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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비상을 꿈꾸는 아들에게
송광익 / "이제 훨훨 날아보려무나.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2009년 11월 13일 (금) 00:10:50 평화뉴스 pnnews@pn.or.kr

'수능 날까지 성적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식후에 이는 졸림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무사 진학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출제되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시험을 치러 가야겠다./ 오늘밤에도 재수(再修)가 꿈에 스치운다'

재작년에 네 또래의 수험생 셋이 엮었다는『대한민국 학교대사전』의 '서시(序詩)' 패러디라고 하더구나. 마냥 아이들의 기발한 착상이나 발칙한 항변으로 내치기에는 못내 마음이 편치만은 않더구나. 그리고는 "대한민국에는 서울 의대, 약대, 법대와 상대이라는 4개의 대학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또 다른 웃지 못 할 우스개를 떠올려 보았단다. 너도 짐작하다시피, '서울에 있는 대학, 서울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대학, 서울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대학 그리고 서울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대학'으로 말이다.

서울의 명문대학을 중심으로 그 거리만큼, 일률적으로 너희들의 모든 것을 가늠하고자 하는 이 시대의 심판대 앞에서 이 애비 역시 자유로울 수 없고, 못내 궁색스럽기만 하더구나.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보다는 "도대체 뭐가 되려고 하니!"라는 다그침 앞에서 지레 주눅이 들고 박제되어버린 숱한 너희들의 꿈. 그래, 못난 시절 만난 너희들이 안쓰럽고, 또 그런 시절을 만든 못난 애비들로서 많이 부끄럽고 미안하구나.

'우리 어머니가 나를 가르치며 / 잘못 가르친 것 한 가지 / 일꾼에게 궂은 일 시켜놓고 / 봐라 /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나 / 저렇게 된다 / 똥지게 진다'(심호택의「똥지게」)

그리고, 그 뒤에 가지런히 놓인 다른 시인의 이야기까지 마저 챙겨 보자꾸나.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을 순서대로 고르면 '공부'라는 말이 으뜸을 차지하지 않을까? 교육부총리를 고르는 일이 그토록 어려웠던 것도 '공부' 때문이요, 파출부를 나가는 것도, 술집에 나가는 것도, 우는 것도, 웃는 것도 다 '공부' 때문이다. 공부가 곧 밥이고 힘이고 권력이니까. 잘 웃고 사람들에게 상냥하면 밥이 되고 힘이 되는 세상은 언제 올까? 어머니는 오늘도 노심초사로구나"(강형철의『시가 있는 환한 세상』에서)

때로는 공부에 지친 몸과 마음을 더 힘들게 했을 엄마의 안달복달에서, 공부가 곧 밥이 되고 힘이 되는 시대를 살아온 어머니들의 노심초사를 헤아려 주기도 하였으면 하구나. 결국 사람들이 모여서 세상과 세월을 엮어가는 것이지만, 거꾸로 그 흐름에 엮여서 가는 것이 또 사람이 아닐까 싶구나.

네 엄마를 따라서 한밤중에 올라가 본 팔공산 갓바위의 풍경은 처연함을 넘어서 자못 비장미까지 느껴지더구나. 그래, 다시 한 번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고 말할 도리 밖에는. 우리 어머니들이 잘못 가르친 것을 되잡고, 똥지게를 짊어진 아저씨의 환한 웃음을 되찾아 주는 것 또한 너희들의 몫이라고 말이다.

'끈이 있으니 연이다 // 묶여 있으므로 훨훨 날 수 있으며 / 줄도 손길도 없으면 / 한낱 종잇장에 불과하리 // 눈물이 있으니 사랑이다 / 사랑하니까 아픈 것이며 / 내가 있으니 네가 있는 것이다 // 날아라 훨훨 / 외로운 들길, 너는 이 길로 나는 저 길로 / 멀리 날아 그리움에 지쳐 / 다시 한 번 / 돌아올 때까지'( 박철의「연」)

그래, 이제 훨훨 날아보려무나.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공부가 아니라, 정말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찾아서. 주어진 문제와 완고한 모범답안이 아니라, 스스로 의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면서 말이다.

그러나 잊어버리지는 말자꾸나,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끈의 의미를. 그래, 끈이 있어서 비로소 연인 것이다. 너무 쉽게 하늘을 꿈꾸지도 말고, 그냥 편하게 땅에 주저앉지도 말자. 끈 떨어진 연의 추락이나 상승이 다같이 '한낱 종잇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창공을 나는 연의 자유는 바로 그 사이를 지탱하는 팽팽한 긴장감이라는 것을 깨달 수 있었으면 하는구나.

남루한 지상을 떠나 이제 외로운 비상을 준비하는 아들에게 다시 해묵은 기도문을 건네어 준다.
'바꿀 수 없는 것은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평심과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주말에세이]
송광익 / 의사. 소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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