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암 지지" 72% 대구, 그 후 '보수 몰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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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1956년 '이승만' 27%...박정희-노태우-김영삼-이회창-이명박 '70% 몰표'


여야 후보가 접전을 펼치고 있는 제 18대 대통령선거. 그러나 대구는 주요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 7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보내고 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 지지율은 20% 안팎에 그치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결집으로 대변되는 18대 대통령선거. 대구의 '보수 몰표'는 이번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앞서 2007년 12월 19일 치러진 제 17대 대통령선거에서도 대구는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69.37%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이명박 후보는 전국 48.67%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대구는 경상북도(72.58%)다음으로 높은 지지를 이 후보에게 보냈다. 대구지역 득표율은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18.05%로 2위를 차지했고,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6.0%,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3.99%,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2.03%에 그쳤다. '보수'로 분류되던 이명박과 이회창 후보 득표율을 더하면 무려 87.42%에 이른다. '보수 텃밭'이라는 오랜 수식어가 여실히 증명된 선거였다.

제 17대 대통령선거(2007년) 대구지역 득표율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그러나, 1950년대로 돌아가면 대구는 '보수 몰표', '보수 텃밭' 이미지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반대 현상을 보인다. 오히려 '진보의 아성'이었다. 적어도 5.16쿠데타를 지휘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처음 당선된 1963년 이전까지는 그랬다.

1956년 대구, '조봉암' 72% vs '이승만' 27%

1956년 5월 15일 치러진 제 3대 대통령선거. 자유당 이승만 후보가 69.98%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후보는 이승만과 무소속 조봉암 뿐이었다. 유력 주자였던 민주당 신익희 후보가 호남 유세로 가던 열차 안에서 급사하면서 나타난 결과였다. 조봉암 후보는 30.01%로 낙선했다.

그러나, 대구는 달랐다. 이승만 후보가 27%대 득표율에 그친 반면, 조봉암 후보에게는 72%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당시 대구시를 포함한 '경북'의 조봉암 지지율은 44.67%로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높았다. 자유당 정부에 대한 분노와 신익희 후보의 급사에 따른 반사이익을 감안하더라도 '진보의 아성'이라 불릴만 했다. 조봉암 후보는 1956년 낙선한 뒤 그 해 진보당을 창당해 '위원장'으로 정치활동을 하다 1958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제 3대 대통령선거(1956년) 대구지역 득표율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합계'는 대구와 경북 시.군을 포함한 득표율)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합계'는 대구와 경북 시.군을 포함한 득표율)

앞서, 1952년 치러진 제 2대 대통령선거에서도 대구는 조봉암 후보에게 23%의 지지를 보냈다. 당시 이승만 후보의 대구지역 득표율이 40%대, 무소속 이시영 후보가 20%대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만만치 않은 지지였다.

제 2대 대통령선거(1952년) 대구지역 득표율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합계'는 대구와 경북 시.군을 포함한 득표율)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합계'는 대구와 경북 시.군을 포함한 득표율)

대구는 5.16쿠테타 주역 '박정희'가 첫 출마한 1963년 제 5대 대통령선거에서도 '고향 사람' 박정희에게 몰표를 주지는 않았다. 당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는 46.64% 득표율로, 민정당 윤보선 후보(45.09%)를 불과 1.5%p 차이로 누르고 겨우 당선됐다. 대구지역 유권자들은 이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에게 51.12%를, 윤보선 후보에게 43.85%를 줬다. 그 차이는 7.27%p에 불과했다.

제 5대 대통령선거(1963년) 대구지역 득표율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합계'는 대구와 경북 시.군을 포함한 득표율)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합계'는 대구와 경북 시.군을 포함한 득표율)

그러나, 이런 근소한 차이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대구는 1967년 제 6대 대통령선거부터 '보수 몰표'의 역사를 시작했다.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에게 70%가 넘는 지지율 보낸 반면, 신민당 윤보선 후보 득표율은 25%에도 미치지 못했다. 당시 박 후보의 전국 득표율은 51.44%, 윤 후보는 40.93%였다.

1971년 대구, '김대중' 31%...40년동안 넘지 못한 벽

1971년 제 7대 대통령선거 역시 대구는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에게 70%에 가까운 지지율을 보냈다. 신민당 김대중 후보는 30%를 조금 넘는 수준에 그쳤다. 당시 전국 득표율은 박정희 53.19%, 김대중 45.25%였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김대중 후보가 대구에서 얻은 31.8%의 득표율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구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록'으로 남게 됐다. 1997년 김대중 후보가 당선될 때 대구 득표율은 12.53%였고, 2002년 노무현 후보가 당선될 때도 대구는 18.67% 밖에 표를 주지 않았다.

