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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소녀, 이제야 푸는 광주 보따리
<교환학생의 경험> 남혜정 / "항쟁, 그런 공기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2010년 07월 09일 (금) 10:23:42 평화뉴스 남혜정 인턴기자 pnnews@pn.or.kr

남혜정(경북대) 인턴기자는 '교환학생'으로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전남대에서, 7월부터는 제주대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주'의 일상과 그의 낯선 '광주' 경험을 글과 사진으로 보내왔습니다 - 평화뉴스


“삐~, 카드를 다시 대어주십시오.” 반복되는 버스카드 오류 메시지에 당황하여 가방 주머니를 헤집는다. 광주 교통카드, 광주은행 체크카드, 대구 교통카드, 제주 T머니 등등 그동안 광주와 제주를 여행하면서 쑤셔 넣었던 수많은 카드 중에서 겨우 하나를 찾아내고는 급히 앉았다. 내가 열심히 찍어대고 있는 것이 ‘백록사’라고 적힌 제주대학교 기숙사 식당 카드임을 확인하곤 괜히 멋쩍다.

제주도, 불나방처럼 무작정...

그렇다. 난 제주에 있다. 지난 7월 토익을 치자마자 전주로 날라서 친구와 조우했다가, 목포항에서 배타고 제주 온지 오늘로 꼭 열흘이 된다. 자꾸만 부르고 싶은 예쁜 이름의 올레를 걸으며 제주도를 만끽하는 데 하루 5시간 정도면 된다고 블로그나 여행서적에 적혀 있길래 불나방처럼 무작정 뛰어들었는데, 기숙사에 들어오면 벌겋게 익은 피부와 후들거리는 다리를 잡고 소처럼 우는 소리를 한다. 그래도 제주대학에서 오후 5시까지 수업듣느라 제대로 놀러한 번 못간 룸메이트 언니가 “오늘은 어디 갔다왔냐”는 호기심과 기대에 부응하려면 그저그런 코스는 못가겠다고 정신이 버쩍 든다.

   
▲ (사진 왼쪽) 서귀포 새섬에서... / 짙은 해무 낀 법환 포구

아침엔 저절로 모닝콜이 되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바다로 출석체크하고, 뻥 뚫린 516 도로를 타고 퇴근한다. 맡은 직책은 올레꾼으로, 하는 일은 바다 앞에서 하염없이 머물기이다. 가끔씩 필요할 땐 달아나는 게도 잡고, 탈출을 앞둔 빠삐용처럼 반복되는 파도의 패턴을 세어보기도 한다. 부러워하는 친구들과 직장인들의 소리가 벌써 들리지만 학생도 힘들긴 마찬가지니 너무 부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자와 바다는 돌아서면 그립다더니...

정체 되어 있는 내 토익점수가 좀 걱정되긴 하지만, 이 때 아니면 언제 놀까나. 마음껏 쓰고 주머니과 배가 허락하는 대로 먹고 있다. 전복뚝배기, 성게미역국, 자리물회, 서귀포 자장면, 고기국수 바다란 바다는 다 마셔 봤다. 한 번도 곁에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언제나 보고픈 바다 앞에서 한 시간씩을 머물고, 내일 찾아가면 또 변해있는 풀과 파도의 경이로움을 신기하게 관찰하느라 한 나절이 지나도 계획한 여행 진도는 반이 안나가간다.

룸메이트인 서울 친구는 CC라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제주에서 새 남자친구를 만나서 매일이 설렌단다. 남자와 바다는 돌아서면 그립다더니 제주는 누군가에게 없던 로맨스도 만들고, 나에겐 그토록 갈증을 느꼈던 바다 쪽으로 한 뼘 더 다가가는 시간을 선사했다. 내 고향 안동의 조상님들은 아예 간고등어를 만들어 곁에 두지 않았던가.

제주 소녀가 될 것인가, 제주 미아가 되어 헤멜 것인가가 앞으로 남은 방학의 화두이다.
  
