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보기

시민운동, "평생 몸 바칠 각오해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역 일꾼을 찾아서 2>
구미경실련 조근래 사무국장... “지역 시민운동 10년”
"시민운동, 폭로 등 네거티브 방식을 넘어 시민을 위한 정책.대안 찾기에 나서야"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은 평생 그 지역에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평생 몸 바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구미경실련 조근래 사무국장(42.사진).구미경실련이 창립한 지난 '94년부터 10년째 지역 시민운동에 힘쏟고 있다.
특히, 구미경실련은 '금오산 정상의 미군기지 반환운동'을 비롯해 경북 뿐 아니라 전국 경실련 가운데 가장 모범적인 시민운동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10년째 혼자 상근하며 버팀목이 돼 온 조 국장의 역할이 있었다.
구미시 원평1동 금오산네거리 인근에 있는 사무실을 찾아, 사연 많은 그의 삶과 시민운동에 대해 들어봤다.

중졸이 최종 학력... 고교 합격하고도 등록금 없어 진학 못해
15살 봉제공장이 첫 직장... 노동운동으로 잔뼈 굵어 시민운동으로 뿌리내려



조 국장은 지난 '62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77년에 구미중학교를 졸업했다. 성주에 살 때는 기와집이 2채나 있을정도로 넉넉한 살림이었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극심한 가난을 겪어야 했다. 살던 집을 팔고 구미로 와 초가집 생활을 하게 된 것도 이 때부터다.
"아버지는 곡상을 했어요. 쌀을 사 정미소에 팔아 돈을 꽤 벌었는데, 갑자기 정부수매제도가 시행되면서 이런 민간수매제도로 먹고 살던 사람들이 어렵게 됐지요"

구미의 초가집 생활은 배움의 길마저 막고 말았다. 5남1녀 가운데 4남인 조 국장은, 초가집 단칸방이 비좁아 일곱 식구가 다 자지 못하게 되자, 집에서 1km나 떨어진 아버지 친구 댁을 매일 오가며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더 고통스러운 것은 진학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대구의 한 공업고등학교 야간에 시험 쳐 합격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입학금과 등록금을 낼 수 없었다. 결국 이것이 조 국장의 마지막 학력이 되고 말았다.
"그때 참 불만도 컸고 방황도 많이 했죠. 5남1녀 가운데 단 한명도 고등학교에 가지 못했으니 할 말도 없지만, 그게 학교의 끝이 될지는 정말 몰랐죠..."

조씨는 중학교 졸업과 함께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때가 15살. 낙하산을 만드는 구미의 한 봉제공장에서 3개월간 일한 것이 첫 직장 경험이다. 하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진학하지 못한 조씨는 다음 해 '78년부터 '80년까지 3번이나 가출하게 된다. 가출한 뒤 오갈 때가 마땅찮았던 조씨는, 친구 부모가 운영하던 다방에서 이른 바 '판돌이(DJ)'를 하게 됐고, 이 때부터 클래식 음반을 사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모은 음반이 무려 2,000여장. 방황하던 청소년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가진 것이 이제는 수준급 음악애호가가 됐다.

석달간의 공장생활과 가출로 3년을 보낸 조씨는, ’81년 구미의 한 안경렌즈 제조업체에 들어가면서 노동의 가치를 고민했다. 이 때부터 노동운동에 눈을 뜬 조씨는, 김천직업훈련원에서 금형 자격증을 딴 구미의 전기업체에 1년을 근무했고, ’85년에는 경기도 부천의 신발공장에서도 일했다.
그리고, ’86년에 구미로 돌아와 코오롱에서 일하는 한편, ’87년부터 [인천민주노동자연맹(인천노련)]의 지방대의원 활동을, [한국사회주의노동자동맹(한사노)] 활동을 하게 된다. 조씨는 이어, 진보정당에 관심을 갖고 ’90년 [한국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 사무차장을, ’92년에는 [진보정당 추진위원회] 구미지역 조직책과 정책실장을 맡기도 했다.
조씨는 이같은 노동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93년 10월부터 구미경실련 창립 준비에 들어가 다음 해 4월에 창립한 뒤, 지금까지 10년동안 사무국장을 맡아 구미지역 시민운동에 힘을 쏟고 있다.

