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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하지 못한 친일파, 현대사의 불행"
역사학자 '이이화' 대구 강연..."친일파 후손들, 과거 조상의 잘못 인정해야"
2010년 11월 09일 (화) 10:19:22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pnnews@pn.or.kr

   
▲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이 '친일파 해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2010.11.8 대구MBC 강당)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친일파 해부'를 주제로 한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의 강연이 11월 8일 저녁 대구MBC 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강연은 (사)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와 (사)대구사회연구소가 공동주최한 '민주시민아카데미' 5강 중 두번째 순서로, 시민단체 회원을 비롯해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시간가량 이어졌다.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 현대사의 불행"

이이화 선생은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 문제를 제대로 처리했으면 후유증이 없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해 지금까지 그 문제가 이어져왔다"며 강의를 시작했다.

친일파 청산문제에 대해 이 선생은 프랑스와 독일의 사례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그는 "2차대전 이후 프랑스는 민족부역자들을, 독일은 전범자들을 몇 년 안에 깨끗이 청산해 두 나라는 현재 좋은 협력관계에 있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했고, 일본도 전범자를 정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두 나라가 그렇게 하지 못한 점이 현대사의 불행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월남 친일파, 이승만 '반공' 정치세력으로 변신

해방이후 이승만 정부의 남한은 일제시대 친일행위를 저지른 경찰, 군인, 교사, 관료들을 그대로 등용한 반면, 북한은 친일관료와 지주들을 청산했다. 때문에 북한의 친일파들이 대거 월남했고, 이들 친일파는 서북청년단 등을 조직해 활동하면서 이승만 정부의 반공노선을 따르는 정치세력으로 변신했다. 

또, 1948년 국회에서 반민족행위처벌법이 통과돼 악질 친일분자를 처벌하려하자 친일경찰들이 앞장서 법안 통과를 막았다. 그 결과 1950년 3월까지 680여명만이 조사를 받았고, 실형 7명과 30여명의 가벼운 처벌로 흐지부지 됐다.

   
▲ 이이화 선생 강연에는 시민단체 회원을 비롯해 50여명이 참석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생계형 친일행위, '친일' 범주에 넣을 수 없어"

이 선생은 '친일'의 정확한 범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는 "청년들의 강제 징용, 정신대 동원, 노동자 징발 따위의 악랄한 반민족.반인권적 친일을 한 세력들이 아닌, 면사무소.위생경찰.금융조합에 취직해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친일행위를 한 경우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친일'의 범주에 넣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이 사람들까지 친일세력으로 분류한다면 친일파가 아닌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선생은 "이들 생계형 친일파를 제외한 나머지를 친일의 범주에 넣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을 발행했고,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에서 악질적 친일파의 재산을 조사해 국고로 환수했다"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친일파 청산 작업들에 대해 이 선생은 "차별과 복수의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라며 "과거의 행위에 대해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친일파 후손들이 조상의 잘못 때문에 평생 죄책감을 갖고 살 필요는 없다"며 "과거 조상의 잘못을 인정하고, 민족 화해와 번영을 통해 미래 사회를 열어가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지난 11월 1일, '되새기자 경술국치 100년'을 주제로 열린 이이화 선생의 첫 강의(2010.11.1 대구MBC 강당)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개화파.동학...일제 식민지 없이도 근대화 이뤘을 것"

이에 앞서, 이이화 선생은 지난 11월 1일 저녁 같은 장소에서 '되새기자 경술국치 100년-을사늑약에서 경술국치까지'를 주제로 첫 강연을 가졌다. 이이화 선생은 일제에 의한 강제병합 과정과 식민지 지배정책, 우리민족 문화말살 정책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한일병합 이전부터 개화파의 개화사상과 동학농민혁명 등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자생적 근대화를 위해 노력해왔다"며 "일제 식민지 시절 없이도 우리는 근대화를 이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경술국치' 용어에 대해 "일본이 우리보다 더 능동적으로 진행한 사건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치욕으로 여기는 것은 좋지 않다"며 "경술국치 보다 '한일강제병합'으로 바꿔 쓰는 것이 합당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많은 용어들도 현 시대에 맞게 바뀔 필요가 있다"며 "임진왜란은 '조일전쟁'으로, 병자호란은 '조청전쟁'으로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이화 선생의 강연은 11월 15일과 22일 '왜 해방 전후사의 인식인가?'와 '박정희 바로보기'의 주제로 두 차례 더 열릴 예정이다. 재야 역사학자인 이이화 선생은 1937년 대구 비산동에서 태어나 부친에게 한학을 배웠고,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실, 서울대 규장각,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고전과 역사를 연구했다.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고구려역사문화재단 대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대표를 지냈으며, 평이하고 재미있는 문체로 일반에게 역사를 소개하는데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한국사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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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은
(122.XXX.XXX.65)
2010-11-09 11:58:47
'해방'을 광복또는 독립으로~
해방을 흔히들 쓰곤하는데 개인적으로 광복,독립을 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왜냐하면 노예해방을 보면 알지요.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제국주의에,친일세력에 투쟁해서 쟁취한 독립을 욕되게하는 식민사관의 대표적 잔재아닐까요?엄밀히 말하면 일제에서 미제(군정)로 바뀌었을뿐,오늘까지 전시작전권 환수가 안되잖아요.통탄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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