   
▲ (사진 왼쪽) 게스트하우스 같은 기숙사 / 주상절리대 앞에서 룸메 선나와 필자(오른쪽)

제주에 오기 지난 4개월 동안 광주 전남대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었다. 요즘 대학에서는 교환학생 제도라고 해서 최장기간 2년까지 협정을 맺은 학교를 마음껏 다닐 수 있다. 경북대는 국립대라서 서울대부터 제주대까지 갈 수 있는데, 전남대는 영호남 교류 차원에서 기숙사비를 제외한 학비가 일체 없다. 제주대는 이번 여름 계절학기에 경북대 학생들만 하더라도 700명 정도가 학번을 부여 받았다. 이러니 강좌가 많아서 제주에는 오지 않고 인터넷 수업만으로 학점을 따는 학생들도 있고, 스킨스쿠버 수업을 들으면서 짧지만 강렬한 체험을 하고 가는 친구들도 있다.

개중에는 나처럼 기숙사를 기점으로 여행을 다니는 친구들도 많다. 20일을 조식과 석식을 포함해 깨끗한 기숙사에 머무는 데 단돈 이십만원이면 되니까, 학생일 때 이것저것 많이 해 보고, 마음껏 기회를 누려보라는 선배들의 충고는 틀린 게 없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여행하기 좋은 제주와 달리 광주 역시 대구처럼 도시라 자취방의 벽지와 장판의 색깔만 달랐지 대구에서처럼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르고, 취업 관련 스터디에 몰두하게 되었다. 광주의 생활은 스터디로 만난 친구들만 빼면 억지로 입에 털어넣는 뻥튀기 과자처럼 무미건조했다.

그래도 환경이 환경인지라, 약 4개월에 달하는 오월 광주의 경험은 고민할 거리를 한아름 안겨주었다. 딱히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은, 5.18 30주년을 혁명의 진원지 광주에서 그것도 모여놀기 좋은 계절에 5월에 광주에서 머물게 되었다.

하나, 광주는 종일 비가 내리고 대구는?

광주에 도착한 3월 1일부터 줄곧 비가 내렸다.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영남대 원룸촌과 너무도 흡사한 전남대 원룸촌에 자리를 잡고 금남로와 5.18 항쟁 당시 분수대 토론이 벌어지곤 했던 구 도청까지 걸어가 보았다. 진지하게 전남대 캠퍼스 정문에 위치한 5.18기념관도 둘러보고, 그리고 두 달 뒤인 5.18 전야제 행사 때 다시 금남로를 찾았다.  

5.18항쟁이 올해로 30돌이라 행사 몇 주 전부터 엄청난 홍보 전단이 뿌려졌다. 광주 5.18의 분위기를 맨 처음 느낀 곳은 < 5.18마라톤>에서였다. 코스만 5.18km였지 사실 광주항쟁과는 전혀 관련 없는 행사였다. 연두색 조끼를 입은 민주당 후보자들과, 회사 홍보카드를 흔들며 뛰기 시작한 사람들은 갑자기 사라졌다가 결승점에서 다시 나타나곤 했다.

전남대 총학생회 소속 사람에게 물으니, 항쟁 당시 복장을 갖추고, 학생과 교수가 함께 하는 가장 행렬이 제일 볼만 할 것이라 하였다. 전남대에서 시작하여 전야제가 열리는 금남로에서 다른 사람들과 합류해서 서로 즐기는 그런 행사였다. 비가 엄청 많이 와서 신발 속도 꿀럭이고 멀리서 쫓다보니 결국은 행렬을 놓치고 횡단보도에 갇혔다. 그 사이에서 축제 분위기를 난도질 하는 차량들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문화제란 모름지기 대오를 놓치더라도 아무 꽁무니에 합류할 수 있을 만큼 전체가 좀 들썩여주고 많은 이들이 참여해야할텐데 차량 사이에 갇혀버리니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었다.
 