제 7대 대통령선거(1971년) 대구지역 득표율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합계'는 대구와 경북 시.군을 포함한 득표율)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합계'는 대구와 경북 시.군을 포함한 득표율)

제 7대 대통령선거를 끝으로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 직선제'는 15년동안 대한민국에서 사라지게 된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을 통해 제 8대 대통령선거(1972)부터 제 11대 대통령선거(1979)를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장기집권'을 이어갔다. 그리고, 1979년 10.26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 서거한 뒤 12.12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1981년 '대통령선거인단' 선거방식으로 이른바 '체육관대통령' 시대를 연다.

15년만의 직선제...대구, '노태우' 70% 득표


그러나, 1987년 6.10 민주화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은 국민들은 이 해 12월 16일 제 13대 대통령선거를 맞게 됐다. 1972년 '통일주체국민회의' 선출 이후 무려 15년만의 '직접선거'였다.

'민주화', '군정종식' 구호 속에 치러진 1987년 제 13대 대통령선거. 그러나 대구는 '군정'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당시 집권세력인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는 70.69%의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한 반면,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는 24.28%,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는 2.63%에 그쳤다. 당시 노 후보가 전국 득표율 36.64%로 당선됐고, 김영삼과 김대중 후보가 각각 28.03%와 27.04%를 득표한 것과 비교하면 대구의 '보수 몰표'는 기록적이었다. 대구의 노태우 지지율이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높았던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제 13대 대통령선거(1987년) 대구지역 득표율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김영삼이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한 1992년 제 14대 대통령선거 역시 대구의 '보수 몰표'는 여전했다. 김영삼 후보가 59.59%를 득표한 반면, 민주당 김대중 후보는 7.82%에 그쳤다. 김영삼 득표율이 노태우 때보다 10%가량 줄었지만, 이 선거에는 '보수' 성향의 통일국민당 정주영 후보가 있었고, 정 후보는 19.39%를 가져갔다. 결국, 대구는 김영삼과 정주영 후보의 득표율을 더한 78.98%를 '보수'에게 몰아준 셈이다.
제 14대 대통령선거(1992년) 대구지역 득표율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대구의 이런 '보수 몰표'는 50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1997년 제 15대 대통령선거 때도 비슷했다. 전국 40.27% 득표율로 당선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대구에서 겨우 12.53%를 얻는데 그쳤다. 반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72.65%를 기록해 그의 전국 득표율(38.74%)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고, 당시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도 대구에서 13.06%를 득표했다.

제 15대 대통령선거(1997년) 대구지역 득표율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2002년 대구... 이회창 77.7% vs 노무현 18.6%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 제 16대 대통령선거에는 더 심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무려 77.75%를 몰아준 반면,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18.67%에 그쳤다. 당시 노무현 후보가 전국 48.91%, 이회창 후보가 46.58%의 박빙 승부를 벌였기에 대구는 몰표는 더욱 눈에 띄는 대목이었다.

제 16대 대통령선거(2002년) 대구지역 득표율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그리고, 2007년 12월 19일 치러진 제 17대 대통령선거에서도 대구는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69.37%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이명박 후보는 전국 48.67%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대구는 경상북도(72.58%)다음으로 높은 지지를 이 후보에게 보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6.0%에 불과했고, 문국현 후보 3.99%,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도 2.03%에 그쳤다. 대신,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18.05%를 얻었다. '보수'로 분류되던 이명박과 이회창 후보 득표율을 더하면 무려 87.42%에 이른다.
'보수 텃밭', '보수 몰표'가 다시 증명된 선거였다.

대구의 '보수 몰표' 역사, 2012년에도 기록돼야 할까?

12월 19일 실시되는 제 18대 대통령선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앞에 '보수'가 똘똘 뭉쳤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옆에 안철수 전 후보와 진보정의당 심상정 전 후보가 힘을 보태고 있다. 대구는 이번 대선에 쏟아진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보수'를 지지하고 있다. 박 후보는 60-70%대의 지지를 받는 반면, 문 후보는 20% 안팎에 그치고 있다.

이승만에 맞선 조봉암에게 70%를 몰아준 1956년, 박정희에 맞선 윤보선에게 43.85%를 지지한 1963년, 김대중에게 아직도 넘지 못한 30%의 지지를 보여준 1971년. 그러나, 그 후 '보수' 아닌 후보에게 단 20% 득표율도 허락하지 않은 대구. 대구의 '보수 몰표' 역사는 2012년에도 기록돼야 할까?

역대 대통령선거 실시현황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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