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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률 높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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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8일 지역대학의 한 교수가 자살했다는 보도와 함께, 또 3세의 아이와 함께 한 어머니가 동반자살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우리나라의 자살 증가율이 OECD국가들 중에 가장 높다고 하는데 자살소식이 매일 신문지면을 장식한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2002년 현재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인구 10만명당 18명인데, 10년전에 비해 두 배로 증가한 수치란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자살율이 18.5명으로 정점을 기록하다가 해마다 감소하는가 싶더니 2002년에 다시증가세로 돌아서고 있다. 이제 자살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면서 급기야 보건복지부에서는 1588-0000번을 운영해 자살예방전화로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거의 매일 신문 한부분을 차지하는 자살소식은, 이제 특정계층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전계층에 걸쳐서 나타나는 사건이다. 오죽하면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겠는가는 생각도 들지만 꼭 그 선택밖에 대안이 없었는가 하는 답답한 마음도 든다.

이 참에 부끄러운 얘기하나 하려 한다.
필자가 독일에 있을 때 하루 벌어 하루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오죽 하면 지도선생이 일주일에 3일 일하고 3일만 연구소에 나와서 자기 곁에서 공부하자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 한 달 생활비는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겨우 세미나를 쫒아가던 수준이라서 기본서적도 더듬더듬 몇 번 읽어야 하는 처지였었다. 그런 처지에 일주일에 3일공부는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수업시간엔 혼자 못쫒아가서 절망하고, 일할 때는 일을 제대로 못해 지쳐 서러운, 앞날이 보이지 않을 당시였다.

그 때 필자는 일하고 오면서 큰 호숫가에 자전거를 몰고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지치면 하늘보고 누워, 삶을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지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학교다닐 때 끄적인 철학도 떠올리고 소설과 시도 기억하면서 스스로 대단한 인생몽상가인냥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라는 책 여백어디든 내 생각을 적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다 잊어버렸지만 예전에 보고 들은 그 사고틀과 방법, 인문학적인 체험들이 그 팍팍한 시절의 돌파구로서 적지않이 힘이 되었다.

물론 언젠가는 공부를 마칠거라는 희망도 한몫을 했지만 넉넉하게 그 당시를 견딜 수 있게 한 것은 과거의 문화적, 인문학적 체험이었다. 어설픈 인생살이였지만 도닦듯이 관조하게 해주고 가진 것이 없어도 비참해 하지 않고 스스로 고난을“해석”할 줄 알게 하는 힘이었다.

"사회적 위기를 푸는 복지정책의 확충... 삶의 위기에서 버텨낼 수 있는 자신 고유의 항체도 필요“

어떤 이는 그런 힘을 종교에서, 일에서, 문화에서, 가족에서, 친구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그 삭막한 세계를 혼자서 해석하고 스스로 정체성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문학적 경험은 분명 큰 도움이 되었다. 스스로 전망을 세울 수 없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반복되고 좌절감이 급습할 땐 작은 촛불처럼 큰 위로를 가져다 주었다. 호숫가나 산책길을 혼자서 무작정 걸으면서 이러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다시 힘을 얻고 집으로 “내일을 해가 뜬다”면서 돌아 오곤 했다.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예측하지 못한 불확실성이 개인의 실존적 위기로 덮치는 경험을 우리는 보고 듣고 있다. 사회적 위기를 푸는데 복지정책의 확충으로 구조적인 대안을 찾고 해결해 나가는 것은 분명 간과해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이는 동시대에 이 땅에 함께 사는 이웃으로서의 기본적인 태도이다.

그러나 또한 지나쳐서 안되는 것은 개개인의 삶에서 돌출되는 위기를 스스로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문화적 기제와,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대한 관심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더 많이 “건강하게” 쉴 수 있는 자리을 만들고 더 많이 즐길 수 있는 문화적 공간과 프로그램이 만들어 져야 한다. 인문학적 소양이라고 어렵게 말했지만 삶의 위기에서 버텨낼 수 있는 자신 고유의 항체를 만들 수 있는 기회와 자리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생존권을 갖고 있다. 그 생존권은 물적 존재로서의 생존권이기도 하지만 정신적 문화적 존재로서의 생존권도 갖는다. 정말 원치 않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사회의 중심부에서 밀려나고 있는 현실에서 이 부분에 대한 본질적 성찰을 놓쳐서는 안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분위기와 능력을 만드는 것 역시 관심을 가져야 할 듯싶다. 즉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고 삶의 진실성에 대한 의사소통을 활발하게 하면서 사회적 위기극복을 위한 삶의 항체를 만들게 해야 한다. 매사에 승자와 패자로 갈리는 이 세상에서 경쟁을 하되 너무 실망하지 않고 매달리지 않게끔 하는 능력, 그렇게 삶을 고양하는 고유한 문화적 체험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안목과 기회를 주는 것 역시 복지가 할 일이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이땅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자살을 택한 많은 분들의 명복을 빈다.
함께 하지 못한 이웃으로서의 미안함과 함께...

김재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방송인. 사회학 박사)





(이 글은, 대구지역 복지단체인 <우리복지시민연합>의 소식지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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