실 이 부분에서 현 정부는 나름으로 큰 공적을 세웠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선량한 국민들의 정치의식을 폭발시켜버린 것이다. 코앞의 이익과 재미에 매달려도 좋았던 무수한 네티즌들이 이명박 현상 덕분에 어쩔 수 없이 나라 걱정으로 밤새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따뜻한 진보...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킬지 '진보'의 이름으로 고민하자"

물론 사태는 별로 낙관적이지 못하다. 주요 언론만 아니라 인터넷까지 대략 평정된 후, 어떤 매체로 얼마나 효과적인 의식 싸움을 벌일 것인지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단일한 정답도 없고, 쉬울 리도 없지만, 누구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그 위치에 적합한 독창적이고 끈질긴 싸움의 미덕을 발휘하는 만큼 미래는 변할 것이다.

싸움의 규칙이 공정할 리 없다. 여차하면 양비론의 구정물 웅덩이에 빠지거나 빨간 페인트를 뒤집어 쓸 수도 있다. 사찰과 고문의 유령들이 출현할 날에도 미리미리 대비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듯하다. 이명박 시대에 무엇인들 불가능하랴.

그렇다면 승률은 바닥이고 변화의 가능성은 희박하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현정부가 밀어붙이는 정책들의 필연적 결과들, 즉 다수 서민들의 뼛속까지 새겨지는 극단적 양극화와 견디기 어려운 반인권적 경쟁구조와 도덕적 혼돈상태야말로 현정부의 최대 적수가 될 것이다. 이 재앙의 구조는 결코 언론장악이나 백골단 부활 혹은 어떤 수사법으로도 덮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 진보 야당이 지금보다 더 상대하기 좋은 적수를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민주와 민족, 인권과 평화, 분배와 환경의 이름 아래, 한 마디로 ‘따뜻한 진보’의 정신으로 헌신적으로 힘을 모아가면 오늘의 까탈스러운 싸이코패스 시대를 뛰어넘을 날도 금방 다가올 것이다. 그러기 위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킬지 진보의 이름으로 고민하자.

[홍승용 칼럼 40]
홍승용(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대구대 독문학 교수. garam2000@naver.com)

홍승용 교수님은,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나 강원도 원주와 춘천에서 자랐으며, 서울사대 독어과와 서울대 대학원을 거쳐 지난 ’83년부터 대구대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문예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미학이론], [부정변증법], [프리즘],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등의 역서와 [루카치 리얼리즘론 연구], [저항의 아름다움], [변혁주체] 등의 논문을 썼습니다.



(이 글은, 2008년 8월 18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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