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좋아하는 글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복수를 위해 남해신검의 제자가 된지 어언 오십년
비로소 비전의 철학을 배우고 하산하는 외팔이
가는 곳마다 똘마니들이 찌럭찌럭건들지만
끝끝내 검을 뽑지않는 외팔이
아아 어떻게 배운 팔만삼천검법인가
물긷고 밥짓기 삼년
나무하고 장작패기 삼년
빨래하고 아흔아홉 계단쓸기 삼년
피아노 단기완성!~
대입미술 2개월 책임지도
돈만 내면 즉석에서 흔쾌히 모든 걸 전수해주는,
오늘날의 화끈한 싸부님 싸부님
발랄한 제자들은 아무때나 발랄하게 하산하여
아무때나 아무때나 칼을 뽑아든다
복싱을 배우고 나면 흉기같은 주먹으로 기껏 아내나 패고
소리를 전수받으면 뽕짝이나 부르고
무술을 배우면 약장수 아니면 정치깡패나 되는
얄밉도록 발랄한 현실의 제자 여러분들”
“무림일기”라는 책에 나오는 글인데, 외팔이가 밟아가는 수련과정이 예사롭지 않고 또 외팔이가 보여주는 우직한 끈기나 인내, 성숙, 이런 것들이 부럽기도 해서 몇 번이고 읽었던 책의 글이다.
배움의 깊이를 단순히 “보이는” 기교나 기술에서 멈추지 않고, 앞서가고 있는 선생의 묵혀진 그림자속에서, 또 대화와 무의식적인 몸짓 속에서, 그리고 제자의 내면을 직시하고 던지는 눈빛 속에서 배우고자 한 외팔이의 제자로서의 진실한 마음과 인간적 노력이 멋있었다.
또한 선생의 삶에 녹아있는 철학과 지혜를 늦더라도 “끈기있게” 배워가는 과정이 부럽기도 했고, 나 역시 그런 과정을 통해서만이 배움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공감하기도 하였다. 가르치는 이와의 차가운 긴장을 견디며, 닮고자 하는 분투 속에서 인간적 성숙도 가능해질거라 믿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부터도 언젠가인가부터는 생산된 지식만을 배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가르치는 이의 편치않은 눈길과 입심을 견디기 보다는 편하게 “진수”만을 배우고 “속전속결”로 배움을 체계화하고 얘기하기에 급급했다. 앞서간 이의 삶과 열정, 혼을 찾아내 그 맥락속에서 조심스럽게 배워나가기 보다는, 올려야하는 평가에 열중했고 따야 하는 자격증에만 몰두했다. 역사나 전통보다는 그저 계량화된 “최고”가 우선인 세상 탓을 하면서 말이다.
사실 자격증을 따야한다든지, 최고의 점수를 받아야 한다든지, 최고가 되는 방법이 분명한 분야에서 일하고자 하면 특별히 외팔이의 지난한 과정이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사는 세상을 읽어내야 하고, 사람과 함께 어우러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후손들을 위해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일에는 최고가 되는 왕도가 없는 길만 있을 뿐이다.
어찌 그 뿐이랴, 사람살이 역시도 가도가도 끝이 없고, 빛안나고 태안나는 일이 수도 없이 많은 그런 일이고, 길없는 길을 가야하는 길일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외팔이의 수련과정이 많이 부러운 이유는 이 “길없는 길”의 인생살이를 가는데 나 역시 성실한 제자의 길을 가지 못했으며, 이제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앞서가는 이”로서의 역할을 해야하는 지점에 서있다는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말이다.
과연 나는, 뒤에 오는 사람들이 믿고 따라올 수 있도록 앞서가는 이의 지혜와 용기를 갖고 있는가?
그들이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하고 따스한 손은 가지고 있는가?
이런 질문이 근간에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마도 귀한 사람이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과학에 대한 맹신과 인간행위의 야만성에 대한 무감각이 생활화된 이 세계에서, 우직하고 따스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보여준 사람이었다. 소박하게 실천하고, 후배와 동료를 생각했고 “앞서간 이”의 모범을 보여주면서 자기 몫을 겸손하게 다한 사람이었다.
“얄밉도록 발랄한 현실의 제자”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그래서 그의 삶이 더 귀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김재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방송인. 사회학 박사)
* 이 글은, [대구여성회]가 오는 9월에 펴내는 회지에도 함께 실립니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