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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일의 목숨을 건 투쟁...절반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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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식 이념전쟁에 맞선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왜 노동자가 책임을 져야 하나"

경찰이 공장으로 진입한 5일, 공장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경찰이 공장으로 진입한 5일, 공장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6일 노사협상을 타결짓고 농성을 풀고 있는 쌍용차 노조. 한상균 지부장을 비롯한 지도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민중의소리
6일 노사협상을 타결짓고 농성을 풀고 있는 쌍용차 노조. 한상균 지부장을 비롯한 지도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민중의소리

‘기업 프렌드리’라는 미명 아래 노조 말살정책으로 일관해 온 이명박 정부 아래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모든 것을 건 투쟁이 결국 ‘절반의 승리’로 끝났다.

점거농성 77일, 굴뚝 농성 86일 만인 6일, 쌍용차 노사는 6월 8일자 정리해고자 974명을 대상으로 무급휴직과 전직 등 회사에 적을 두는 인원 48%, 희망퇴직 및 분사로 회사를 떠나는 인원을 52%로 하기로 합의했다. 즉, 애초 정리해고된 노동자 중 400명 이상이 ‘죽은 자’에서 ‘산 자’로 바뀌게 된 것이다.

왜 노동자가 책임을 져야 하나

쌍용차 사태는 사실 노동자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86일간 굴뚝 농성을 벌였던 쌍용차 노조 조합원 2명이 6일 저녁 헬기를 통해 이송되고 있다. 이들은 "쌍용차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쌍용차는 상하이차에 인수된 2005년 이후 급격한 내리막길이었고, 작년 초부터 업계에서는 부도 가능성을 점치기 시작했다.
98년 쌍용그룹 부도 이후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쌍용차가 지금 같지만은 않았다. 대우그룹에서 지난 2000년 분리된 이후 쌍용차는 완전히 정상화되어 2001년부터 3년 연속 30% 이상의 매출 증가를 기록했다. 당기순이익도 급증했고 영업이익률은 현대와 기아차를 앞지를 정도였다.

이번 사태의 원인 제공자인 상하이차는, 우량기업이던 쌍용차를 인수한지 불과 4년 만에 껍데기만 남겨놨다. 상하이차는 인수 이후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다. 1-2년 마다 신차종을 개발해야 유지될 수 있는 게 완성차업체인데, 2004년 이후로 신차 개발은 없었다. 반면 상하이차는 사내전산망 통합과 연구소 통합 등으로 쌍용차의 기술을 쉽게 이전해 갈 수 있었다. 기술 이전이 끝났으니 쌍용차 파산 여부는 상하이차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같은 '먹튀' 우려 때문에 2004년에도 쌍용차노조는 상하이차 매각에 반발하며 파업을 벌였다. 당시에도 노조를 비난하며 상하이차 매각을 환영한 것은 정부와 정치권이었다.

한마디로 쌍용차의 위기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경영진이 망가뜨려 생긴 것이었지, 사측과 보수언론이 말하는 '강성노조' 때문이거나 노동자가 태만해서 생겨난 위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공안통치와 정면으로 맞선 외로운 투쟁

작년 말 출범한 한상균 지도부가 본격적으로 투쟁을 시작했을 때 이들을 둘러싼 내외의 조건은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다.

86일간 굴뚝 농성을 벌였던 쌍용차 노조 조합원 2명이 6일 저녁 헬기를 통해 이송되고 있다. 이들은 "쌍용차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86일간 굴뚝 농성을 벌였던 쌍용차 노조 조합원 2명이 6일 저녁 헬기를 통해 이송되고 있다. 이들은 "쌍용차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사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취임 2주년을 맞아 공안통치를 본격화하고 있을 때였다. 또 하반기 자동차 업계의 구조조정을 앞두고 정부가 쌍용자동차를 본보기 삼고 있다는 것이 노동계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겉으로는 노사문제 불개입 입장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강력한 노조말살 정책을 취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우군이 되었어야 할 민주노총과 민주-진보진영 역시 취약한 조건이었다. 민주노총은 갑작스레 꾸려진 새 지도부의 지도력이 안정된 상황이 아니었고, 특히 지난 5월 대전에서 일어난 '죽봉시위' 이후 정권의 전방위적 공격 아래 조직력이 매우 위축된 상태였다.

금속노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속노조의 핵심투쟁동력인 나머지 완성3사의 연대는 실망스러운 정도였다.

민주당 등 민주진영의 다수세력도 '미디어법'에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중산층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쌍용차 문제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때 국회 환노위원장인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노사중재를 위해 공장을 한두 번 들렀을 뿐이다.


이런 조건에서 쌍용차 노조는 제도권에선 오직 민주노동당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동당은 일찍부터 정부에 공적자금 투입을 촉구하면서 홍희덕, 권영길 의원을 중심으로 동조농성과 단식투쟁, 중재 노력 등을 했지만 사태 해결의 키를 쥐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77일간의 '목숨을 건'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떤 의미에서는 예상치 못한 '파이팅'이었다. 비록 '완승'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공안통치에 정면으로 맞선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은 결코 폄하될 수 없는 감동을 남겼다.

잔인한 공권력 행사, 이명박 정부엔 상처로 남을 것


물론 노조가 정리해고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독약'을 들이마시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노조 지도부로서는 수백 명 조합원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이날 노사 협상을 마치고 조합원들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한상균 지부장은 "반드시 정리해고를 막아야 된다는 신념으로 싸웠지만 전면적으로 막지 못했다"며 "정리해고를 철회하지 못하고 군살이 박힌 내용을 보고드리게 돼 동지들에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6일 77일간의 농성을 마무리하는 쌍용차 노조 조합원들이 한줄로 서서 한상균 지부장과 포옹하고 있다. 한 지부장은 이날 조인식을 마치고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민중의소리
6일 77일간의 농성을 마무리하는 쌍용차 노조 조합원들이 한줄로 서서 한상균 지부장과 포옹하고 있다. 한 지부장은 이날 조인식을 마치고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민중의소리

그러나 상처를 입은 것은 노조만이 아니다. 지분 축소를 감수해야 하는 상하이차나 원시적 폭력을 막무가내로 휘두른 사측 역시 상당한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상처를 입은 것은 사태의 키를 쥐고 있었던 이명박 정부 자신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에서 보여준 정부의 편파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는 년 초의 용산 참사에서처럼 두고두고 지울 수 없는 기억을 남겼기 때문이다. 지금 내연(內燃)하는 것처럼 보이는 민중의 분노는 언젠가는 반드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민중의 소리] 2009년 8월 6일 20:27  배혜정 기자 bhj@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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