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안전을 국가에 맡겨도 될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변홍철 칼럼]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와 핵발전소 연쇄 고장이 시사하는 것


구미 참사

지난 9월 27일 경북 구미에서 발생한 불산(불화수소산) 가스 누출사고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5명이 목숨을 잃었고, 인근 주민과 사고현장에 투입되었던 소방관과 공무원 등 이미 병원 치료를 받은 사람의 숫자가 1천 명 가까이 된다. 나무와 농작물이 누렇게 말라 죽어가고, 가축들이 이상증세를 보이고 있다.

불산은 호흡기 점막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뼈를 손상시키며 신경계를 교란할 수도 있는 맹독성 물질이다. 나무나 농작물에 나타나는 피해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이러한 맹독성 불소화합물은 바로 제초제나 고엽제의 원료로 쓰이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몸에서 배출되는 다른 물질과 달리, 불화물에 포함된 불소는 체내에 축적되는 특징이 있어, 앞으로 장기적으로 나타날 주민들의 건강문제도 매우 염려스럽다. 토양과 수질오염, 야생 동식물 먹이사슬에 따른 연쇄적인 생태계 오염은 말할 것도 없다.    

주민들은 열흘 가까운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그저 “유해기준치 이하이니 안전하다”는 시 당국의 앵무새 같은 소리만을 들어야 했다. 심지어 피난 하루 만에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시 당국의 조치만 믿고 일상으로 돌아갔다가, 더욱 심한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부는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반발여론이 거세지자, 뒤늦게 10월 5일에야 합동조사단을 꾸려 사태파악에 나서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으로 인한 충격도 충격이지만, 정부의 안이한 늑장대응에 대한 주민들의 분노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금요일 저녁, 검진을 받기 위해 학교에서 조퇴한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마스크를 낀 채 보건소 앞에 몇 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퇴근시간이 되었으니 돌아갔다가 주말 지나고 다음 주에 다시 오라”는 통보를 받은 어머니들은 얼마나 불안하고 분통이 터지겠나. 

<영남일보> 2012년 10월 6일자 7면(사회)
<영남일보> 2012년 10월 6일자 7면(사회)

잇따른 핵발전소 고장

그런 와중에 지난 10월 2일에는 신고리 1호기와 영광 5호기 핵발전소 두 기가 2시간 간격으로 고장이 나서 정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12번째 핵발전소 고장이다. 인근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오죽하겠나. 그러한 불안은 결코 근거 없는 게 아니다. 고장을 되풀이하는 핵발전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땅에는 그런 위험천만한 핵발전소가 23개나 돌아가고 있다. 그 가운데 부산의 고리 1호기는 이미 다 낡은 것을 억지로 수명연장까지 해 운전하고 있는 중이고, 경주의 월성 1호기는 그 수명이 다하는 날이 40여일 남았는데 이것도 수명을 늘이려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런데도 한수원과 정부는 “별일 아니다”, “안전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뻔한 소리를 또다시 되풀이하고 있다. 거기다 한수원 관계자들은 참으로 뻔뻔스럽게도 “수백만 개의 부품을 납품받으면서 일일이 성능을 확인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사용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고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한겨레> 2012년 10월 3일자 8면(종합)
<한겨레> 2012년 10월 3일자 8면(종합)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한수원과 정부의 말은 갈수록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 2월에 발생한 고리 1호기 정전 은폐 사고와 핵발전소 납품비리, 고리 핵발전소 직원 마약투여 사건 등이 잇따르면서, 핵발전소 안전성에 대한 의문과 시민들의 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가권력의 무책임한 속성

최근에 발생한 이러한 사태들을 접하다 보면, 우리의 안전을 국가의 손에만 맡겨 두는 것이 옳은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가공할 사태 앞에서 정부 당국은 언제나 예외없이 “기준치”니 “설계기준”이니 따위를 운운하며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구미 사태만 하더라도, 시민들에게 불산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설명회를 열고, 정부를 향해 사태파악과 긴급재난지역 선포 등 조치를 요구한 것은 시민단체와 녹색당의 지역 당원모임이었다.   

