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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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연 시인..."그럼 안녕. 그게 그렇게 어렵다"

종종 ‘바쁠 때일수록 쉬어가라’란 말을 떠올린다. 얼마나 허둥대는 일상이었으면 스스로를 다독이고자 이런 말을 떠올릴까.  현대인들이 겪는 대표적인 증상이 있다면 ‘바쁨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일하는 것, 먹는 것, 노는 것, 하물며 만남도 이별도 바쁘다.
 바쁜 일상 가운데서 어쩌다가 한가한 시간을 가지게 되면 왠지 막막하고 불안해진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난 대구에서 유학을 했다. 지루한 학기를 마치고 방학을 하면 그날 안으로 두메산골 고향집으로 향했다. 그 길은 멀었다. 자취방에서 보따리를 챙겨 시외버스정류장엘 가야했고, 정해진 차를 타기위해서 하염없이 대합실 이쪽과 저쪽을 서성이게 했다. 덜컹대는 버스는 자주자주 멈춰 서서 손님을 내리고 태웠다. 그러다보면 고향집으로 향하는 면 단위 버스는 하루에 두세 번인 왕복이 이미 끝나버린 경우가 많았다. 구불텅구불텅 산길을 걸어가노라면 산 개울도 만나고, 토끼도 만나고, 꿩도 만나고, 등살 매끈한 노루를 만나기도 했다. 반가웠다. 다들 여전했다.

 유독 방학만은 여전하질 못해서 야금야금 빼먹은 날짜는 아득한 이별 앞에 나를 세우곤 했다. 그런 날 아침은 어김없이 입안이 까칠해져서 어머니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어머니의 당부는 길었다. 연탄불 꺼지지 않게 하라는 당부, 때 거르지 말라는 당부, 방문 잘 잠그라는 당부.......
 그 당부만큼이나 이별도 길었다. 동구 밖까지 함께 걷는 동안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에서 밑반찬이 든 보따리를 건네시며 폴폴 날리는 나의 귀밑머리를 말끔히 쓸어주심으로써 정해진 동행은 마침표를 찍었다.
 “연아, 엄마는 너를 믿는다.”

 어머니는 오래도록 느티나무 아래에 서계셨다. 간간히 돌아보면 손을 흔들며 무어라 말씀하셨지만 산바람에 섞여 알아들 수가 없었다. 나의 눈가는 쉬이 마르지 않았다. 나직한 언덕을 내려서면 더 이상 어머니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마루턱을 내려가기 전에 한 번 더 돌아서서 손을 흔들어보지만, 희미해진 모습은 흔드는 팔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만큼의 거리가 되었다.  
 어머니의 그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구행 버스를 타고, 고향은 아득히 멀어졌지만 메아리처럼 기억은 재생되었다. 마음 문 열면 지금도 생생하다.

 내게 어려운 일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이별이라 말 할 것이다. 굳이 사랑 후 이별이라느니 정든 이와의 오랜 이별을 말하고자함이 아니다. 문우를 만난 후 잘 가라 인사 할 때도 마음이 멍멍하여서 한 두 번씩은 돌아다본다. 하물며 행사장이나 교회에서조차도 누군가와의 작별인사를 나누기란 명쾌하지 못하다.
 어린시절 그 이별의 풍경이 가슴에 남아 있는 한 나는, 바쁜 현실에서 이별도 빠른 게 미덕이라 여기는 이 시대에 영영 촌스런 사람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 안녕.” 그게 그렇게 어렵다.

 

 

 

[시인의 편지 11]  김기연 시인

김기연 시인. 경북 의성 출생. 시집 [노을은 그리움으로 핀다], [소리에 젖다].
한국문인협회.대구시인협회.한국작가회의 회원. 현 대구시교육청 문학영재원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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