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10월 항쟁'의 주역 이일재 선생 별세

평화뉴스 이제상 편집위원
  • 입력 2012.03.26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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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재> 평생을 사회 노동운동가로 살아온 한국근현대사의 산증인


혁명전사 이일재 선생이 지난 24일 밤 11시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고(故) 이일재 선생은 일제강점기부터 평생동안 사회주의운동과 노동운동을 펼쳐온 한국근현대사의 산증인으로 대구지역 노동운동을 이끌어 왔다. 


고(故) 이일재 선생 / <10월 항쟁 60주년 추모제> 2006.10.1. 대구 경상감영공원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고(故) 이일재 선생 / <10월 항쟁 60주년 추모제> 2006.10.1. 대구 경상감영공원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고(故) 이일재 선생은 1923년 대구에서 태어나 혜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곧장 노동현장에 투신해 제화공장과 화학공장 등 현장에서 활동했다.

이후 1946년 대구지역 공장자주관리운동에 참여했고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경상북도 평의회 간사를 지냈으며, 1946년 9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해 대구 9ㆍ23총파업과 대구 10월 항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또, 고(故) 이일재 선생은 미군정 법령13호와 맥아더 포고령 2호를 위반하고 문경탄광 파업을 주도해 구속되기도 했으며, 팔공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 1950년 4월 총상을 입고 체포돼 친지의 도움으로 풀려난 뒤 노동운동을 재개했다.

이 가운데, 1968년 7월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0년을 복역했으며 1988년 가석방됐다.

이후 대구노동정책연구소 지도위원, 1997년 민주노총 2기 지도위원, 2002년 사회주의정치연합 준비모임, 민주노총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지내며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노동운동가로 살아왔고, 2005년 이후에는 오랜 옥고로 후유증을 앓았다.

앞서, 2010년에는 서울 고법에서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장례식장은 대구의료원 국화장 301호에 마련됐고, 장례는 전국노동자장으로 진행하며 발인은 27일 오전 9시에 노제는 이날 오전 11시 (구)전평 사무실이 있던 대구시민회관 부근에서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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