“시민운동, 행정 감시를 넘어 적극적인 정책개발 나서야”
구미경실련, “어린이 도서관 만들기 등 예산집행시민운동, 금오산 정상 미군기지반환운동 큰 성과”



조씨는 구미경실련의 활동을 크게 두 단계로 나눠, 초기 5년은 시정감시와 폭로 등을 중심으로 한 ‘네거티브’ 시민운동으로, 최근 5년간은 ‘예산집행시민운동’으로 정리하고 있다. 즉, 시민운동이 행정 감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낸 세금 우리가 집행해보자’는 적극적인 정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시민운동도 시민의 삶의 질을 생각할 때입니다. 시민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시민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적극적으로 정책을 개발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행정을 감시하는 것은 시민운동의 기본이지만, 이제는 그 한계를 넘어 시민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 행정에 요구해야 합니다.”

조씨와 구미경실련은 이같은 지향에 따라, 초기 5년과는 다른 적극적인 예산집행운동에 나섰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분수 도시 만들기’. 구미에 물이 부족한데 따른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감안해, 구미시 원평분수광장과 동락공원, 시청 앞 등 모두 5곳에 분수를 설치하도록 시정에 요구했다. 이 사업에 따른 예산이 무려 80억원 규모.

구미경실련은 또, 지난 2003년에 구미시민 1만2천여명의 서명을 받아 어린이도서관 만들기에 나섰는데, 올해 실시설계비로 6억원이 편성된 이 사업의 전체 예산은 75억원. 오는 2006년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어린이 도서관이 구미에 들어서게 된다.

이밖에 80억원 규모의 구미천 자연하천조성사업도 제안했는데, 이같은 3가지 큰 사업의 예산 규모가 200억원이다. 조씨는 예산집행운동의 큰 성과라고 평가한다.

올해 구미경실련의 가장 큰 성과는 ‘금오산 정상의 미군기지 반환운동’이다. 지난 2월에 시작한 이 운동은, 현재 쓰지 않고 있는 미군기지를 없애자는 것으로, 미군과 국방부가 이같은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해금오산 정상이 50년만에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동안 미군기지와 송신탑이 국립공원인 금오산 꼭대기에 있어 시민들이 그동안 정상을 시민들이 제대로 밟아보지 못했기에 이 운동의 성과는 더욱 값지게 평가받고 있다.

현재 구미경실련의 재정은 오직 회원들의 회비로만 채워진다. 90여명의 회원들이 내는 한달 200여만원으로 조씨의 활동비와 운영비를 꾸려가고 있다. 이는 조씨의 원칙이기도 하다. “시민단체들은 자립이 원칙입니다. 지방정부나 기업으로부터 후원받기 보다는 시민의 힘으로 꾸려가야 합니다.”

조씨는 경북도정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되지 않는데 아쉬움이 많다. 지난 해 '경북도지사 관사 폐지운동'을 펼치기도 했지만, 중소도시 시민단체의 실무력에는 한계가 있어 도정에 대한 감시활동이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경북 중소도시 시민운동의 역량으로는 시.군 행정과 광역행정을 동시에 감시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각 시.군의 시민단체 가운데 경북도정을 감시할 책임자 1명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
조씨는 언론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언론의 단순 보도기능과 관급기사를 넘어서야 합니다. '중소도시 기자협회' 같은 것을 만들어, 기획기사와 대안을 통해 지역의 주요한 의견그룹으로 활동해야 합니다.”

그는 요즘도 구미시정에 대한 적극적인 감시와 정책활동을 펴고 있다. [구미시정책연구위원회]를 전면 개편해 실질적으로 시정을 연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과 함께, 구미와 김천, 상주 등 인근 3개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 [체험학습 교육도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조씨는 몇 년 뒤쯤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고 한다. 등록금이 없어 깨져버린 배움의 꿈을 잊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민운동에 더욱 힘쓸 때라며 자신의 꿈은 뒷날 얘기로 미뤄둔다.
"시민운동가는 그 지역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뚜렷한 목적의식으로 시민운동에 평생 몸바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전하는 그의 메시지 속에 시민운동에 대한 굳은 의지가 엿보인다.

글.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이 글은, 평화뉴스에 2004년 7월 22일 보도된 내용입니다.
(평화뉴스 http://www.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치를 생각하는 대안언론, 평화뉴스 후원인이 되어 주세요. <후원 안내>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