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 드리는 호소문
존경하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위원님,
법의 목적은 순리(Ordre naturel)를 지키는 것에 있습니다. 하지만 법이 순리에 거스른다면, 그 법은 실효성을 잃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실정법(Ordre positif)의 한계일 것입니다. 현재 우리 학원이 겪고 있는 정상화 문제는 다름 아닌 실정법과 순리의 엇박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구성원의 83% 이상이 바라는 학원정상화는 비리재단 복귀가 아니라, 교과부의 명에 따라 영광학원(대구대학교)의 정상화추진위원회가 선정한 7명의 정이사 후보를 모두 승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거의 모든 구성원이 염원하는 정상화 방안을 수용하는 것이 곧 순리입니다. 하지만 사분위의 실정법론자들은 이른바 종전이사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법에 맞다고 우깁니다. 그 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2007년 대법원의 상지대 판결에 학원경영권을 구재단에 돌려주라는 취지가 담겨있다.
둘째, 사립학교법(2011) 제1조(목적)에 ‘사립학교의 특수성에 비추어 그 자주성을 확보하고...’라고 명시한 것은 구재단의 실질적 재산권을 인정한 것에 다름 아니다.
셋째, 비리라 함은 ‘본질적’ 비리를 말하며, 죄(罪)는 사법기관의 최종 판결로 확정된다.
사분위는 위의 3가지 논거에 기초하여 상지대 등 분규 학원의 ‘정상화’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상지대의 학원분규는 오히려 심화되어 가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위의 논거가 아직도 사분위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않을뿐더러 순리를 크게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구재단에 돌려주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은 사실이 아님이 이미 국회 청문회에서 드러났습니다. 즉 상지대 관련 판결을 내린 당시 대법관 김황식 현 국무총리는 ‘구재단에 돌려주라는 취지가 판결에 직접 들어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둘째, 사립학교의 자주성 확보를 위해 구재단의 재산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는 사립학교법의 입법정신에도 정면으로 어긋납니다. 이 법의 제1조는 ‘...자주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앙양함으로써 사립학교의 건전한 발달 도모를...’ 그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근거하여 구재단의 재산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억지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자주성의 확보는 재산권 다툼을 푸는 열쇠가 아닙니다. 이는 교육의 공공성을 촉진하여 사립학교의 건전한 발전을 일궈내기 위함입니다.
셋째, ‘본질적’ 비리가 아니면, 비리가 아니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비리에 관한 보편적 개념이 앞서야 합니다. 속빈 강정처럼 알맹이가 없는 낱말의 유희는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을 미혹시켜 속이려는 짓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사분위가 소위원회를 통해 지난 2월 우리 대학 정상화 안건을 처음 다루면서 주장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구대학교의 구재단 이사(예: 고은애)는 죄가 없다. 임원(이사)취임 승인을 취소할 당시(1994년 2월) 교육부의 감사지적사항은 그 정도면 어느 대학에서도 다 있는 보편적 사항이라 본질적 비리라고 볼 수 없다. 만약 비리가 그토록 심각했다면 교육부가 알아서 고발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사취임 승인 취소 처분을 받았으니 당사자들은 억울할 것이다. 다만 재수가 없어 걸렸을 뿐이니 죄가 될 것이 없다. 구재단 비리에 대해 대법원 판결로 실형이 선고된 것이 없지 않느냐!’
이제는 사분위를 물러난 강민구 위원이 주도한 이같은 주장은 이우근 위원장, 고영주 위원 등 비리재단 복귀에 핵심적 역할을 한 3인방이 모두 교체된 지금에도 여전히 망령처럼 사분위 주위를 맴돌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어느 법철학자의 말을 빌면 ‘법은 옷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몸에 맞아 편안해야 좋은 옷인 것처럼 법도 우리의 삶을 편하게 해야 합니다. 만약 사분위가 우리의 요구를 도외시하고 비리재단 복귀를 결정한다면, 이는 대구대학교의 발전과 구성원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닐뿐더러 순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분위란 순리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법대로 하는 것이 그 업무라고 항변할 것입니다. 이는 실정법론자들이 이끄는 사분위의 한계를 대변한 것입니다. 실정법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합니다. 사분위가 후일 역사에 부끄러운 존재로 기록되지 않으려면 법에 앞서 순리를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실정법론자들은 흘러간 역사를 판결하는 것이 사분위의 과제가 아니라고 반박할 것입니다.
유감스럽지만 역사는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무서운 것입니다. 사분위가 교육의 공공성 앙양을 이끈 영광스러운 주역으로 역사에 길이 남기를 원한다면, 교육 현장의 요구를 귀담아 듣고 순리에서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법(法)이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삼수변(水)에 갈 거(去)자가 됩니다. 즉 ‘물 흐르듯 가는 것이 법’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서는 앞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이는 순리입니다. 이럴 듯 80%를 훨씬 웃도는 구성원의 요구를 외면하고서 제대로 된 학원 정상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원을 사각으로 만드려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사분위는 부디 순리에 어긋나는 법리로 교각살우의 잘못을 범하지 않기를 간곡히 호소합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5월 4일
(대구대학교)학원 정상화를 위한 범대책위원회 위원장 전형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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