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도국에서 보는 위장전입, 대책도 분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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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근본대책, 옳지만 우리는 싫다? 정권을 감싸야 좌빨을 막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활빈당 홍길동 할아버지가 세우신 율도국의 국민입니다. 조선, 아니 한국은 율도국의 뿌리이기도 하지만,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했다고 해서 제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율도국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많아 당황스럽습니다.

위장전입은 협박과 맞먹는 죄

요즘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사청문회도 그렇습니다. 고위직 후보자들이 ‘위장전입’이라는 불법을 저질렀다고 하더군요. 법전을 찾아보니, ‘위장전입’은 경범죄 같은 사소한 허물이 아니네요. “주민등록 또는 주민등록증에 관하여 거짓의 사실을 신고 또는 신청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3년 이하의 징역은 공문서 부정행사, 협박, 상습도박과 같은 수준의 처벌이군요.

그런데 대법관, 총리, 장관 등 고위직 후보자들이 하나같이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한국에는 깨끗하면서도 유능한 사람이 없나요? 한국에서 고위직에 올라가려면 ‘법은 대충 피해나가면 된다’는 식으로 살아야 하나 봅니다. 현직 대통령도 그랬다니까요. 한국의 몸 성한 남자라면 다 가야하는 군대를 안 간 사람도 고위직에 많다면서요? 한국에서 나라는 서민만 지키게 되어 있나요?

청문회에서는 범법 후보의 사퇴를 요구한다지만 그건 일부 야당 의원의 말일 뿐 여당은 ‘사과했다’, ‘별 것 아니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면서 감싼다고 한다더군요. ‘법치’를 강조하는 쪽이 정부와 여당이 아니었나요?

근본 대책, 옳지만 우리는 싫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정책 당국이 위장전입을 막는 근본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근본 대책이란 당연히 위장전입을 유발하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겠지요. 한국사회는 학벌과 부동산이 신분을 결정짓기 때문에 신분 상승을 위해 위장전입을 한다면서요? 그리고 이런 사실을 전 국민이 다 안다면서요? 그렇다면 교육정책과 부동산정책을 고쳐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현 정부가 들어선 후 이런 정책을 오히려 후퇴시켰다고 하데요.

율도국에는 지역별, 계층별 교육기회의 격차가 없습니다. 사람을 실력 아닌 학벌로 평가하는 일도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교육원칙이자 인사원칙입니다. 또 노력과 기여의 대가가 아닌 불로소득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분배원칙입니다. 한국 정부도 이런 기초적인 원칙을 모를 리가 없겠지요. 그런데도 모른 척하는 하는 걸 보면 하기 싫은 모양입니다. 옳은 줄 알지만 우리는 싫다? 율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정권을 감싸야 좌빨을 막는다?

더구나 중요 언론이 이 문제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율도국에서는 사회의 불의에 대해서는 국민이 분노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분노가 없으면 사랑도 없다”는 시를 많은 사람이 애송하기도 합니다. 혹 힘없고 돈없는 한국의 서민이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체념해 버린다면 그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의 사명은 그게 아니잖아요?

중요 언론이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다음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나도 그들보다 더 깨끗하지 않다’는 공범의식 내지 자괴감 때문이거나 ‘이명박 정권을 흠집 내면 좌빨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공범의식 내지 자괴감 때문이라면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약간은 희망적입니다. 그러나 ‘좌빨...’은 좀 그렇군요.

‘좌빨’이란 북조선, 아니 북한을 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그 특수한 입장을 이해하려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설령 이들 언론의 인식처럼 북한이 악의 축이라고 칩시다. 또 율도국 사람이 보더라도 북한은 때때로 상식 밖의 짓을 합니다. 악의 축이든 몰상식하든 그런 상대방에 대처하려면 우선 이쪽이 선의 축이 되고 상식적인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나요?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위해 법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고위직에 들어서면 그렇게 될까요?

이러고도 한국이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우리 율도국 사람이 자녀에게 한국을 자랑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우리는 뿌리가 같잖아요.





[김윤상 칼럼 23]
김윤상 /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경북대 행정학부. yskim@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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