국가권력의 무책임한 속성을 명백히 보여주는 사례는 최근 며칠 사이 보도된 것들만 해도 여러 건이다. 지난해 3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유출된 방사성물질의 확산 경로를 예측하던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에 국가정보원이 외압을 행사하여 시뮬레이션 연구가 갑자기 중단되었다는 사실이 바로 며칠 전 국정감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행태는 국적을 초월한다. 일본 후쿠시마현 당국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주민들의 방사능 피폭검사 결과와 관련한 전문가 공개검토회를 개최하기 전에 ‘말 맞추기’ 비밀모임을 열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어린이들에 대한 갑상생 검사결과 갑상생암 환자가 확인되었으나, 현 당국과 전문가 위원들은 “핵발전소 사고와 암 발생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입을 맞추기로 했고, 이를 토대로 질의응답 시나리오까지 작성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무엇을 말하는가. 국가권력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언제나 특정집단의 ‘경제적 이익’, 기득권 세력과 기업들의 ‘안전’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러한 소수의 ‘이익’과 ‘안전’을 ‘국익’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전체 시민들을 속이는 것 역시 상투적인 수법이다. 

대통령 선거가 의미 있으려면

대통령 선거가 다가온다. 우리는 또다시 한 명의 대통령을 뽑아 앞으로 5년간의 ‘국정’을 그에게 맡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누가 되든, 앞서 말한 국가권력의 근본 속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만약 그럼에도 대통령 선거라는 것이 의미를 가지려면 어떤 조건이 마련되어야 할까. 국가권력이 가진 이러한 속성과 한계를 인정하는 위에서, 집중화된 거대권력을 지역으로 분산시키고, 지역 토호들을 포함한 기득권 세력과 자본으로부터 시민사회를 보호해 풀뿌리의 정치적 힘을 강화할 수 있는 길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가 후보 중 적어도 한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정당이나 정치세력이 선택지 속에 하나쯤은 들어있어야 하지 않을까.

권력분산과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라는 비전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경제민주화’나 ‘복지’도 결국은 기득권 세력과 자본의 체제 재생산에 복무하고 풀뿌리를 바보로 만드는 주술에 불과하다.

구미 사태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사실 이번 참사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사고 직후 지역공동체 차원에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이나 자치적 리더십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처럼 위험천만한 공장이 동네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인근 주민들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역공동체와 풀뿌리가 자신의 삶, 안전에 대한 통제력, 즉 권력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 지역 주민들의 탓이 아니다. 사람도, 돈도, 정치적 의사결정의 힘과 활력, 자치력도 모조리 서울과 수도권으로 빼앗겨 버린 대한민국 모든 지역의 왜소한 모습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대통령 선거라는 것이 의미가 있으려면, 바로 이러한 권력의 심각한 불균형을 직시하고, 권력을 원래 그 주인에게로 돌려주기 위해 그 권력을 제한적으로 사용하려는 사람,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 틈입해 들어올 기득권 세력과 자본의 집요한 공격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방어할 각오가 되어있는 정치세력을 선택할 기회가 열려있어야 한다. 물론 그런 후보라면, 덩치만 크고 무책임한 국가권력의 손에 맡겨져 있는 제1의 위험요소,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인 핵발전소를 2030년경까지는 모두 폐쇄하겠다는 정도의 ‘안전 감각’은 기본일 것이다.

그런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주는 후보가 끝내 단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아니 그런 후보를 만들어 내는 데 우리가 결국 실패한다면, 그렇다면 대통령 선거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풀뿌리의 안전을 결코 책임질 수 없는 무책임한 국가권력을, 간판만 바꿔달아 그대로 유지하는 일에 들러리나 서게 될 텐데……






[변홍철 칼럼 16]
변홍철 / <하이하버연구소> 소장,  전 《녹색평론》주간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