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소수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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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함세웅 신부 대구 강연 / "피의 값으로 얻은 자유...지성인의 역할을"


"희생자들 피의 값으로 자유를 얻었다"
함세웅 신부는 이같이 말하며 4.19 정신을 역사적으로 계승해 나갈 것을 당부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만들어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함세웅 신부의 강연이 4월 19일 오후 경북대 우당교육관에서 열렸다. '이 땅의 정의 / 민주주의와 가톨릭사제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은 교수와 학생, 성직자를 비롯한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4.19혁명 51주년을 맞아 경북대 가톨릭교수회와 가톨릭교직원회, 가톨릭학생회가 공동주최한 강연이었다.

함세웅 신부
함세웅 신부
함세웅 신부는 4.19혁명 당시 겪었던 개인적 체험을 통해 강연을 풀어갔다. 1960년 4월 26일 낮 기도시간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하야 소식을 전한 당시 학장 신부의 강론이었다. 

"경무대 앞에서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는데, 바로 그분들의 피의 값으로 자유를 얻었다. 그분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 된다. 불사조는 죽을 때가 되면 나무 둥지에 자신의 몸을 비벼 불을 붙인 뒤 타죽게 된다. 타고 남은 뜨거운 재가 식으면서 새로운 알이 생겨나고, 그 알에서 태어난 새로운 불사조가 하늘을 날게 된다. 자신의 생명을 불태워 새로운 생명을 이어주는 게 불사조다. 경무대 앞에서 죽어간 시민들과 학생들이 바로 우리시대의 불사조다"


함 신부는 "4.19혁명 때 신학교 안에 있었지만, 사제는 모름지기 이 시대의 불사조가 돼야 한다는 옛 스승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이어 "예수의 죽음과 4.19 희생자들의 죽음,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의 죽음을 우리는 역사선상에서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에서 일어난 2.28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함 신부는 "지난 해 2.28민주화운동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2.28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4.19혁명을 설명할 때 2.28운동이 제일 처음 언급되는 만큼 절대 폄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2.28운동 때 독재타도에 대한 함성은 장엄했지만 다행히도 희생된 사람이 없었다"며 "누군가 희생됐을 때 교훈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불교의 석가모니와 이슬람교의 마호메트도 훌륭한 사람이지만, 이들과는 달리 예수만이 종교재판에 의해 타살 당했다"며 "여기에 그리스도교의 정신과 핵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함 신부는 "2.28운동 때는 희생자가 없었지만, 민청학련사건과 인혁당재건위 조작사건에 경북대 동문을 비롯한 통일운동의 선구자들이 희생된 것은 아름다운 영적 가치가 된다"며 "늘 4.19혁명의 정신을 기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함세웅 신부 강연(2011.4.19 경북대 우당교육관)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함세웅 신부 강연(2011.4.19 경북대 우당교육관)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바티칸에서 8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1973년 서울의 모습을 회상하며 군사독재시절부터 이어져 온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함 신부는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본 서울의 모습은 살벌했고, 이질감이 느껴졌다"며 "반공궐기대회에 참가해 동대문운동장까지 행진을 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을 반공궐기대회에 동원해 이념적으로 세뇌시키는 것은 학생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학대"라며 "사회, 정치, 교육문제의 핵심은 일그러진 군사문화와 6.25전쟁의 비극에서 온 후유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 사회가 따뜻한 인간관과 사랑을 상실한 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출세 지향과 자본주의의 무한경쟁에만 매몰돼 있다"며 "근본적으로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함 신부는 "일제치하의 관리와 현병, 순사들이 미군정에서도 같은 자리를 차지했다"며 "현대사회에 있어 우리의 원죄는 일재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원죄가 지금까지 전이되고 있다"며 "원죄를 씻어내는 가톨릭의 세례의식처럼 민족의 회개작업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순국선열들의 신앙 토착화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함 신부는 "유럽인들은 교회와 지역, 공동체, 국가의 역사를 같은 선상에서 바라봤다"며 "잔다르크의 경우 당시 프랑스 사제들이 영국군에 넘겨줬지만, 훗날 프랑스의 성녀로 자리잡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인들은 성당에서 순국선열을 기억하는 데 우리는 왜 성당에서 이들을 공적으로 기억하지 않는가'하는 의문이 들었다"며 "안중근 의사와 유관순 열사를 미사 속에 모셔올 때 신앙의 아름다운 토착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함세웅 신부는 "일제 침략시기의 독립투사들의 삶에 인간과 민족과 조국에 대한 정신이 있다"며 "여기에 독재시대 때 민주주의와 인권회복운동의 물줄기, 민족의 일치와 화해를 위한 통일운동을 비롯한 세 가지 역사적 관점을 하나로 모은다면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이어 전 교황대사 모란디니 대주교의 말을 인용해 남북대화와 협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함세웅 신부는 "6자회담이 아닌 당사자간의 남북대화를 통해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모란디니 전 교황대사의 말을 듣고 부끄러웠다"며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민족의 자주성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돌아가신 요한바오로 2세 전 교황도 '굶어죽고 있는 동포가 있는데 그냥 보고만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죄악'이라고 했다"며 "우리가 잊고 있었던 민족에 대한 가치를 되찾고 본질적인 그리스도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의 역할에 대해서도 말했다.
함세웅 신부는 "이명박 정부의 핵심사업인 4대강사업은 경제의 논리를 떠나 생존의 문제"라며 "일본의 쓰나미와 원전사고에서 보듯 정치가 제대로 가지 않으면 모두가 죽게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말 4대강 유역에 대한 수자원공사의 무제한 개발특권을 보장하는 <친수법>이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됐다"며 "이런 부분들을 대구의 지성인들이 엄하게 꾸짖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에서 10번 꾸짖는 것 보다 대구에서 1번 꾸짖는 게 100배의 효과가 있다"며 "지역성을 넘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때 우리가 꿈꾸는 민족적 가치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교수들과 학생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함세웅 신부는 "IMF 이후 대학의 사회적 책무가 상실됐다"며 "이기적, 개인적, 물질적인 것을 지향하게 됐고, 젊음과 지성, 역사의식이 상실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은 깨어있는 소수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다는 확신"이라며 "학생은 첫 입학 때의 초심을, 교수는 첫 강의 때의 열정을 간직하고 지성인과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해 줄 것"을 부탁했다.

함세웅 신부 강연에는 경북대 교수와 학생, 가톨릭 사제와 시민 50여명이 참석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함세웅 신부 강연에는 경북대 교수와 학생, 가톨릭 사제와 시민 50여명이 참석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함세웅 신부는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나 1960년 서울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한 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바티칸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1974년 천주교 원주교구장 지학순주교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대거 구속된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창립하고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으며, 같은 해 민주회복국민선언과 1976년 명동 3.1민주구국선언에 참여해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1979년 10.26사건 때도 감옥에 갇혔으며, 긴급조치9호가 해제된 뒤 석방됐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장으로 재직했으며, 가톨릭대 교수와 평화방송 사장을 거쳐 서울 장위동성당, 상도동성당, 제기동성당 주임신부를 지냈다. 그 뒤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 공동대표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냈다. 

한편, 이날 강연은 경북대 가톨릭교수회와 가톨릭교직원회, 가톨릭학생회가 공동주최했으며, 강연에 이어 함세웅 신부와 천주교 대구대교구 김영호 사목국장 신부가 미사를 공동 집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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