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아팠는데"...외면받는 '산재' 노동자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2.09.0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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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산업재해 승인 3년새 476건 감소, '질병산재' 불승인 2배 증가...'질병판정위' 왜?


"처음 병이 찾아왔을 때 회사를 믿었기에 산재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활 치료를 받던 중에도 외근을 강제하던 모습을 보고 견딜 수 없었다. 1km만 걸어도 잠들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그 시기에 나는 우울증까지 얻었다. 이 억울함을...공단이 밝히지 못하면 내 힘으로 입증 할 것이다"

대구 동구의 한 생활정보지 회사에서 16년동안 근무한 최모(47.동구 서호동)씨는 지난 2009년부터 공포, 불안, 불면증에 시달려 공황발작을 일으켰다. 병명은 '혼합형 불안우울장애'였다. 앞서, 2004년에는 청각장애 3급, 2006년에는 고관절 세포가 죽어 지체장애 판정을 받기도 했다.  

채권관리와 매출기획에 영업까지 뛰며 업무가 많을 때는 하루 3시간도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청신경손상으로 보청기를 끼고, 양쪽 고관절 이식 수술 후 재활 치료를 받던 2010년에도 판촉을 위해 외근을 다녔다. 사측에 "재활 치료 중 배려"를 요청했음에도 사측은 그의 부탁을 외면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다리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산재노동자 피해사례 증언대회'(2012.9.6.근로복지공단 대구지역본부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산재노동자 피해사례 증언대회'(2012.9.6.근로복지공단 대구지역본부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나, 사측은 그의 보직을 부서장에서 영업사원으로 강등시켰다. 곧, 회사 동료들은 그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최씨 자리는 출입문 바로 앞자리에 배치됐고 점점 업무에서도 배제됐다. 최씨는 "강등은 사직하라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며 "다리 통증과 공포, 불안은 커져만 갔다"고 말했다. 때문에, 최씨는 지난 2010년 7월 '혼합형 불안우울장애' 진단을 근거로 근로복지공단 대구본부에 '업무상질병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 대구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회사 상사와의 갈등 및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이라는 최씨 주치의 소견서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인정할 증거 미흡', '개인적인 취약성에 기인한 발병과 적응 장애의 형태'라며 산재승인을 거부했다. 최씨는 2011년 3월 근로복지공단에 재심사를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은 '왕따, 자리배치, 업무배제 등 부당행위를 감안해도 개인 요인에 의한 우울장애'라며 재심사 자체를 기각했다. 그리고, 최씨는 같은 해 6월 대구지방법원에 공단을 대상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올 4월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공단은 이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최씨는 여전히 산재승인을 받지 못했다.

대구.경북지역 산재승인현황(2009년-2011년) / 사진 출처.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대구.경북지역 산재승인현황(2009년-2011년) / 사진 출처.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대구.경북지역 산업재해 승인 비율이 해마다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가 '대구.경북지역 산업재해 처리 현황(2009년-2011년)' 실태를 조사한 결과, 2009년에는 2,736건, 2010년에는 2,406건, 2011년에는 2260건의 산재가 승인됐다. 3년 만에 476건이 감소한 셈이다.

특히, 최씨와 같은 '업무상질병산재' 승인 비율은 '업무상사고산재' 승인 비율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2003년에서 2004년에는 평균 불승인율이 28.3%에 이르던 것이 2011년에는 57.8%로 2배나 증가했다. 지난 2007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 이후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심의를 맡으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2009년-2011년까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 현황 / 사진 출처.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2009년-2011년까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 현황 / 사진 출처.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대구.경북지역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승인 현황(2009년-2011년) / 사진 출처.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대구.경북지역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승인 현황(2009년-2011년) / 사진 출처.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이 가운데, 특수형태근로자(보험설계사, 레미콘 차량 운전자,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의 질병 산재 승인율은 지난 3년 동안 0%로 나타났다. 외국인노동자도 사고 산재로 인한 승인율은 96.4%인데 반해 질병 산재는 36.4%에 그쳤다. 근골격계질환 산재 불승인율도 2003년에서 2004년에는 평균 10.8%였으나 2011년에는 46.7%로 4배나 높아졌고, 뇌심혈관계질환도 36.5%에서 85.2%로 높아졌다.

그러나, 이 같이 산재 신청을 심사하는 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 회의 시간은 고작 2시간에서 3시간 남짓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지난 2009년에는 1,086건, 2010-2011년에는 각각 1,092건을 심사해 회의당 16건을 심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시간에 5.4건, 11분 만에 1건을 심사한 셈이다.

질병판정위 평균 심의 시간..."1시간에 평균 5.4건 심의, 11분만에 1건을 심사"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질병판정위 평균 심의 시간..."1시간에 평균 5.4건 심의, 11분만에 1건을 심사"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는 9월 6일 오후 근로복지공단 대구지역본부 앞에서 <산재노동자 피해사례 증언대회>를 열고 "산재노동자 고통 외면하는 근로복지공단을 규탄"하며 "산재보험법제도 개혁"을 촉구했다.

특히, 이들은 보도자료를 통해 "산재로 다친 노동자가 치료 이 외에 승인문제로 2-3중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선 치료 후 승인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며 ▷산업재해 신청 후 작업 현장 조사,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입증 책임, ▷질병판정위원회 해체, ▷산재 심사.승인 별도 독립기관 설립을 요구했다.

김은미 국장
김은미 국장
김은미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도 "근로복지공단은 산재진입장벽을 강화해 보험급여를 덜 지급해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며 "불승인과 강제종결을 남발해 노동자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빠뜨린 근로복지공단과 산재법에 대한 개혁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형호 근로복지공단 대구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부장은 "산재를 객관적인 사실로 입증하지 못하면 승인은 힘들다"며 "때문에 명확한 이유가 있는 사고 산재 승인율이 질병 승인율보다 더 높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질병판정위원회는 완벽한 독립기구로 한 쪽 입장만 대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그런 오해가 생길까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경영자총협회와 공단에서 각각 추천한 이들을  위원으로 위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3년 된 기관이고 노사정이 매년 협의를 통해 제도를 개선할 것"이라며 "앞으로 지켜봐 달라"고 했다. 

"근로복지공단의 각성"을 촉구하는 피켓(2012.9.6.근로복지공단 대구지역본부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근로복지공단의 각성"을 촉구하는 피켓(2012.9.6.근로복지공단 대구지역본부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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