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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말아 묵고 술 무라 캤지"
곡주사 이모 정옥순② / "잘 나갈 때 사람이 변하더라..."
2010년 03월 10일 (수) 11:59:06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pnnews@pn.or.kr

"울도 담도 없는 집에서 시집살이 삼년인데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얘야 아가 며늘 아가
진주낭군 오실 터이니 진주낭군 빨래가라~"


80년대 초 곡주사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노랫가락입니다. 최근 TV드라마 ‘추노’에도 등장했다는 ‘진주난봉가’. 진주난봉가는 이모가 뚜렷이 기억하는 노래 중의 하나입니다. 아마도 며늘 아가의 애절함과 절절함이 이모 자신의 처지와 빗대진 게 아닐 런지요. 거기에다 시대의 모순에 맞서려는 학생들의 열정이 노래 속에 담긴 저항감과 어울려 이모의 마음에도 깊숙이 박혔나 봅니다.

청년‧학생들이 곡주사를 찾아 술 마시고 노래한 것은 단순히 여흥의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분노와 탄식을 터뜨리는 광장의 의미에 더 가까웠습니다. 학생들의 노래와 춤은 저항의 표출이었고, 한편으로는 희망을 싹 틔우는 합창이었습니다. 

그 시절 곡주사의 학생들...

"'마음 약해서 잡지 못했던~'하며 식탁 위를 이리저리 뛰어 다니던 학생들 모습이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해. ‘제비’를 부르던 문○○ 학생, 노래 잘하던 유○○ 학생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최○○ 학생 양말에서는 얼마나 구린내가 나던지…김○○는 아직 병원에 있지요.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파. 김○○는 이제 살만할 테지"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모의 입에서는 학생들의 이름이 실타래처럼 흘러나옵니다.

   
▲ 곡주사 이모 정옥순(77)
울분의 시대, 허름한 술집인 곡주사는 학생들의 또 다른 놀이터였습니다. 운동권 학생들이 많이 찾기는 했지만 그들이 다는 아니었습니다. 일반 직장인들에게도 답답함을 털어내고 위안을 줄 수 있는 막걸리 집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울이나 광주에서도 학생들이 찾아올 정도로 알려진 주막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곡주사는 누구나 드나드는 푸근한 텃밭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 곡주사다 보니 조용한 날이 오히려 이상했습니다.

"누가 술 취해 베개에 오줌 싸고, 누가 방구들 내려 앉히고, 어떤 학생이 시계를 깼는지 다 알아. 술 먹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고…" 이모는 거짓말처럼 다 알고 있었습니다. 양말이나 옷가지를 벗어 놓고 빨래를 해놓으면 가져가는 학생도 있었고, 숙식을 해결하고 바로 등교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데모하는 남녀 학생들을 여럿 재워준 적이 있는데 자기들끼리는 연애도 못해” 그 모습이 이모에게는 의외였고, 애처롭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물론 아픈 연애사도 없지는 않습니다. “○○는 △△와 눈이 맞아 사귈 뻔 했지. 그리고 ○○와 △△생각을 하면 너무 마음이 쓰라려. 내 잘못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어려울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러저런 인연 때문에 세월이 흘러도 이모가 학생들을 못 잊듯 곡주사를 잊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최근까지 해마다 명절날 한약을 지어 보내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또 가끔씩 전화를 해 안부를 묻는 학생도 있습니다. 작년에는 몇몇 사람이 모여 이모와 저녁식사를 하고 얼마간의 용돈을 쥐어 준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3년 전에는 학생들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학생들에 대해 이모는 너무 고마워합니다. 식당을 시작할 때부터 이모는 아무리 가난에 부대껴도 끼니를 거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밥은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되레 밥을 얻어먹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곡주사 건너 적십자 병원 인근에 있던 거지들을 거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하지만 나이 탓인가요. 이모는 예전에 없던 마음이 생겼습니다. 수년전부터 가끔씩 서운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고 합니다. 수년전은 ‘서민 대통령’이 들어섰던 그 때를 말하는 듯합니다. "어려울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잘 나갈 때 사람이 변하더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한 때 잘 나갔거나, 지금 잘 나간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잘나가지도 않는데 변하는 것은 왜일까요. 먹고 살기가 빠듯한 때문이라고 말하면 절반의 입막음은 될 런지요. 가고 싶어도 갈 데가 많지 않은 세상입니다. 반겨주는 곳을 찾기는 더 어렵습니다.

"콩나물국에 밥 말아 묵고, 술 무라 캤지"
오늘 저녁, 이모의 그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글.사진 /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박창원의 인(人)> 연재를 시작합니다. 사연 있는 대구경북의 어르신을 찾아 그 삶을 매주 이어가려고 합니다.
대구 염매시장 대폿집 곡주사 이모부터 자유당 독재에 맞섰던 투사들까지, 굴절된 역사 삶으로 새긴 그 사연들을 엮어가려고 합니다. 또, 그 사연에 사연이 있으신 독자들의 글도 함께 싣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평화뉴스
 
* 곡주사 외상장부에 이름 올리신 분들, 곡주사 이모와 애뜻하셨던 분들의 사연 기다립니다.
- 보내실 곳 : 평화뉴스 pnnews@pn.or.kr / 053-421-6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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