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밤 공중파를 비롯한 방송사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소위 ‘대통령과의 대화’라는
것을 방송했다. 나는 ‘대통령과의 대화’가 시작되고 한 5분정도 보다가 'VJ특공대'로 채널을 돌렸다. 2시간 넘게 대통령의 TV연설을 지켜볼 인내심이 나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대통령과의 대화’는 대화라는 이름을 가지고 정부정책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전문패널들과 국민패널들이 묻고 대통령이 답하는 구조에 질문자는 수십명이고 답하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대통령이다. 죽자고 반론하며 대든 사람도 없거니와 어떤 사람은 아예 대통령 띄워주기 하러 나온 사람도 있어 보였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나온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세종시, 4대강 등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 어떤 이는 분노하고 어떤 이는 지지를 보냈을 것이다.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 나는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질문에 대한 답을 살펴보았다. 찬찬히 대답을 살펴보니 이명박 대통령의 답변 자체가 남북관계를 더욱 꼬이게 만든 것 같다. 답변을 보면서 ‘대통령과의 대화’에 아주 좋은 제도인 ‘패스(통과)’ 를 도입하지 않았단 것이 한스럽다.
이 대통령의 답변을 살펴보자. 요지는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모든 것을 공개할수 없다면서 대통령은 1) 정상회담은 당장 정치적으로 해야할 이유 없고 2)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국군포로, 납치자문제 이야기 하면 만날 수 있고 3)그래도 비핵화 문제가 중요하고 남북 관계개선이 중요하기 때문에 원래는 서울오는 것이 좋은데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대통령의 '이유'와 '모순'
정상회담은 당장 정치적으로 해야할 이유가 없는가? 이 대통령은 스스로의 답변에서도 모순을 보여주었다. 비핵화문제와 남북관계 개선이 중요하기 때문에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답변과 지금 당장 해야할 이유가 없다는 답변은 상호 모순적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남북관계의 경색이야 안드로메다까지 소문나 있는 것 아닌가? 금강산 개성관광 중단, 개성공단 위축, 서해상의 군사적 충돌 등의 남북관계위기와 중국의 대북진출 강화와 북미 양자회담의 진전 가능성등은 더더욱 남북정상회담을 필요로 한다. 이명박 정부 스스로가 자초한 남북관계의 경색이기 때문에 만나서 잘해보자고 말하기 껄끄러운 것인가? 아니면 할 의지가 없는가? 정치적인 이유가 없다는 말은 ‘비겁한 변명’이다.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국군포로 납치자문제 이야기 하면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도대체 정상회담을 하자는 말인가? 말자는 말인가? 대통령이 답변에서 굳이 이 말을 한 것은 왜 일까? 풍기는 뉘앙스가 비공개비밀 접촉에서 혹히 이 문제가 서로 접근되지 않아서 고위급대화나 정상회담이 무기한 연기되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보수세력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인가? 평범한 필자로는 알길이 없다. 그러나 그동안 남측의 국군포로도 납치자 문제제기에 북측의 입장은 국군포로도 납치자도 없다는 것이 입장이다. 국군포로 납치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이 또한 남북의 고도의 정치전이기 때문에 알수 없는 일이지만 이제 문제제기의 수준이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 정말 국군포로와 납치자 문제가 있다면 북측이 꼼짝못할 증거를 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입만 아프게 떠드는 꼴 아닌가?
북측의 어려운 식량난에 연간 40만 톤식 지원하는 대북쌀지원은 2년째 중단되고 있다. 남북적십자회담에서의 식량지원 요구에 이 정부는 남측에 남아도는 쌀은 그냥두고 옥수수 1만톤을 수입해서 지원할수 있다는 방침을 정했으나 북측으로부터 거부당했다. 인도적 지원에 무조건적이어야 한다. 진심을 담아 인간의 기본적인 생명권에 도움이 되도록 또는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누리고 살아야 할 환경을 조성해주는 인도적 지원은 진정 조건없고 댓가없이 해야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북측 인민들의 생명권을 담보로 거래를 하지 말아야 한다.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 대통령의 말은 그래도 그중 가장 진보적인 답변이다. 지금 당장 해야할 정치적 이유가 없어서가 아니고 한반도의 비핵화와 남북관계개선이 중요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라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 대통령은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아주 중요한 하나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 2007 남북정상회담 당시 둘째날 점심 식사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남측 수행원들 앞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꺼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북한의 개혁 개방이 북한으로서는 체제변화에 대한 시도로 아주 불쾌하게 비춰진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그것도 집권 4년 8개월 만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역지사지의 입장을 가지려면 얼마나 걸릴까?
'아이리스' 조명호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현재 대한민국에는 대통령이 두 사람이다. 현실의 이명박 대통령이 있고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아이리스>에 나오는 조명호 대통령이 있다. 한국형첩보액션드라마를 표방한 아이리스에 나오는 조명호 대통령은 비밀조직 아이리스의 서울 ‘핵테러’위협에도 화해와 단합을 위해서 주변 강대국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대한 강한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답변에 지지를 보낼까? 아이리스 조명호 대통령의 입장에 지지를 보낼까? 극중의 조명호 대통령은 ‘핵테러’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고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어떤 위협도 없어 보인다. 과거에는 미국의 눈치라도 본다고 하지만 이제 12월 8일 보즈워스 특사가 방북하고 북미관계정상화의 시간표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면 남북관계에도 긍정적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누구의 위협을 받고 있나? 자기 스스로에게 있는 ‘민족대결’, ‘반공반북’이라는 냉전이데올로기라는 악마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가?
현실에서 조명호 대통령 같은 강단있고 소신있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평화와 통일]
오택진 / 6.15실천대경본부 사무처장. 평화뉴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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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택진 / “남북정상회담...껄끄러운가, 의지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