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건립 필요하고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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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2011.4.19)
기숙사 건립 필요하고 타당한가?
 
우동기 현 교육감의 후보 시절 공약 중 하나가 공립학교 기숙사 건립이었다. 기숙사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성적을 올리고 경쟁력을 확보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선 이후 지금까지 무리하면서까지 기숙사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역의 한 언론은 자체 조사라는 이름으로 광주에서도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서 더 나은 성적을 나타냈다는 보도를 했다. 기숙사 건립의 필요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겠지만, 지역정서를 헤집는 것 같아 불편하고 민망했다. 과연 기숙사 건립은 필요하고 타당한 것인가?
 
첫째, 지금은 21세기이다.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창의성과 아이디어가 가치 창출의 원천이다. 기숙사는 20세기의 발상이다. 침묵과 경쟁만 넘치는 기숙사에서 5지선다형 문제풀이의 반복은 학생들의 창의성과 아이디어를 말살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과 맞지 않으며 시대 정신에도 어긋난다. 잘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 학생의 학습강도는 OECD 가입국 중에서 최고다. 보이지 않는 ‘인성의 파괴와 심성의 황폐화’는 당연히 계산되지 않는다. 경쟁지상주의 뒤안길에서 학생들의 위축과 좌절은 넘쳐난다. 21세기의 학생이 20세기 기숙사에서 늦은 밤까지 문제풀이를 하는 것은 ‘세상에 이런 일이’나 ‘지구촌 풍경’에나 나올 법하다.  

둘째, 기숙사의 수용인원이 대략 80~100명이라고 한다. 수용의 기준은 성적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저소득층 가정의 학생이나 원거리 등하교 학생에 대한 배려가 부분적으로 있겠지만 소수일 뿐이다.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도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의 소외감과 자괴감은 클 수밖에 없다.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기숙사 입성(?)은 우열반 중 우등반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기숙사에 들어가기 위한 추가 경쟁이 뒤따르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셋째, 예산의 문제다. 시교육청 발표에 의하면, 2014년까지 800억의 예산으로 기숙사 건립을 확대한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경제 침체, 실업률의 증가, 비정규직의 확대 등으로 인해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각 학교에는 공납금을 내지 못하거나 중식비 마련이 어려운 학생, 방과후학교(과거의 보충수업) 수업료를 미납한 학생이 많다. 복지의 필요는 증가하는 반면, 배려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은 늘고 있다. 따라서 타당성이 아닌 일의 경중과 선후로만 보아도 기숙사 건립은 나중의 일이다.  

넷째, 지금의 대학 입시제도와도 상치된다. 2012년 대학입시에서 수시의 전형이 62.1%이고 2013년에는 더 증가할 예정이다. 다양한 전형에 맞추어 다양한 경험과 과정이 필수적이다. 학생이 기숙사에서 밤늦게까지 문제풀이에만 집중하는 것은 입시전략 측면에서도 실패에 가깝다.

다섯째, 건물은 한번 짓고 나면 허물기 어렵다. 기숙사 운영을 위한 예산과 인원이 투입되면, 폐해와 부작용이 속출할 경우에도 없애기보다는 관성적으로 운영되기 십상이다. 한 학생당 한 달에 20만원~ 30만원으로 예상되는 기숙사 운영비는 누가 감당할 것인가? 과학고나 외국어고 등에는 교육청이 전액 지원하면서 일반고의 기숙사 비용은 학생들이 부담하도록 하면 형평성에 어긋난다. 더구나 저소득층 자녀를 대상으로 하겠다던 교육청의 발표는 결국 대구시민을 기만한 것이 된다. 형평성도 고려하고, 시민을 기만하지 않으려면 교육청은 기숙사 운영비를 지원해야 한다. 선정된 학교 수와 학생 수를 기준해서 대략 계산해도 1년에 22억이 넘는다. 정책의 실패를 확인한 뒤에도 원래대로 환원하기가 매우 어렵다. 엄청난 예산의 낭비로 이어질 것이 자명해 보인다.

여섯째, 학교의 청렴도를 평가하겠다던 대구시교육청이 도리어 학교가 ‘돈 모으기’에 나서도록 압박하는 등 추진방법도 정당하지 못하며 졸속적이다. 4월 18일자 교육청 공문 내용 중 일부이다.
“나. 기숙사 건립 참고 사항
3) 공립의 경우 시설비에 대한 자체 확보 예산(동창회 등)이 많은 학교는 수용
규모 등 차등지원
4) 상인고는 학교와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하여 좋은 방안을 강구하면서 진행”
3)항에서 드러나듯 기숙사 학교로 지정된 공립학교는 교육청의 지원을 받기 위해 동창회나 학부모회를 통해 ‘돈’을 확보해야 한다. 4)항은 결국 기숙사를 지을 공간도 없고 대안도 없지만 일단 강행한다는 의미이다. 지역민들과의 협의회나 공청회 한번 없이 이렇게 졸속적으로 밀어붙이는 이면이 궁금할 지경이다

일곱째, 현 대구시교육감은 영남대학교 총장 시절, 지역 인재를 영남대에 유치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인재를 영남대에 진학시켜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런데 교육감이 되고 난 뒤부터는 수도권 대학의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기숙사를 짓는다고 한다. 교육감의 교육철학과 정책은 일관성마저 부족하다.

시교육청이 경쟁과 성적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학부모들의 유일한 요구는 성적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요구가 많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한다. 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교육이 제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염원을 가진 학부모와 교사는 많다. 끝이 없는 경쟁에 혐오와 분노를 느끼는 시민도 많다. 무한 경쟁을 조장하는 교육청의 모습은 전혀 교육적이지 않다.

따라서 기숙사 건립은 이해관계가 있는 건설업자의 주장으로는 당연할지 몰라도 교육청의 정책으로는 타당하지 못하다. 발상은 안이하고 교육철학은 빈곤하다.


2011년 4월 19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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