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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흘러 온 생애 다시 흘러 갑니다"
[시인의 편지2] 김윤현..."강처럼 흘러도 강물처럼.."
2008년 11월 07일 (금) 10:40:28 평화뉴스 pnnews@pn.or.kr

산이 제 혼자 높이 솟아 있어도 외롭지 않듯이 강은 스스로 흘러도 쓸쓸해하지 않습니다. 산은 강이 아니어서 산으로 우뚝 서 있고, 강은 산이 아니어서 강으로 유유히 흘러갑니다. 강이 낮게 흘러가면 산은 강이 흘러가는 길을 막지 않고, 산이 높게 솟아 있으면 강은 산을 비켜 낮게 흘러갑니다. 산은 한 걸음 움직이지 못해도 강이 되고 싶은 생각을 한 적 없듯이 잠시라도 머무르지 못하는 강은 산꼭대기에 이르고 싶은 욕심 또한 없습니다. 산은 오르고 싶을 때 높이 솟아 내려 보지 않듯이 강은 떠나고 싶을 때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높은 곳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산은 강이 흘러가는 길을 열어 주듯이 강은 산을 넘지 않고 돌고 돌아 먼 길을 갑니다. 산이 제 몸 여미고 가슴 열어 숲을 키우고 황조롱이, 다람쥐,  고라니를 보듬어 줄 때, 강은 제 몸 길게 뉘고 뉘어 갈겨니, 동자개, 모래무지를 품에 안고 기릅니다. 잘 키운 나무의 아름다운 단풍이 산의 자랑이라면, 맑게 정화시킨 물은 강의 희망이겠습니다. 산이 쉼 없이 강에게 물을 흘려주는 동안, 강은 한 방울 물을 스스로 흘려버린 적이 없습니다. 변함이 없이 같은 자리에서 제 할 일을 다 하는 산은 의리와 중후함을 지녔다면, 막힘없이 어디에라도 흐르는 강은 사리에 통달하는 지혜를 머금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자도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고 말씀하셨을까요.

  강을 따라 흐르는 강물은 언제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가 언제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면 실정법을 어기기라도 한다는 듯합니다. 그렇다고 흘러가는 곳이 백 리 밖인지 천 리를 더 가야하는지 정한 것도 아닙니다. 흘러가는 곳이 미래의 삶을 보장한다는 기약도 없이 말입니다. 그러고도 제 몸은 낮출 대로 낮추고, 제 몸 버려서도 목마른 곳부터 먼저 적셔주니 헌신과 희생은 태생적이라 하겠습니다.

 좁은 가슴 부딪히며 흐르는 도랑보담도, 계곡도 없이 편안하게 일렁이는 시내보담도, 가슴을 활짝 펴서 한 물결로 위로 솟았다가 아래로 내려가고 아래로 흐르다가도 위를 떠받쳐주는 삶이어서 강은 큰 벌판도 쉬 건너고 먼 길에도 끝내 이르는가 봅니다. 흐르다가 앞길이 좀 막히면 늪을 이루며 참기도 하고, 흐르다가 댐에 이르면 머물러 자신을 들여다보며 삶의 깊이를 더 하기도 하지요. 끝내는 바다에 이른다는 희망으로 먼 하늘 더 높아지도록 낮은 몸가짐으로 강은 목자처럼 혼자 흐릅니다.


  강물은 높은 산을 불러 제 몸속 낮은 곳에 비쳐 강에다 맡겨두고 떠납니다. 아름다운 꽃을 불러가 강에다 건네주고 강물은 지나갑니다. 하늘이 맑고 깨끗하게 개이면 또 하늘을 강에다 내려놓고 강물은 흘러갑니다. 높은 것, 아름다운 것, 맑고 깨끗한 것을 뒤 따라 오는 강물이 좀 가져보라고 말입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홍수가 나거나 공사로 인하여 물이 흐려지면 제 몸 오래오래 굴리고 흘려 끝내 맑은 강을 이룹니다. 그러고 그 깨끗함을 강에다 맡겨두고 자신은 또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지요. 끝없이 흘러온 생애 다시 흘러갑니다. 두고 온 것들에 대한 미련이 생길까봐 흘러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제 소명 다하고 새벽 일찍 신자들 몰래 또 다른 임지로 떠나는 수녀 같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생애가 참 맑습니다.

 이런 강물을 보고 김영랑은 노래 불렀던가 봅니다.
“내 마음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 강물이 흐르네./돋쳐 오르는 아침 날빛이 뻔질한 / 은결을 돋우네. /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 강물이 흐르네”

   

 

 

[시인의 편지 2]  김윤현(시인, 한국작가회의 대구시지회장)

<분단시대>로 작품 활동. 시집 <들꽃을 엿듣다> 외. <사람의 문학> 편집위원. 대구 영진고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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