시민군에게 나눠줬다는 주먹밥은 비가와서 일찍 철수했는지 보이지 않았고-나중에 금남로에 가서 얻어 먹었지만 정말로 밥만 뭉쳐 줬다는-힘에 부쳐서 김밥천국엘 갔다. 산골마을에서나 여기서나 힘들 때 언제나 반겨주는 것은 김밥집과 편의점이다. 그래서 천국이고, 패밀리이다. 앉아서 잡지를 보는데, 서울발 광주 관련 기사들을 보니 다들 회고주의자가 되어서 광주를 추억하고 있었다. 이곳은 많은 이들에게 빛바랜 추억의 도시였다. 그날의 감흥은 잡지에서도, 광주에서도 잘 느끼지 못하였다.

뒤늦게 찾아간 금남로. 분장을 하고 풍물을 울리고 연기를 하면서 직접 참여한 시민들은 진지하기도 하고, 즐거워서 어쩔 줄 몰라 보였다. 특히 여수도 진남제도 그랬지만 이곳 전야제도 어린 남자아이들이 참 잘 논다. 다분히 정치적인 구호가 적힌 종이를 들고, 흔들고, 춤추고.....그럴 때마다 여과없이 순수한 친구들을 봐서 기분이 좋아 진다. 

진남제의 여수도, 5.18 가장행렬의 광주도 경찰이 에스코트하며 주요 도로를 아예 통제하는 협력적인 면이 인상 깊었다. 특히 여수는 행사한다며 아주 자연스럽게 가던 버스를 운행중단하고 사람들은 그걸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여유가 있었다. 대구에서는 어렵게 만든 대열도 승용차 하나가 뚫고 지나가 버린다. 광주에서도 행진 대열을 난도질하는 차량들로 쉽게 따라가지 못했었다.

그러고 보면, 대구에서 축제나 문화제를 할 때면 언제나 비가 온다. 사람들의 냉소어린 시선과 무관심이란 비. 그리고 지역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소규모 단체들과 소통하려하지 않는 지자체들. 전국적으로 축제나 문화제에 대한 무관심이란 비가 내리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상대적으로 대구는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둘, 인생은 혼자 뛰는 것이 아니여

광주에 와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마라톤에 부쩍 관심이 생겼다. 동호회에 가입한 것은 아 니지만, 광주 생활 내내 함께했던 언론 스터디원들이 등산과 운동을 좋아해서였다. 5.18 마라톤 뛰고 탄력 받아서 냅다 신청한 5km 핑크 마라톤. 페이스 조절 못한 저번 레이스의 실패를 만회하려고 이번에는 나에게 맞는 페이스메이커를 더 성실하게 따라붙었다. 물론, 이번에도 역시 나의 페이스메이커는 할아버지.

   
▲ 마라톤 완주 직후
'관리의 스포츠'라고도 불리는 마라톤은 꾸준한 연습과 체력관리가 관건인데, 그들은,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먼저 달려와서 그런지 페이스조절에 익숙하다. 사람들이 앞서가든 말든 자기 페이스를 유지한다. 어린 친구들은 전속력으로 질주하다가 걸었다가 쉬었다가 딴 길로 새었다가를 반복해서 결국 뒤쳐지고 마는데, 노년층 러너들은, 묵묵히, 또 정직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뛰다보면 느껴진다. 벌겋게 달아오른 목을 꼿꼿하게 유지하며 믿음직하게 뛰는 그 모습이란.

1km 남은 지점에서 맞딱드린 오르막언덕, 그만 달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그때 마침 내 앞 커플이 나를 끌어주었다. 여자친구를 따라다니며 코치해주는 남자친구. 여자친구 뒤에 바짝붙어서 그 남자 러너가 지시하는 대로 힘들면 고개도 숙였다가, 지치면 호흡도 가다듬었다가를 반복하니 나는 어느새 운동장에 들어와 있었다.

