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체전' 때문에 수 십년 노점상 강제철거?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2.09.1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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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구, 중동.상동 등 4개동 노점상에 '철거' 계고 / 상인들 "대책도 없이 생계수단을..."


대구시 수성구 중동에 있는 중동시장 앞 노점들(2012.9.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시 수성구 중동에 있는 중동시장 앞 노점들(2012.9.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수성구 중동시장 앞에서 30년간 야채 노점을 운영한 이정분(70.중동)씨는 지난 8월 중순 '노점 철거' 계고장(행정상 의무이행 재촉 문서)을 받았다. 계고장에는 '9월 20일까지 노점을 철거하지 않을 시 강제로 철거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매일 새벽 5시 팔달시장에서 물건을 가져와 생활비를 마련하는 이씨에게 노점상은 유일한 생계수단이다. 이씨는 "한 달 백만원 남짓 벌어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 수 있었는데 이제 그 마저도 위태롭게 됐다"며 "추석 전까지라도 장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수성구청 건설과 이동혁 계장은 "대목을 생각해 10월 2일까지 철거 기간을 연기시켰다"며 "그때까지 철거하지 않을 경우에는 용역을 동원해서라도 철거 하겠다"고 강조했다. 

중동시장에서 야채 노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정분씨(2012.9.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중동시장에서 야채 노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정분씨(2012.9.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씨도 처음부터 노점을 운영했던 것은 아니다. 30년 전 처음 중동시장에 자리를 잡았을 당시에는 야채상점을 열고 합법적으로 가게를 운영했다. 그러나, 시장 노후화로 손님이 끊기자 이씨는 야채상점을 접고 시장 밖으로 나와 노점을 차리게 됐다.

중동시장 앞에서 떡을 파는 박모(45.중동)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예 시장 내에 있던 떡 가게는 주택으로 사용하고 모든 물건을 노점으로 옮겨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박씨도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받아 생계 수단을 잃을 위험에 놓여있다.   

대구 수성구청은 지난 7월말부터 9월초까지 수성구 관내 노점상에 '철거' 계고장을 발송했다. 이승현 건설과 주무관은 "전국체전을 맞이하여 도로변의 불법 노점을 일제히 정비하고 있다"고 지난 4일 수성구청 온라인 민원상담을 통해 밝혔다. '제93회 전국체육대회'는 10월 11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되며, 수성구 대흥동에 있는 대구스타디움에서 개막식과 폐막식이 열린다. 

중동시장 앞 과일 노점상도 '철거' 계고장을 받았다(2012.9.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중동시장 앞 과일 노점상도 '철거' 계고장을 받았다(2012.9.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 과정에서 수성구청은 중동시장 앞 20여개 노점상을 비롯해, 상동, 지산동, 신매동에 있는 노점상 수십 곳에 계고장을 발송하고 '강제 철거'를 종용했다. 수성구청은 '무허가 및 위반 건축물 단속요령 조례안'을 통해 '무허가 건축물 적발 시 건축행정 질서 확립과 명랑한 도시환경조성을 위해 철거작업 등의 일정한 행위를 진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수성구청은 지난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권대회'가 열릴 당시에는 중동시장과 상동주변 노점을 철거하지 않았으며, 10년 전에 대구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곳 주변은 경기코스와 거리가 멀어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성구청이 철거를 해도 적법한 절차이기 때문에 노점상들은 막을 방안이 없다.  

부천시의 경우에는 지난 10일 '노점상 정비안'을 발표하고 '저소득 노점 양성화를 위해 노점절대금지구역과 잠정허용구역 방침'을 마련했지만, 대구시와 수성구청은 이 같은 대안 없이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노점상에 계고장을 발송해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시설 노후화로 한 낮에도 컴컴한 중동시장 입구(2012.9.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시설 노후화로 한 낮에도 컴컴한 중동시장 입구(2012.9.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또, 수성구에는 시장으로 등록된 곳은 18곳으로 전통시장은 8곳 밖에 없다. 이 가운데, 중동, 상동, 지산동, 신매동에는 목련시장을 제외하면 시장으로 등록된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때문에 4개 동에 거주하는 10만7,272명이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다른 동에 있는 시장이나 주택에서 먼 대형마트, 집 근처 노점을 이용해야 한다. 그 결과, 주민 사이에서도 노점 철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장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중동시장과 상동시장은 명칭만 시장이지 정식으로 수성구청에 등록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입구에 시장 간판을 붙일 수도, 구비로 시설보수를 할 수도 없다. 특히, 시장 건물 노후화로 낮에도 어두컴컴해 노점이 없으면 골목 안이 시장인지 아닌지 구별하기도 힘들다.

이정분씨는 "이 노점은 내 살아갈 수단인데, 이거 갖고 가면 나는 못산다"며 "찾으러 가도 벌금을 내야 하는데 수백만원 돈 내고 찾아 가느니 차라리 땅 바닥에서 장사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또, "곧 추워지는데 뭘 먹고 살아야 하나 걱정이 된다"며 "구청장님은 와서 얘기도 들어보고 사람 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중동시장에서 식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50.상동)씨는 "구청에서 한 번 철거를 했었는데 시장인지도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이 많아 오히려 매출이 떨어졌었다"며 "시장 분위기도 내고 더불어 장사도 하고 그냥 두는 것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신, "합법화 시켜 세금도 내게 해야한다"며 "때마다 철거하면 사람 사는 게 아니다"고 했다.

중동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문을 닫은 상점들이 눈에 띈다.(2012.9.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중동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문을 닫은 상점들이 눈에 띈다.(2012.9.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주민 하수형(44.중동)씨도 "집 주변에 시장도 없고 대형마트도 없기 때문에 식재료를 사기 위해 노점상을 자주 이용한다"며 "당장 없으면 아쉬운 것은 우리 주민"이라고 말했다. 또, "노점상이 도둑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먹고 살려고 열심히 일하는데 대안을 마련해야지 무조건 철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기원(새누리당 서민행복추진 대구본부 부본부장) 수성구의회 의원은 "철거 소식을 미처 몰랐다"며 "구청 담당부서와 얘기 한 뒤 꼭 철거를 해야 하는지 확인하겠다"고 전했다. 또, "중동과 상동은 체전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데 굳이 철거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양성화 방안을 마련해보겠다"고 답했다.

반면, 이동혁 수성구청 건설과 계장은 "당초 계획은 추석 전 이었으나 대목이 지난 10월 4일까지 기한을 늘리기로 했다"며 "만약 그 때까지도 철거 하지 않을 경우에는 3일부터 강제 철거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정식허가를 받지 않은 노점은 시민 통행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 체전을 앞두고 관광객들에게 보기 좋지도 않다"며 "엄정한 법의 잣대로 강력히 단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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