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9.12.6 금 22:23
> 뉴스 > 지난 기획.연재 | 시인의편지
   
"꽃 피는 금강산을 하루속히 보고 싶습니다"
이상번 시인..."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홍석중 선생께"
2008년 12월 05일 (금) 15:06:16 평화뉴스 pnnews@pn.or.kr
홍 선생님이래 안녕하십네까?

홍 선생님 동짓달 초여드레 아침, 우리 집 국화 밭에 흰 눈이 펄 펼 옵니다. 순희 처럼 흰 눈이 펄펄 옵니다. 아침부터 까치가 울어댑니다. 도회지에도 까치가 와서 울어쌌고 순희 같은 눈이 오는 정경이 그래도 사람 냄새가 나는 도회지라고 하고 싶군요. 북에는 눈이 더 많이 오는 곳이라서 눈이 성가시지는 않는지요, 제가 사는 대구에는 눈이 귀하여 정겹기만 하답니다.

 선생님은 나이로 말하자면 청운의 푸른 꿈을 꾸다가 요절한 잘 생긴 저의 삼촌 같은 나이 뻘의 분이십니다. 나이로도 그리 먼 거리의 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홍 선생님 선대의 어른들과는 문학을 하는 대선배로서 보자면 친근감이 가는 분들이십니다. 홍 선생님의 할아버지인 홍명희 선생의 대하소설 임꺽정을 읽은 독자요, 또한 내가 좋아하는 만해 한용운 스님과 아주 자별한 분이셔서 더욱 친근감이 있을 뿐만 아니라 홍명희 선생님 유묵 한 점을 소장 하고 있구먼 유, 그리고 당신의 아버지이신 홍기문 선생은 얼굴도 모르지만, 그 해박한 지식으로 저술하신 조선문화론을 읽었고 또 그 책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리조실록을 최초로 완역하신 분이라는 학덕 하나만으로도 존경해야할 어른이시지요,

 그리고 홍 선생님은 남에서 유일하게 북의 문인이 상(만해문학상)을 받은 소설 황진이를 아주 진하게 읽었구먼 유, 이러고 보면 충북 괴산의 명문가이신 선생님의 가문과는 인연이 지중하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저의 선대도 충청도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생가가 있는 충북 괴산 문진사댁에 선생님의 조부이신 홍명희 선생이 드나드셨다는 바로 그 집 손자 나이가 선생님과 거의 비슷한데, 그 분이 국립대학교 우리나라 사학계의 원로이십니다. 그 분과 자주 만나야하는 일이 있어서 만나면 홍 선생님의 집안 얘기를 많이 듣기도 하고, 또한 증조부이신 홍범식 선생은 을사늑약 때 금산군수 재직 시 울분을 참지 못해 자결하신 살신성인으로서 존경해서, 마치 친척이라도 되는 듯합니다. 뭐 단군 할아버지 자손들이니 모두 친척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으로 이렇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분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3대를 걸쳐 내리 독자라는 사실은 어떻구요.

 선생님, 사실 이런 말씀을 드리려고 편지를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대구의 지식인 몇 분들이 인터넷 신문 <평화뉴스>의 “시인의 편지”에 간단한 산문 한 토막만 보내면 되는데, 시인의 편지란 제목과 같이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제목이 북의 정식 명칭을 다 써서 편지를 쓰는 사람은 아마 저 혼자 일 것입니다. 우리의 현대사는 분단이 되면서 철저히 원수로 살아오길 반세기가 넘었습니다. 북은 북한, 북괴 남은 남조선, 남반부괴뢰도당 이라는 호칭은 어릴 때 귀에 못이 박혀 아주 보통명사로 들려옵니다. 북에서도 남조선이란 말 대신에 대한민국이라고 호칭해 줬으면 합니다. 그러나 21세기를 채워가면서까지 한민족이 이렇게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서로를 인정해 주자는 생각입니다. 굳이 남북 간의 대화록과 충돌한 일지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사람의 상식이 통하는 그러한 대화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뭐 지배 이데올로기 같은 것은 이제 집어치워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유사 이래 어느 족속이 내왕도 편지도 못하고 1세기를 맞이한답니까. 이제 과거 같은 것은 후손들에게 맞기고, 우선 이산가족들의 내왕과 편지 같은 것은 할 수 있는 상식이 통하는 그러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서로 믿고 도울 수 있는 일부터 교류하다가 보면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입니다. 굳이 뭐 우리 살아생전에 통일 되었으면 좋겠지만, 통일이란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충돌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쪽이 한 쪽을 삼킨다는 서로 우리 쪽이 우월하다는 이러한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통일은 이루어 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일련에 발생하고 있는 남북 간의 대화 두절도 보면 서로 그러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풍선 삐라만 생각해도 그렀습니다. 북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 탈출한 자들과 극우보수의자들이 풍선에 김정일 위원장을 비롯해서 북의 체제에 반하는 메시지와 풍선 안에 1달러 혹은 중국 돈 지폐를 넣어서 보낸다고 합니다. 북에서는 어려운 처지에 중국 돈 1원과 미국 돈 1달러면 엄청 큰돈이고 이 돈만 있어도 먹고 살 수 있는 옥수수 한 달 치라니 혹시 횡재나 할까 해서 혈안이 되어있고, 당국에서는 이것을 인민들이 못 가져가게 군인들을 동원해서 숲속을 샅샅이 뒤진다고 하니 이거이 어디 사람이 할 짓입네까?

