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부 돌격대 노릇 만 할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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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다수당, 의석 숫자로 밀어붙여서는 안 되는 이유"

국회에서 쟁점 법안으로 인한 대립이 격화되자 여당에서는 ‘국민의 지지를 받아 다수당이 된 만큼 국회에서 다수결로 처리하면 된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하고 있다. 국정을 책임지는 정치인들이 민주주의의 기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니, 걱정된다. 제대로 된 민주사회라면 다수당이라고 해서 의석수로 밀어붙여서는 안 되는 이유를 새삼 요약해본다.

다수결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의제

첫째로, 민주사회의 기본합의에 위배되는 의제는 아예 다수결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예를 들면, 여당이 시도하듯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필요 이상으로 제한하는 법률은 다수결로 제정할 수 없다.

소수파를 차별하는 의제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는 다수파와 소수파가 공존하는 체제이며 언제라도 서로의 입지가 뒤바뀔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성립되는 체제다. 따라서 소수파의 존재를 부정하는 의제는 다수결의 대상이 아니다. 또 여론의 다양성과 여론에 호소할 균등한 기회를 훼손하는 의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미디어법안처럼, 현재의 다수파에게 유리한 여론 환경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는 법안은 다수결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다수당은 국민의 신임을 더 받은 당?

둘째로, 대의제와 투표제도의 문제가 있다. 정당 갑과 을이 경제, 외교, 교육의 세 쟁점을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국민 3명이 투표하는 경우를 가정하고, 예를 세 가지만 들어 보자.

[예1] 국민 3명이 모두 경제와 외교는 갑의 공약을, 교육은 을의 공약을 지지한다고 하자. 각 쟁점의 비중이 같다면 결과적으로 갑이 승리하여 다수 의석을 차지하게 된다. 이럴 때 국민이 다수 의석을 주었다는 이유로 교육까지도 갑의 공약대로 처리한다면, 지지받지 못하는 공약을 ‘끼워 팔기’하는 부당행위가 된다.

[예2] 국민 3명 중 갑의 지지자가 2명이면 갑이 선거에서 승리한다. 그런데 지지자 중 1명은 경제와 외교 공약을, 다른 1명은 경제와 교육 공약을 지지한다고 하면 경제 공약을 제외한 다른 공약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았는지 불분명하다.

[예3] 지지도의 강약도 문제된다. 갑과 을에 대해 국민 3명 중 2명은 6대4 정도로 갑을 더 지지하고 나머지 1명은 2대8 정도 을을 더 지지한다고 하자. 이 때 보통의 투표 방식인 1인 1표제를 적용한다면 갑이 2:1로 승리한다. 그러나 1인 10표제를 적용하고 투표자가 지지도에 따라 표를 배분한다면 갑은 14표, 을은 16표를 얻어 오히려 을이 승리한다.

이처럼 다수당의 특정 공약이 국민의 지지를 받았는지, 심지어 다수당이 국민의 신임을 더 받은 정당인지도 불확실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므로 게임의 규칙에 따라 다수당이 되었더라도 늘 겸손하게 국민의 참뜻을 헤아려야 한다.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라'는 것이 헌법의 명령

셋째로, 권력분립에서 나오는 당연한 제약이 있다. 우리나라는 삼권분립의 나라다. 현실에서는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분립이 아니라 여당, 야당, 사법부의 삼권분립이 되고 있는데 이건 헌법의 의도와 다르다. 대통령을 낸 정당과 국회의 다수당이 같은 정당이라고 하여도, 의원내각제가 아닌 한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라는 것이 헌법의 명령이다. 국회의 다수당이 정부의 방침을 밀어붙이는 돌격대 노릇만 한다면 국회가 무슨 소용이 있나?

국민의 대표 노릇을 하려면 이런 정도는 알아야 한다. 요즘처럼 학벌만 높을 뿐 다수결원리와 의회의 존재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식한’ 정치인이 많다면, 기본을 갖춘 사람만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정치인 자격시험이라도 도입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윤상 칼럼 18>

김윤상(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경북대 행정학과. yskim@k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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