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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날까?
이은정 / "피라미드 세상,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2010년 01월 22일 (금) 14:36:18 평화뉴스 pnnews@pn.or.kr

초등학생이 된 딸아이가 어느날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 오더니 대뜸, “엄마, 우리 아파트 값이 싸?”하고 묻는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 평수가 다르다보니 딸아이 친구가 좀 뻐겼나보다.
“싸긴 한데... 산 있지, 공기 좋지~ 우리 아파트가 훨씬 좋아!”
아직 순진한 딸아이는 나의 대답이 흡족했던지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길건너 평수 큰 아파트 친구들 집에 놀러가는 날이 많아지자 “엄마, 친구들 집은 완전 공주집 같아, 정말 예쁜거 많아! 근데 난 우리집이 더 좋아. 산 있지 공기 좋지, 살기 좋잖아, 그지?” 하며 확인받더니, 1학년이 끝나갈 무렵에는 급기야 “엄마, 우리집이 작긴 하지만 난 이사 안갈래. 엄마 돈 없잖아.”하는 게 아닌가!

저도 한 살 더 먹는 동안 보고듣는 게 많아져서 현실을 바로보게 된 걸까?
이쯤되자 나도 입이 막혔다. 아닌 게 아니라 어른들도 길 건너 아파트와는 잘 교류하지 않는 눈치다.

동네사람을 만나서 애들끼리 집 평수, 차량 대수 가지고 나뉜다고 하소연하자 그나마 이 학교는 덜하단다. 임대아파트가 섞여있는 자기네 학교에는 “너희 집 임대지?” 하면서 ‘임대’사는 애들과 말도 안섞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이렇다보니 나도 괜히 위화감에 주눅이 든다. 
더욱이 요즘은 아파트 현관 들어설 때마다 마음이 뒤숭숭하다.

1층집 문짝에 더덕더덕 붙은 딱지들 때문이다. 인사 잘하고 늘 활달하던 1층 아저씨가 일이 잘 못됐는지, 야반도주를 한 것이다. 딱지에는 온갖 협박과 욕설이 벌겋게 쓰여있어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그 집 애들 이름까지 들먹여가며 위협하는 딱지를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어둡다. 어느날은 볼품없이 말라버린 1층 아저씨를 보았는데, 행려자처럼 꾀죄죄한데다 옷에는 핏자국까지 있었다.

당장 내 가정 지키는 일도 팍팍한지라 ‘길거리에 누운 거지 한사람 얼어 죽어도, 그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했던 지난날이 객기어린 낭만처럼 여겨진다.

인생살이가 재력에 따라 점점 피라미드처럼 정확히 구획되어져서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은 그야말로 구닥다리 옛말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실업자 4백만시대. 요즘처럼 흉흉한 때, 이나마 라도 살면서 피라미드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행복의 척도는 결코 돈이 아니며, 가난이 죄가 아니라 가난을 대물림하는 세상이 나쁜거라고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것조차 가난한 부모의 억지나 자기위안으로 치부되진 않을지.
부쩍 추워진 이 겨울이 별탈없이 지나가 주길 바랄 뿐이다.

   






[주말에세이] 이은정

이은정 / 달성군 화원읍에 사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을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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