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산가스 공포와 헤매는 정부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2.10.0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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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농작물 고사...조사 부실, 2-3차 피해 우려" / 정부 '특별재난지역' 선포


불산가스에 노출된 포도밭이 고사했다(2012.10.7.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불산가스에 노출된 포도밭이 고사했다(2012.10.7.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구미 불산 누출사고 피해가 계속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3차 피해까지 우려돼 '불산가스 공포'가 커지고 있다. 주민들은 집단이주까지 했고, 시민단체는 정밀한 '역학조사'를 촉구하고 있지만, 행정당국은 피해상황 쫓기에도 급급하다.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구미국가산업단지 4단지 내 화공업체 (주)휴브글로벌 공장에서 지난 9월 27일 오후 불산(불화수소산) 탱크가 폭발해 유독가스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후 11일째인 10월 7일 오전 사고가 발생한 산동면 봉산리 입구는 주민의 절규가 적힌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걸려 있다. 누렇다 못해 검은색으로 변한 포도밭과 대추나무에는 '절대 식용불가' 플래카드까지 걸려 섬뜩하기까지 했다. 

고사한 과수에 '절대 식용불가'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있다(2012.10.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고사한 과수에 '절대 식용불가'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있다(2012.10.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마을 근처 소나무 숲은 붉게 변했고, 사고 현장 반경 200m 내 느티나무와 감나무도 고사했다. 추수 전 벼도 끝이 하얗게 말랐고, 6일 주민 집단이주로 1100세대 가옥 대부분이 비어 마을은 폐허를 방불케 했다. 발걸음을 떼지 못한 주민 몇몇이 마을을 지켰지만, 구미시와 중앙정부 모두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해 불안만 커져갔다.

불산은 LCD 제조과정에서 세정작업과 표면처리를 하는 물질로 공기에 노출되면 유독가스로 변한다. 때문에, 높은 농도에 노출되거나 장기간 흡입할 경우 장기에 악영향을 미쳐 폐부종으로 사망까지 이르게 한다. 그 결과, 당시 현장 노동자 5명이 불산에 직접 노출돼 사망했고 18명이 부상을 입었다.

구미시가 꾸린 <불산가스피해대책본부>는 7일 오후 지금까지 2,563명이 병원치료를 받았고, 농작물 212ha가 피해를 입었다고 발표했다. 가축 3,209두와 차량 548대도 피해를 입었고, 산업단지 77개 기업도 177억1천만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병원치료 인원은 전날보다 1천여명이 늘었고, 농작물 피해 규모는 70여ha, 재산 피해도 2배나 증가했다.

사고 현장에서 200m 반경 이내 감나무가 까맣게 고사했다(2012.10.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사고 현장에서 200m 반경 이내 감나무가 까맣게 고사했다(2012.10.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하지만, 정부는 사건 일주일 뒤인 지난 4일에야 총리실과 관계부처 합동으로 '재난합동조사단'을 꾸렸고, 12일이 지난 8일이 돼서야 사고현장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또, 정부와 지자체 조사단 지휘 체계가 복잡해 연계 활동도 제대로 벌이지 못하고 있어  종합장기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당시 사고를 진압하던 소방관과 경찰이 불산보다 화재에 집중한 진압을 벌여 불산이 사방으로 퍼졌고, 안전장치 없이 진압해 구경꾼으로 몰려든 주민과 노동자, 소방관과 경찰 모두 가스에 그대로 노출됐다. 또, 초동 진압에서 석회 가루를 뿌려 불산을 중화하지 않고 물을 뿌려 유독불질이 토양과 물에 그대로 스며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봉산리 산에 있는 소나무 숲이 붉게 변했다(2012.10.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봉산리 산에 있는 소나무 숲이 붉게 변했다(2012.10.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나, 지자체와 정부는 지금까지도 경고문을 붙이거나 방역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마스크를 낀 채 순찰만 할 뿐 마스크 없이 돌아다니는 시민이 있어도 제재 하지 않고, 사고가 발생한 산업단지 내 공장도 폐쇄조치 하지 않아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현장에 그대로 방치됐다.

또, 환경부는 9일부터 시작하는 정부.민간 합작 역학조사단에 피해 지역 주민을 포함시키지 않았고, 조사범위와 방법도 정하지 못했다. 게다가, 사고현장 1.5km 반경 봉산리와 임천리 주민은 각각 백현리와 해평면으로 이주시켜놓고 2개 마을 출입은 전혀 통제하지 않고 있다.

봉산리 주민들이 대피소로 쓰고 있는 환경자원화시설의 한 공무원은 "어떤 가이드라인에서 움직이는지 알지 못하고 향후 계획도 잘 모른다"며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공무원들도 사실 잘 모른다"고 밝혔다.

봉산 1리 마을회관 앞 임시 부스에서 회의 중인 시민단체(2012.10.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봉산 1리 마을회관 앞 임시 부스에서 회의 중인 시민단체(2012.10.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와 야당은 2-3차 피해까지 고려하고 있다.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구미YMCA, 환경운동연합,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홍영표 민주통합당 국회의원(환경노동위원회), 녹색당 김수민 구미시의원은 7일 봉산리를 방문해 "1차 진압 실패"와 "부실한 조사"를 지적하며 "2-3차 피해도 고려해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진국(신경과 전문의) 대경인의협 생명문화연구소 소장은 "사고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을 추적해 불산 노출량을 파악하고 지속적 관찰을 해야한다"며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방역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2-3차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연합 최준호 생명활동국장은 "불산이나 유독가스 대응 법안이 미흡해 사고를 키웠다"며 "법안과 장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박명석 이장이 고사한 느티나무 잎 더미를 발로 모으고 있다(2012.10.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박명석 이장이 고사한 느티나무 잎 더미를 발로 모으고 있다(2012.10.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주민 속은 더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봉산리에서 평생을 농사를 지으면 살아온 박명석(50.봉산리) 이장은 "공무원들은 '괜찮다'는 말만 하고, 제대로 설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그렇게 속이 편하면 높으신 양반들이 여기서 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하루빨리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황영한 구미시청 불산가스피해대책본부 담당관은 "이동검진차량까지 동원해 치료를 하고 있고, 피해주민 무이자 대출지원도 고려하고 있다"며 "정부와 협력해 신속한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산업단지 내 노동자들은 개인이 원할 경우 대피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말했다.    

환경자원화시설로 대피한 봉산리 주민이 진료를 받고 있다(2012.10.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환경자원화시설로 대피한 봉산리 주민이 진료를 받고 있다(2012.10.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편,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는 지난 9월 28일,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는  각각 10월 7일 한 차례 사고 현장을 방문해 주민과 만난 뒤 피해상황을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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