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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노숙자, 대구역의 밤...
대부분 찬 바닥에 앉거나 선 채로 '무료급식'...아빠 따라 온 아이도
2010년 12월 01일 (수) 13:12:20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pnnews@pn.or.kr

무료급식 시작 1시간 전부터 한 두 명씩 지하철역 입구 주위로 모여들었다. 긴 수염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부터 색 바랜 군용 점퍼를 입은 젊은 청년까지 다양했다. 몇몇은 아예 급식대 앞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자리를 잡았다. 무료급식소 주변의 저녁 7시 30분 풍경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11월 30일 저녁, 대구역 뒤편 광장 노숙인무료급식지원센터를 찾았다. 30분정도 지나자 추위에 어깨가 움츠려들었지만 다행히 주변 건물들이 찬바람을 막아줘 조금은 덜했다. 무료급식은 8시 30분에 시작한다. 그러나, 8시가 지날무렵 어느 샌가 150여명이 급식소 앞에 줄을 서있었다. 보통 하루 200명에서 250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 배식 하고있는 봉사자들과 줄을 서 있는 사람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대구역 노숙인무료급식지원센터 김무근(칠성자율방범1대)씨는 "밥을 일찍 주면 노숙인들이 소화시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며 "밥을 먹은 뒤 바로 하루를 정리 할 수 있도록 일부러 늦은 시간에 배식 한다"고 설명했다. 또 "13년 전 처음 무료급식을 시작했을 때는 서로 먼저 먹겠다고 싸우기도 했지만, 지난 5년 동안 번호표를 나눠주며 질서를 잡기 시작 해 지금처럼 차례를 지키게 됐다"고 말했다. 이 센터는 지난 1998년, 김무근씨가 낸 돈과  봉사단체들의 도움으로 설립됐으며, 28개 봉사단체가 부담하는 식재료비와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배식시간이 가까워지자 봉사자들의 손길도 바빠졌다. 앞치마를 두른 남성 봉사자들은 컨테이너 안에서 밥과 국, 식판과 수저를 나르기 시작했고, 여성 봉사자들은 설거지를 위해 큰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있었다. 이곳에는 28개 단체가 매일 돌아가며 무료급식 봉사를 한다. 식재료비도 봉사단체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구에서 1년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저녁 무료급식을 하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준비가 끝나자 배식이 시작됐다. 오늘 식단은 시래기국과 멸치조림, 콩나물무침과 김치였다. 차례 차례 식판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반찬을 받아갔다. 대부분 지하철역 담장위에 식판을 올려놓거나 찬 광장 바닥에 앉아 식사를 했다. 몇몇 사람들은 역 계단이나 주변 화단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이따금 시민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가기도 했다.

   
▲ 대구역 뒤편 광장 바닥에 앉거나 선 채로 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행렬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8살쯤으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온 것 같았다. 희고 갸름한 얼굴에 웃음기를 띤 여느 아이들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어린아이도 왔네"하며 봉사자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무근씨는 "며칠 전부터 아이가 무료급식소에 나왔다"며 "아버지도 이곳에 모습을 보인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아이는 역 입구 계단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했다. 옆에서 같이 밥을 먹던 한 아주머니가 아이에게 "아빠와 단 둘이 왔냐"고 묻자, 아이가 "엄마는 집에 있어요 . 엄마가 이곳에 오기 싫어해 아빠와 함께 둘 만 왔어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아버지는 아이에게 "뭐 하러 그런 말을 하냐"며 나무랐다. 이어 아주머니에게 "우리 애랑 왔는데 뭐 잘못된 것 있느냐"며 따졌다. 그 뒤 두 부자는 조용히 밥을 먹고 자리를 떠났다.

   
▲ 지하철 대구역 입구 앞 벽 위에 식판을 올려놓고 식사하는 사람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30여분 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갔다. 대구역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지하철을 타고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많던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광장은 순식간에 썰렁해졌다. 김씨는 "대구지하철은 새벽에 모두 문을 닫기 때문에 노숙인들이 주로 반월당 지하도나 대구역 대합실, 쪽방에 거주한다"고 설명했다. 또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밖에서 자다가 얼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급식이 모두 끝난 밤 9시쯤 대구역 대합실을 둘러봤다. 조금 전 광장에서 봤던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 의자에 앉아 불편한 자세로 잠을 청하거나 TV를 보고 있었다. 이렇게 노숙인들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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