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일전 입주를 앞둔 대구의 한 신규아파트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불행하게도 입주가 거의 되지 않아 잔금을 납부한 사람은 10%에 불과한 상태였다.
납부를 하지 않는 이유를 들어보면, 아파트 로비와 엘리베이터 입구, 복도의 바닥과 난간 처리 등 모델하우스에서 본 내부공간과 달리 외부적인 공간들이 조잡하거나 색상이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잘못 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런 문제보다 잔금 납부를 거부하는 이유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첫째, 이 아파트를 분양받은 어느 주부의 말처럼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2년전에 모델하우스에서 보여진 내부공간의 화려함에 비해, 직접 살기 위해 현장에 와서 본 완성된 아파트는 주변환경이나 외부공간(아웃테리어) 등이 실망스럽다는 것이었다. 비싼 종이에 그려진 화려한 분양 카달로그 내용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다는 말이다. 아파트 선분양의 가장 큰 문제점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둘째, 분양받은 사람들 가운데 실제 입주자는 그리 많지 않은 듯 보였다.
즉, 잔금을 납부하게 되면 등기를 한 뒤 되팔아야 하기 때문에, 잔금을 납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파트 분양권으로 팔고 싶은 것이다. 결국, 잔금 납부 지연에 대한 책임을 회사측에 떠넘기고 싶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셋째, 많은 사람들이 분양권 전매를 목적으로 분양을 하다보니, 잔금을 낼 여력이 없는 경우도 있는 듯했다.
사실, 앞서 말한 이 아파트는, 분양 초기에 분양율이 극히 저조해 중도금을 무이자로 한 뒤에야 분양이 됐다. 그리고, 지난해 10. 29 부동산투기대책으로 대구지역이 아파트 분양권 전매를 막는 투기과열지역으로 묶이면서, 분양권 전매가 자유로운 이 아파트에 사람들이 몰려 100% 분양에 이르게 된 것이다. 즉, 계약금 몇 천만원을 넣고 중도금 납부 부담없이 잔금때까지 가면 웃돈이 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분양을 받은 뒤 웃돈거래가 없으니 지금 크게 후회하는 듯 보였다.
넷째, 단기 차액을 노린 투자자들이 꽤 있는 것 같았다.
중도금 무이자 조건에서, 입주 시기가 가까울수록 프리미엄이 빨리 붙을 것이란 기대 때문에 투자자들이 모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실소유자가 아닐 경우 잔금 3-4억이 필요하고, 그것이 부담으로 온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즉, 잔금 낼 시기가 가까워오자 잔금납부의 압박을 느껴 분양금의 본전이나 마이너스까지도 감수하며 경쟁적으로 매물을 내놓으니, 결국 매수자와 입주자에게는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이 아파트 분양시장은 아주 어둡고 선풍기의 열기와는 달리 싸늘한 분위기였다.
대구의 아파트는 "포화상태"... 아파트 분양, "실입주자가 충분한 자금을 갖고 분양받아야"
지금도 대구지역 아파트 분양시장에서는 ‘중도금 후불제’의 방법으로 입주자를 모집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계약금 일부를 넣고 나면 3년후 잔금을 넣으면 될 것이고, 그 긴 기간동안 아파트 분양가는 오를 것이니 일단 남들이 하는대로 해보자’고 가볍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앞서 말했던 아파트 입주현장처럼, 대구의 많은 아파트들이 입주 때가 되면 이런 어둡고 가슴아픈 현실로 나타날 것 같아 큰 걱정이다.
대전이나 부산 등은 아파트 신규 분양이 불가능 할 정도까지 이르렀다.
서울 등 수도권도 부동산시장이 침체 국면에 빠져 들었다며, 하반기의 아파트 분양 계획들을 내년 상반기 이후로 대거 미루고 있다고 한다. 부동산 정보업체 [네인즈]에 따르면, 올 하반기에 아파트 분양계획을 세웠던 건설업체 103개사(235개단지 13만9509가구)에 최근 문의한 결과, 12개 업체가 12개단지 6336가구의 분양을 내년 이후로 미루기로 결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올 연말에 경기 남양주시에 1066가구를 분양하려던 벽산건설은, 분양시장침체가 지속되자 내년 6월쯤으로 분양을 미루기로 했다. 또, 동양메이저건설과 성원산업개발, 삼정물산건설, 한화건설 등도 경기도 과천과 부천의 아파트 분양 계획을 6개월가량 늦추기로 했다.
이같이 대구의 경제사정보다 훨씬 좋다는 수도권과 부산, 대전 등은 아파트 분양을 전부 고민하고 있는데, 대구만은 외부건설업체가 겁없이 분양계획을 내놓고 있다. 그것도 상상할수 없을만큼의 높은 가격으로 분양하는 것을 보면, 대구시민들의 신규아파트 분양 열풍을 이용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대구는 한때 전국에서도 자랑할만한 주택회사들이 있었다.
그 주택회사들은, 대구경북 시도민들에게 좋은 환경의 아파트를 공급해 살 수 있도록 하는 기회도 주었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모델과 내부자재로 시민들 기호를 변화시켜 새 아파트로 옮기지 않으면 안되는 불안한 마음들을 만들어 놓았다.
대구는 소비도시라고 말한다. 이는, 생산하는 곳에 자금을 투자하지 않고, 온통 먹는 일과 새 아파트에 옮겨 사는데 자금을 쓴다는 이야기다. 아파트 신축은 거의가 외지업체이고 아파트 입주는 모두가 대구시민들이다. 몇몇은 아직도 아파트를 거주의 공간이 아닌 투기의 대상으로 분양받을려고 하고 있다.
대구아파트는 포화상태다. 기존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고 신축하는 나홀로 아파트는 분양이 안 돼 가격 낮추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나마, 거래가 없어 아파트를 완공시킨 주택회사들의 애간장이 녹는다.
아파트 선분양이 계속되는 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지컷’으로 만든 분양 카달로그에 현혹될 것이다. 그리고, 그 카달로그만 보고 분양 받는다면, 머지 않아 잔금 지급일이 다가오고 결국 필자가 방문한 입주 현장들이 재현될 수도 있다. 아파트 분양은 실입주자가 충분한 자금을 갖고 분양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정용(부동산 평론가. '정용 부동산투자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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