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아이까지 멍든다"

평화뉴스
  • 입력 2004.09.1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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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피해여성쉼터]...피해 여성들, "자녀 데리고 쉼터로"
남편에 들킬까 불안 속에 생계.양육 위해 허드렛일도...자녀 교육도 제대로 안 돼



경남에 살던 30대 김모씨는 지난 5월 남편의 잦은 구타를 견디지 못해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남편을 피해 친정을 비롯한 여러 곳으로 도망 다녔지만 그때마다 남편이 찾아와 아이들에게까지 폭력을 가하려했다. 견디다 못한 김씨는 할 수 없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와 이제 막 돌을 지난 막내까지 모두 3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대구시 남구의 [가정폭력피해여성쉼터]를 찾았다.

그러나 쉼터에서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김씨는 이곳에 온지 넉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마땅한 직업을 찾을 수 없어 임시직으로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아이들은 가정폭력피해자 보호법령에 따라 대구로 전학시켰지만 방과후 교육은커녕 당장 추위가 찾아와도 입고 갈 긴 옷이 없는 형편이다. 그나마 다음달까지는 쉼터에서 지낼 수 있지만 이 뒤부터는 세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할 뿐이다.

대구시 남구에 있는 [대구 여성의 전화] 부설 [가정폭력피해여성쉼터]에는 최근 김씨와 같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여성들이 부쩍 늘었다. 지난 4월까지도 몸을 피하기 위해 홀로 오는 여성이 대부분이었지만 5월부터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이미 정원 10명을 넘긴 14명이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인 7명이 피해여성의 자녀들이다.

그러나 쉼터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여성들을 보호하는 '임시' 시설일 뿐 무한정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더구나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전혀 없는데다 아이가 학교에 다닐 경우 방과 후 교육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쉼터를 찾은 여성들은 이혼을 각오하고 있거나 이혼 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에 자립을 위해 일을 나가는데, 아이와 함께 온 엄마들에게는 남아있는 아이들이 큰 문제다. 그래서 이곳 쉼터에서는 몇 달 전부터 하루에 한 사람씩 당번을 정해 7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피해여성들의 자립과 자활을 위해 쉼터에서는 한식조리나 수선, 피부관리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하지만 이것도 여성부의 특별 지원이 있을 때나 가능하다. 당장 생계와 양육을 위해서는 급한대로 식당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곳 [가정폭력피해여성쉼터]는 최근 기존 2개월이던 쉼터 이용 기간을 6개월로 연장했다. 그동안 이혼소송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자립.자활을 위한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건의가 많았고, 생계와 양육 문제로 이중고를 겪는 여성들의 문제도 컸기 때문이다.

쉼터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이 늘면서 불안에 떨던 아이들과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이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는데는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당장 위기에 처한 여성들이 쉼터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현재 대구에서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곳은 이곳 쉼터를 비롯해 [가톨릭 여성의 집]과 [불교 자비의 쉼터], 그리고 최근에 생긴 [사랑나눔 여성쉼터]가 전부다. 이곳의 정원도 10명 안팎이지만 이미 오래전에 정원을 넘어섰다.

[대구 여성의 전화] 부설 [가정폭력피해여성쉼터] 상담원 권영애씨는 "예전에는 가능하면 가정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은 남편을 피해서 아이를 데리고 독립하겠다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면서 "남편의 상습적인 폭력을 피해 아이까지 책임져야 할 경우는 자립이 더 어렵기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중.장기 쉼터가 빨리 마련되야 한다"고 말했다.

권씨는 또,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근 경제문제로 일어나는 부부갈등은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대화와 이해가 부족해서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면서 "폭력과 이혼 등의 극한 상황까지 가기 전에 서로가 의사소통이나 상담을 통해 소중한 가정을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평화뉴스 배선희 기자 pnsun@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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