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와 국채보상운동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철의 경제읽기] "금융세계화의 거품 구조, 한국의 경제주권 의식이 필요하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계기로 이미 세계금융질서의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금융 권력은 세계금융질서에 대한 개혁 요구를 묵살하고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원인을 동아시아 국가의 대내적 경제구조의 문제로 축소 왜곡시켜버렸다. 문제를 악화시킨 것은 동아시아 국가의 대내적 경제구조 개혁을 명분으로 동아시아 국가에 대해 세계금융질서로의 일방적 편입을 강요한 것이다. 한국은 동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선도적으로 세계금융질서로의 편입을 감행하였고 이것이 97년체제 성립의 배경이다.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갈등과 교착적 현상은 97년체제의 부산물이다. 97년체제 극복은 지금의 경제 운영 기조와는 다른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분명한 것은 한국사회가 1997년 이후 선택한 세계금융질서로의 편입의 속도와 방식을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유지하는 것은 97년체제의 위험성을 더욱 가중시킨다는 사실이다. 97년체제가 세계금융 권력의 무모한 탐욕과 그것이 야기한 거품(bubble) 경제의 환상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명백해졌다.

지난 세기의 세계경제 흐름을 조망해보면, 자본과 노동의 절묘한 타협의 결과로 탄생한 포디즘은 20세기 중반까지는 성공적으로 작동하였다. 그러나 ‘자본과 노동의 나태’는 포디즘의 작동 방식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그 유효성이 크게 도전받는 상황을 야기하였다. 포디즘의 위기는 자본 생산성 하락과 유효수요 부족 현상을 동시에 발생시켰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1980년대 중반이후 급속하게 진행된 금융세계화이다.

금융세계화를 통해 자본의 수익성이 보장되었으며, 파생상품 등으로 확대된 세계적인 금융유동성은 세계적인 유효 수요를 창조하였다. 세계의 경제 권력은 독점 금융자본에 집중되었으며 경제 운영방식에 있어 금융이 실물을 주도하는 현상이 초래되었다. 선진국과 신흥경제할 것 없이 국가정책을 담당하는 경제 엘리트는 금융 전문가로 채워졌다. 금융, 자본, 외환 시장 자유화는 금과옥조의 원리로 수용되었고 각국의 주식시장은 일반 투자가로 북적거렸다. 그러나 금융세계화는 탐욕에 의해 추동되었고 본질적으로 거품 경제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 세계경제가 직면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세계화가 만든 거품이 터지면서 발생하였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그 전조(前兆)적 사건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또다시 위기에 직면한 한국경제는 금융세계화가 초래한 거품 경제의 환상을 여전히 지워버리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 거품에 의존하여 성장의 기회를 잡겠다고 하는 바 이는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가 97년체제를 극복하고 나아가 세계경제가 재도약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20세기초 포디즘에 의해 실현되었던 것처럼 새로운 방식의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경제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체제를 모색하고 있다. 금융세계화와 금융혁신이라는 명분에 의해 조작된 거품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세계경제의 재생은 불가능하다. 세계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은 실물경제 자체의 새로운 내포적(內包的) 조정방식을 찾아가는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요체는 아마도 금융세계화의 신기루적 현상을 직시하는 지역 공동체 정신의 회복과, 자본의 탐욕을 대체하는 사회적 연대의식과 나눔(sharing)의 방식을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 재구성하는 방식의 발견일 것이다. 이는 결국 경제 주체들 간의 사회적 대타협을 전제로 가능하다.

우리가 다시 국채보상운동을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식민주의의 경제적 침탈구조를 꿰뚫어보고 일반 기층민이 자발적으로 참가한 경제주권회복운동이다. 자기중심을 확보하지 못한 채 금융세계화의 거품 구조로의 무분별한 편입을 추구하는 한국 경제는 국채보상운동이 상징하는 경제주권 의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제주권은 거품에 근거하고 있는 금융 세계화의 빠른 속도감 속에서 놓쳐버려도 되는 고루하고 창연한 옛것이 아니라, 이 때일수록 오히려 더욱더 강건히 붙들고 놓아서는 안 되는 중요한 가치이다.   

이와 관련하여 더욱 중요한 사실은 국채보상운동의 지역성(locality)이다.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에서 시작하여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그 운동의 진행방향이 지역에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금융세계화가 세계금융 권력의 중심으로부터 주변국으로 확산되는 종속적 지배력에 근거하고 있다면, 국채보상운동은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종국적으로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 의도를 무산시키고자 하는 자기중심성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세계화는 전통적인 국민국가의 와해라는 점에서 그 위험의 속성을 드러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지역성의 강화를 통해 그 위험성이 극복되는 양면성을 가진다. 국채보상운동은 지역이 중심이 되어 주체적 발신 기능을 하였다는 점에서 앞에서 강조한 지역 공동체 회복 정신과 깊은 관련성을 가진다.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이 21세기에 이르러 97년체제 극복 과제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일 것이다.        

국채보상운동에는 돈 많은 지역의 상공인으로부터 저잣거리의 거지에 이르기까지, 양반집 마나님에서 기방의 기생까지 모두가 함께 참가했다. 서구 근대의 시민계급이 제한된 사회계층으로 구성된 데 반해 국채 보상운동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모든 계층이 그야말로 대동(大同)의 정신을 발휘하였다. 국채보상운동에서 발견되는 이 대동의 정신과 자발적인 나눔 활동이야말로 고삐 풀린 자본의 탐욕적 속성을 무장해제할 수 있는 유일한 묘약이다.  

세계경제의 장기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자본주의 체제의 내포적 조정 방식은 결국 ‘희생의 교대’라는 원칙에 입각하여 경제주체 등 상호간 나눔의 방식을 재구성하는 수밖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사실은 점차 명백해지고 있다. 한국경제의 97년체제의 극복은 말할 것도 없고 현재 세계경제가 경험하고 있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탈출 방식도 결국 국채보상운동의 대동의 정신과 자발적인 나눔 활동을 지금 여기(here and now)에서 새롭게 재현해내는 것, 그것밖에 다른 도리는 없다.





[김영철의 경제읽기 19]
김영철(계명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 이 글은 2008년 12월 23일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건립 기념 심포지엄 ‘국채보상운동 정신으로 미래를 상상한다’에서 필자가 작성한 패널토론문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 편집자 )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