트랙에 들어서서도 나를 이끈 건 사람들의 박수소리였다. 사실, 어제밤까지만 해도 죽음의 3km만 생각하면 오금이 저려오곤 했다.

셋, 스테레오 스피커 단 광주

6.2 지방선거도 광주에서 치르게 됐다. 난 일찍이 부재자 투표를 마치고, 선거일에는 텅 빈 캠퍼스를 혼자서 만끽했다. 메니페스토. 공약을 계량화해서 후보를 꼽는다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1학년 때 같은 동기 오빠의 뚜렷한 투표 원칙 -민노당 아니면 여성 후보자를 뽑는다는-이 마음에 들어 그때부터 나도 나름의 기준을 개발했으나 진보 정당이 갈라진 후로는 그것도 영 시원찮았다. 시의원 아래로 갈수록 정당은 하나 둘 줄어들고 장미빛 미래를 보장한다는 공약들도 성형한 얼굴처럼 별반 차이가 없어서 내가 어떤 후보를 뽑아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결국에 한 표는, 모르는 게 없다는 척척박사님이 골라줬다. 지역선거는 로또 선거라는 게 괜한 말이 아닌 듯했다.

   
▲ 광주북구청. 부재자 투표소 앞 풍경
부재자 선거 끝나고 빌라 나서다가 우편함에 꽂힌 부재자용 봉투 다발들이 보였다. 신고는 학교에서 단체로 받으니 손쉽게 했다가 직접 투표소로 가는 벽까진 넘지 못했나 보다.

나 역시 달콤한 잠과의 투쟁에서 어렵게 쟁취한 투표소행이라 이해는 되지만 서도, 자신의 실수로 부재자 투표용지가 도착하지 않자, 너무도 당연한 듯이 고향 군산으로 향했던 친구를 보면서 마음의 각을 다시 잡는다.


대구도 광주도 투료할 때 참 화끈한 것은 꼭 같다.

6.2 지방선거 때 이번에도 압도적인 지지율로 대구 김범일 시장이, 경북은 김관용 도지사가 연임을 하였다. 광주는 강운태 후보가 광주시장이 되었다. 강 시장은 내세웠던 무등 축구장을 야구 경기장으로 바꾸겠다는 공약이 나로선 생소하면서도 재미있었다. 학과행사로 캠퍼스 도로에서 자리깔고 야구경기 시청하는 학생들에게나 야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맥주 공짜로 쏘는 맥주집이 꽤 된다. 이 곳 사람들 유난히도 야구를 좋아한다. 선동열을 비롯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10명의 선수들 가운데 9명을 배출했다는 그 유명한 광주일고의 영향인지 모르겠다.

대구도 광주도 똑같이 생업과 취업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고 꼭같이 화끈하게 자기지역 당을 뽑는 유권자들이 있지만 각자가 밟고 서 있는 지역기반이 다르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어느 소설가의 말을 빌린 것인데 민주주의는 양쪽 스피커에서 입체적 음향이 울려 퍼지는 '스테레오 스피커'와 같은 것이다. 각자의 악기를 협연하는 오케스트라와 같은 삶을 그대로 옮겨놓으려면 이 '스테레오 스피커'가 필요하다. 광주는 지역 주요대학 취업률 전국 평균 이하에다, 때묻은 각설탕처럼 세워진 건물보다는 제멋대로 뻗은 풀과 길을 좋아하는 곳이다. 통계와 수치가 말해주 듯이 주류의 논리에서 뒤떨어지지만, '스테레오 스피커'에 가까운 지역인 곳 것 같다. 모노 스피커가 가진 자의 재산을 보호하는 데 일조한다면 스테레오 스피커는 더디더라도 조금 더 나은 세상을 향해간다.
 
