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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유감
권미강..."어느 한밤의 난리부르스"
2009년 09월 11일 (금) 10:21:23 평화뉴스 pnnews@pn.or.kr

결혼한 여자의 직장생활이란 다중의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슈퍼우먼의 요소를 갖춰야한다. 하루 종일 업무로 시달리고 때론 회식자리에서도 마시고 싶지 않은 술 한 잔 해야 하는 버거움까지, 그리고 상사와 동료들 사이에서 오가는 보이지 않는 경계.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예상보다 크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면 생활의 너저분함이 눈에 들어온다. 개수대에 쌓인 설거지거리, 너무 오래 걸어둬 마른북어처럼 수분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빨래들, 소파는 물론 식탁까지 점령한 자잘한 생활소품들, 가스레인지에 붙어있는 음식의 파편들, 하루의 피곤을 온몸으로 받아낸 양말을 벗으려 세탁실로 가면 넘쳐나는 분리 쓰레기망이며 속옷과 겉옷이 가득 담긴 두개의 세탁바구니까지. 거기까지 보고 나면 그만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구토가 올라오는 듯하다.
 
다만 푹 젖은 솜뭉치 같은 몸은 그 모습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그것이 일상이 된지 오래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이제는 적응한 듯한 눈치다. ‘그래도 아침만큼은 꼭 챙겨주는 엄마 대견하지 않냐’ 는 말을 하면 아이들은 ‘하긴 그래요’ 한다. 엄마를 참 많이 이해해주는 아이들이 ‘내게 개의치 마시라’고 하면 ‘그래, 내가 너희들 때문에 산다’하고 서로 대견하게 바라본다. 말소리를 듣지 않고 모습만 본다면 더없이 아름다운 장면이다.

불편한 일상을 안고 동료의 상갓집에까지 다녀온 며칠 전, 그날의 전을 걷으려는 집 앞 슈퍼에서 단 5분 만에 찬거리를 사고 집으로 돌아오니 밤 12시가 다 돼갔다. 사온 것들을 냉장고며 서랍이며 각자의 위치에 채워 넣고 평소보다는 적은 설거지거리들을 옷도 갈아입지 않고 해치웠다. 늘 있는 일이지만 ‘옷을 갈아입고 해야지’ 하고는 ‘5분만 좀 누웠다가’ 하다가 세수도 안하고 그냥 자버리는 게 부지기수고 그러다보면 아침시간이 설거지로 더 분주해지는 불편을 이날만큼은 막아보자는 심산이었다.

설거지를 대충하고 음식물 찌꺼기를 처리하려 싱크대 아래에 있는 음식물통을 열었는데 난 그만 ‘억’ 하고 비명을 질러야했다. 부패한 냄새도 그렇지만 복숭아 등 과일껍질에서 생긴 날파리와 일명 구더기라고 하는 흰 벌레들이 음식물과 뒤섞여 그야말로 지저분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허~걱’ 한숨도 나고 그 상황까지 놔둔 내 자신이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당장 일회용 장갑을 끼고 냉장고에 조금씩 남은 음식물까지 다 정리해 아파트 아래에 있는 수거함에 내다버렸다.

음식물통을 여러 번 물에 헹군 후 락스를 풀어 수세미로 문질러 씻었다. 가뜩이나 ‘신종플루’ 유행으로 개인청결이 강조되는 때인데 주방을 불결하게 만든 내 자신이 참 한심스러웠다.

고무장갑을 낀 김에 집안 곳곳을 둘러보니 정말 할 일이 무지 무지 많았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어찌 살았나?’ 싶게 눈에 보이는 곳마다 치워야할 것들이 산더미 같았다.

먼저 화장실벽과 바닥, 변기를 닦았다. 아랫집에서는 약간 소란스러움을 감지하리라 싶었지만 맘먹은 김에 하지 않으면 다시 주저앉을 수도 있겠다는 약간의 비장함(?)마저 가지고 바닥의 타일을 문질러댔다.

부엌바닥과 식탁의자 아래에는 음료수류나 국물이 있는 음식물이 떨어진 흔적이 건성으로 닦은 휴지의 잔유물과 함께 붙어있었다. 나는 마치 처음부터 그런 것은 보지 못하는 아주 깔끔한 사람인 냥 걸레에 세제까지 묻혀가며 박박 닦아냈다.

그런데 거기까지가 내 한계인 듯 했다. 더 이상 힘이 없어 거실 끝까지 마저 다 닦아내기가 버거웠다. 이틀 전, 거의 탈진상태에서 내 발로 병원에 찾아가 링거액까지 맞은 몸으로서는 그날의 갑작스런 부산이 떨떠름한 모양이었다.

숨도 차고 기운도 빠지고 온 몸에서 피가 한꺼번에 쑥 빠지는 느낌이 일순간 들었고 나는 거의 기다시피 해서 대충 걸레만 빨아놓고 돌린 빨래도 널지 않은 채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노곤함에 몸이 말 그대로 침잠하는 듯 안방바닥을 뚫고 지하주차장까지 쑤욱 꺼지는 것 같았다. 쉰 파김치처럼 몸에서는 쉰내가 나고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팔다리 하나 아니 손가락 하나마저도 내 것이 아닌 듯 했다.

 그야말로 ‘한밤의 난리부르스’는 그렇게 끝났다. 다행이 다음날 컨디션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별다르게 바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사무실에서의 일상도 평온했고 동료와 차 한 잔하며 잡담을 나누는 재미도 즐겼다. 물론 머리 속에서는 어제 다 하지 못한 곳곳의 일들이 눈치같이 끼어들긴 했지만 말이다.

사무실에서 문서를 작성하고 기획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여타의 일들은 모두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주부야말로 가장 전문성을 요하는 직업이다.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 불편함 없이 잘 지낼 수 있도록 식사를 제공하고 잠자리를 마련하고 안락한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사람. 자기희생과 무한한 사랑으로 자식을 길러내고 남편을 보필하는 사람. 이 세상이 제 궤도를 잘 돌 수 있도록 가장 작은 공동체를 리더하는 사람. 어쩌면 주부는 가장 프로의식이 강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주부가 또 다른 직업까지 갖고 사무실과 집안일까지 맡아해야하고 그 두 가지를 잘 해야 능력 있는 직장인, 현모양처로도 불릴 수 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시대 주부로서 그리고 직장인으로서 열심히 살 수는 있지만 절대 프로주부로 살 수 없는 나로서는 그걸 다 해내는 여성이 존경스럽다. 여성 직장인들에게 주부의 자리는 유감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말에세이] 권미강

권미강 /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구미시청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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