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지역주민입니다. 예쁘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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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식 / 경북 군위에서 열린 다문화장터..."단지 문화가 다를 뿐입니다"


지난 주말 군위 소보장터가 오래간만에 시끌벅적했습니다.
정월대보름을 맞이하여 간디문화센터가 준비한 어울림 다문화장터가 열렸기 때문이지요. 풍물굿패 매구팀의 신명나는 풍물은 어깨를 덜썩이게 하고, 주막 차린 소보 아낙네들이 지나가는 과객을 붙잡고, 아이들은 투호놀이에 여념이 없습니다.

특히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에서 온 결혼이주여성들이 손수 만든 모국 전통음식을 대접하고, 각설이 타령과 우리나라 대중가요를 멋드러지게 부르자 장터를 찾은 어르신들이 신기한 듯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습니다. 자신들을 소개하며 그이들이 남긴 말이 가슴에 남습니다.
"우리도 지역주민입니다. 예쁘게 봐 주세요."   

간디문화센터가 마련한 '다문화장터'에서 주민들에게 인사하는 이주여성...(왼쪽부터) 곽연추(한족). 수이칭쿤(한족). 소피아(캄보디아). 배하이(베트남) / 사진.간디문화센터
간디문화센터가 마련한 '다문화장터'에서 주민들에게 인사하는 이주여성...(왼쪽부터) 곽연추(한족). 수이칭쿤(한족). 소피아(캄보디아). 배하이(베트남) / 사진.간디문화센터

이날 행사를 준비한 이들은 저의 가족입니다.

먼저 수이칭쿤, 39세로 맏이입니다.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난 한족이지요. 전문대학까지 마치고 호텔에서 근무하다가 가족들의 생계를 돕기 위해 이곳으로 왔어요. 한동안은 브랜드 옷을 산다고 백화점엘 데려다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 철부지 아낙네이기도 했지요. 이곳에 온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의사소통이 힘들어서 우리말 공부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합니다. 남편과 시어머니 외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자 그 외로움을 달래려 전화통을 붙잡고 살았는지 지난해에는 요금이 한 달에 기십만 원씩 나와 가족을 놀래키곤 했습니다. 그러다 센터에서 일하면서 매달 활동비를 모아 이곳으로 올 때 결혼중개비로 빌린 언니의 빚도 갚았고, 앞으로 모아질 돈은 중국 가족을 위해 송아지를 사서 키울 꿈에 부풀어 있는 살림꾼이기도 하지요.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그이는 소주 한잔을 걸칠 때마다 "오빠, 나 오빠와 진짜 잘 되고 싶어요."라는 말을 잊지 않는데, 이 말을 듣고 사는 그이의 남편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싶습니다. 

소피아, 27세로 둘째입니다. 캄보디아에서도 외딴 시골 출신이지요. 이곳에 온지 올해로 5년째 접어드는 노련한 아낙네이기도 합니다. 곁에서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부부 금술이 남다르고 남편을 숫제 쥐고 사는 깍쟁이이기도 하지요. 네살박이 딸은 부부의 좋은 점만 쏙 빼닮아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센터의 마스코트입니다. 그이는 자신의 감정을 잘 감추지 못하여 표정만 보고도 남편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금방 알 수 있는 순진파이기도 하지요. 작년 섣달에는 가족과 함께 친정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그이의 여동생도 한국으로 시집올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남편과 결혼한 것이 너무 다행이고 이곳이 너무 좋다는 그이를 대할 때마다 나는 그이를 진정으로 동료로 여기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듭니다. 

배하이, 26세, 셋째입니다. 호 아저씨의 나라 베트남에서 왔지요. 덩치는 작달만하지만 50명 되는 손님도 순식간에 치룰 만큼 살림을 야무지게 잘합니다. 이곳에 온 지 올해 4년째 나는데, 얼축 우리말을 듣고 이해는 하는데 쓸 줄은 전혀 모릅니다. 원래 공부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고 하네요. 그러던 그이가 아들이 유치원엘 다니면서 우리말을 깨우치기 시작하자 엄마로서의 위기감이 들었는지 요즈음은 누구보다도 우리말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평소에는 진중하다가도 간혹 내 뱉는 농담은 좌중을 순식간에 휘어잡곤 하지요.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자신의 속내를 나타내지 않고 참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그이의 속 깊은 마음은 어디에서 연유되는 것일까요?

쇽콜라, 24세, 딸처럼 귀여운 막내입니다. 캄보디아에서 왔어요. 5월말 예정으로 배가 남산만한 임산부이기도 합니다. 얼굴에 미소가 떠나는 법이 없고, 대꾸하는 농담은 쌓인 피로를 말끔히 가시게 하는 감칠맛 나는 옹달 샘물  같지요. 친정아버지가 저보다 한 살 많다고 해서 저를 한국 아빠라 부르게도 했지요. 남편이 약간의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그이는 개의치 않습니다.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항상 여유를 가지고 센터의 중화제 또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멋진 여성입니다. 그이의 착하고, 순수한 마음은 이른 새벽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첫눈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그이가 흘린 눈물이 얼마나 되는 지 어떻게 짐작이나 하겠어요?      

197개국 120여만명...준비 없이 맞은 '다문화시대'

2009년 현재 이 땅에 120여만 명의 외국인이 함께 살고 있답니다. 국가 수로는 무려 197개국으로부터 온 사람들입니다. 이 추세라면 2020년에는 결혼 5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이고, 20세 이하 인구 5명중 1명이, 신생아 3명중 1명이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될 전망입니다. 그런데 다문화가정의 52.9%가 최저 빈곤층이고, 더구나 끼니를 거른 경험이 있는 가구가 15.5%나 된다고 하니, 마치 센터 가족의 처지인양 마음이 아픕니다.

시골 상황은 더하지요. 4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이라지만 제 눈에는 젊은 부부는 거의가 다문화가정으로 보입니다. 17년 만에 처음으로 마을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 좋아했었지만 이제는 각종 모임에 재잘거리며 뛰어 노니는 귀염둥이들은 백발백중 다문화 2세입니다. 이렇게 세월이 10년만 흐르면 시골학교는 다문화 2세들로만 이루어지고, 다문화 부부가 대부분 마을 일을 맡게 될 것입니다. 이 엄연한 현실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골에서 간디문화센터는 다문화 공동체 마을을 소박하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준비 없이 맞이한 이 땅의 다문화 시대, 민족과 인종 차별로 인한 혹독한 대가를 치루기 전에 문화는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단지 다를 뿐이라는 인식과 실천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때입니다.






[주말에세이]
문창식 / 간디문화센터 대표


간디문화센터는 생명, 평화, 나눔의 가치로 농촌 마을 공동체를 실현하고 있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산하의 도농상생사업단은 (예비)사회적 기업으로 농촌지역 다문화가정과 함께 대안교육, 도농직거래, 공익활동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www.gandhinuri.com 또는 http://cafe.daum.net/Gandhicluturecenter
경북 군위군 소보면 서경리 652-1 / 054-382-3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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