5.18학술제에 참석한 강연 중에 밑줄 그은 구절을 남기자면, 이렇다. “...흔히 시민의식이 최고조에 달했던 민주주의 사회에서조차 열성적인 시민들은 소수였다. 민주적 사회란, 모든 시민이 열성적으로 임하는 게 아니라, 그런 사회가 될 수 있는 잠재적인 가능성을 지닌 사회이다.” 그렇다. 지금 내가 바라보는 사회의 단면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쉽게 냉소할 것이 아니라, 공간과 사람들이 가진 가능성과 에너지를 보고 희망을 평가해야겠다. 그런 점에서 광주는 아무래도 대구보다는 그런 가능성과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다.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지뭐, 라고 얘기들 하겠지만 의식하지는 않지만 정치적 행사를 일상적인 문화로 받아들이는 열린 사람들, 쉽게 헤쳐 모일 수 있는 구 전남도청과 전남대 캠퍼스 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5.18 그리고 항쟁. 그리고 그런 공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6.2 지방선거의 캠퍼스 풍경

햇빛 쏟아지는 6.2 지방선거 날의 전남대 캠퍼스. 학생들이 빠져나간 캠퍼스는 민주당의 텃밭인 광주의 또다른 다른 얼굴처럼 보인다. 여기저기 걸린 민주당의 녹색 플랑도 그렇고 여러모로 녹색 도시다. 일찍이 부재자 투표를 하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캠퍼스를 여유롭게 만끽했다. 설이든 추석이든 혼자서 광활한 캠퍼스를 차지한 이 기분이 좋다.

   
▲ (사진 왼쪽) 사회대 앞 윤상원 열사 조각 / 사범대 옆면의 광주스러운 벽화

경대에 일청담이 있고, 광주에는 용지와 봉지가 있다. 인문사회계열 단대와 학생회관, 도서관의 정중앙에 위치한 봉지가 오며가며 모여서 노닥거리거나, 일벌이기 딱 좋은 풀밭에 둘러쌓여 있다. 웬만한 행사는 다 여기서 열린다. 잠자리 안경과 통기타, 그리고 자장면으로 대변되는 캠퍼스의 낭만이 이미 끝나버린 과거라는 데 낙심했던 때가 있었다. 캠퍼스에 낭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낭만을 누릴 만한 공간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해 보았다.

여기 봉지 근처에는 학생들이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까 먹고, 가요제 행사같은 것이 열리면 착석한 사람들과는 또 별개로 삼삼오오 모여 분위기를 즐기는 즐긴다. 예전에 항공에서 촬영한 경북대 캠퍼스 사진을 훑어본 적이 있었는데, 녹색 캠퍼스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회색 건물들이 빼곡 했다. 지금도 (공간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개교 이래 가장 큰 돈을 들여 산학동과 연구동을 열나게 짓고 있다.

   
▲ (사진 왼쪽) 봉지(鳳池) 그리고 5.18 기념관 / 봉지 근처 풀밭에서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 '오월공감' 행사 중

날씨에 취해서 찍지는 못했지만 봉지 사진에서 3시 방향에 박승희 열사 관련 표석이 있다. 91년 4월 29일 노태우정권 퇴진 결의대회 중 "정권 타도, 2만 학우 단결"을 외치며 분신한 흔적인데, 2시방향으로 보이는 갈색 건물(5.18연구소 및 기념관) 에서부터 불을 붙인 후 이 용지 근처까지 왔다고 한다. 당시 사진을 봤는데, 그녀의 몸에 휩싸인 불을 끄려는 한 남학생이 있고 무표정 한 두 명의 남학생이 배경으로 서 있었다. 20일간 병상에 있다가, 25일 망월묘역에 안장됐다.

   






글.사진 / 평화뉴스 남혜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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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
(211.XXX.XXX.42)
2010-07-12 00:08:24
쩡!
많이 탔구낭ㅠㅠ 제주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거 같아 내가 다 뿌듯하구만ㅋㅋ
전체기사의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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