 물론 북이 우리보다 잘 살았을 때 삐라공세는 지금 남한에서 하는 짓 보다 더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저도 어릴 적 나무하러 산에 갔다가 김일성 주석의 사진과 깨알 같은 글자가 적힌 삐라를 주워서 선생님에게 준 적이 있습니다만, 화해를 위해서는 어느 한 쪽이 똑같아서는 화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나쁜 과거를 들추기만 하면 그것으로 끝이 되어버리는 것이 남북 간의 화해입니다.

 북에서 과거에 삐라를 보냈다하여, 남에서 또 삐라를 보낸다- 삐라 보내는 것을 뭐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반한다는 구실 하에 방조 한다는 것은, 정말 유치한 짓들이라고 생각 합니다. 지금 남에서도 세계적인 공황의 전초시기를 맞아 매우 어렵지만 북에서는 굶어 죽는 자가 속출할 정도로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이데올로기 지배체제라는 것이 인민이 굶어 죽는 것 정도는 아랑곳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그렇게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북에서는 개성공단에서 들어오는 외화와 금강산을 비롯한 관광으로 들어오는 엄청난 외화벌이 같은 것은 절대 절명인 지배체제의 균열 앞에는 있을 수 없다는, 울며 겨자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북의 당국으로서는 단호히 대처 할 수밖에 없는 실정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은 의문입니다만, 우리의 현대사에 어디 의문과 억울한 일이 한 둘이겠습니까. 북에서도 남측이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한 해명과 유감정도만이라도 표했으면 남북 간의 대화단절 같은 일은 피하였을 것입니다.

 저도 몇 년 전 여름에 꿈에도 그리던 아름다운 금강산에 들렀기 때문에, 다음에는 골격이 다 들어난 금강산을 가보기 위해 준비했다가 포기했구요.. 남북 간의 대화가 잘 풀려서 제가 좋아하는 겨울산은 못 보더라도 꽃 피는 춘삼월의 금강산을 하루속히 보고 싶습니다. 홍 선생님 부디 건강하시고 주체적으로 거기서 잘 사십시오. 저도 여기서 시 쓰며 잘 살겠습니다.

                     2008년 12월 5일(무자년 동짓달 초여드레)

                  칠곡(漆谷) 우붕가(牛棚家)에서 이상번 합장 올림

   





[시인의 편지 6] 이상번 시인

이상번 시인. 1954년 경북 청송 생. 1987년 대구경북민족문학회 창립회원이 되면서 시를 발표하기 시작. 1990년 우리시대 젊은 시인들 제4집에 "망월동 가는 길", "무등산 소낙비" 등으로 신인 당선. 시집 <스탑 더 워>. 한국작가회의 회원. 현대불교문협 회원. 대구참여연대운영위원. 대한불교청년회장과 만해사상실천선양회공동대표 역임.
이 글이 좋으시면 손가락 모양의 추천 버튼을 눌러주세요.
포털 daum view(블로그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평화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본 신문에 게재된 기사, 링크에 대한 모든 법적권리와 책임은 기사작성자 평화뉴스 에게 있습니다.
* 평화뉴스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신문윤리강령과 신문윤리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제호 : 평화뉴스 * 편집.발행인 : 유지웅 * 창간.발행일 : 2004년 2월 28일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대구 아00010 * 정기간행물 등록 연월일 : 2007년 3월 14일
(우)41266 대구시 동구 국채보상로 155길 54 (상가동 202호) | 대표전화 053-421-6151 | 팩스 0505-421-61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유지웅
Copyright 2008 평화뉴스. All rights reserved. 전자메일 pnnews@p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