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학동으로 띄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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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편지] 박경조 시인
"세상에도 새살 돋고 꽃 피울 일, 그 또한 순정한 농심이라 믿으며.."

백학동으로 띄우는 편지
       - 학수에게
                
"올해는 그런대로 풍년 들었다
느그식구 뜨신밥 한번 해 먹으라고 내가 농사 지은 쌀 쪼매 보낸다
        2008년 11월 고향에서 학수가"

달서 우체국의 택배차가 방금 전해주고 간 쌀자루에 쑤-욱
넣어 보낸 엽서 한 장
새들논에 그루터기 총총 남기고 추수했을 이 쌀
"고향에서 학수가" 란 그 아련한 맺음말과 함께
올해도 거르지 않고 보내준 네 우정에 내가 뜨겁다

1950년대 대대로 천수답에 젖줄을 댄 아버지의 아버지
그 오랜 슬하에서 또래들로 태어나 유년을 함께 보낸 우리에게는
대우주였던 드넓은 하늘, 그 하늘 아래서 풀무질 멈추지 않고 성장하던
무성한 나뭇가지 따라 나는 그때 대처로 떠날 궁리만 했다

학수야,
그 시절에는 어느 집이든 여러 자식 중 한 둘은 남아
농사꾼의 대를 이어받는 것이 무언의 법칙이었지
너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고향에 남아 소 키우며 농사짓는
윗마을 청년과 결혼하여 삼십년 세월
이제는 근동에서도 내로라하는 축산농가로 자리 잡고
진정 농사꾼답게 고향에 뿌리내려 살아가는 모습이 미덥고 고맙지만
안쓰러운 맘은 왜인지...

학수야,
농촌으로 시집 올 신부감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다국적 신부를 맞이하는
풍경이 어제 오늘의 일 아니라고,
막상 논과 밭 팔아서 도시로 떠나가도
만만찮은 세상의 길 헤매기만 하다가
되돌아오지도 못하고 갈 곳도 잃어버린 그 벼랑 끝에서
고향의 노모에게 맡겨지는 아이들만 늘어난다니...

간간이 골목골목으로 아이들의 웃음소리 천진난만 하여도
왠지 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행복해보이지 않아 마음 아프다는 친구야,
어디 그 뿐인가
자고나면 수입 농축산물 홍수처럼 넘쳐 들어와
너의 내외 참 주눅들게 하는 이 시절에
빈집만 늘어가는 적막한 고향에도 무심히 겨울은 깊어 가겠네.

그래도 담장너머 발간 감홍시 까치밥으로 남겨두는 여유로
다시 해 바뀌면 세상사는 일에도 새살 돋고 꽃 피울 일
간절히 기도하는 네 마음 그 또한 순정한 농심이리라 오늘도 믿으며
이만  줄인다.

             이천팔 년 초겨울 대구에서 보낸다

 
 




[시인의 편지 5] 박경조 시인

경북 군위 출생. 2001년 계간 『사람의 문학』등단.
시집 <밥 한 봉지>. 『사람의 문학』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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