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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걸어볼 여지조차 없는 이들도 많습니다"
조환길.권혁주 천주교 대구.안동교구장 성탄메시지..."가장 절실한 것은 사랑입니다"
2012년 12월 24일 (월) 12:05:53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12월 25일 성탄절을 맞아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와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가 성탄메시지를 발표했다. 두 주교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지극히 겸손한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또, 가난하고 상처받은 이들,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사랑"이라고 당부했다.

   
▲ 조환길 대주교
대구대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는 성탄 메시지를 통해 "아기 예수님은 못난 우리가 보살펴드리고 안아드릴 수 있도록 힘없고 작은 사람이 되셨다"며 "성탄을 맞아 절로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사랑 때문에 이토록 먼 거리를 내려오신 주님의 겸손 때문"이라고 성탄의 의미를 새겼다.

특히, "우리 주변에는 희망을 걸어볼만한 여지조차 없는 이들도 많이 있다"며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사랑, 용기 있는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조 대주교는 "스쳐지나가는 관심이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랑, 멀리 떨어져서 대책을 논의하는 도움보다는 찾아가서 함께 있어 주는 사랑, 남아도는 것을 나누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꺼이 손해를 보고 불편을 감수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랑이 꼭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 권혁주 주교
안동교구장 권혁주(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도 "하느님은 가장 보잘 것 없고 비참하고 죄스럽고 약한 이들 가운데 거처하시면서 그들을 구원하는 분"이라며 "그 분이 바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셔서 모든 것을 함께 나누신 사람이 되신 하느님, '구유의 아기 구세주 예수님'"이라고 성탄의 의미를 새겼다.

특히, "하느님의 사랑은 지극히 겸손하고 단순하다"며 "오로지 상대방의 처지에서 상대방과 함께하는 사랑, 내려갈 때까지 내려가는 지극히 겸손한 사랑, 그 낮은 자리에서 상대방을 위해 내놓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내놓는 지극히 단순한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또, "특별히 가난하고, 버림받고, 상처받은 이들 안에서 그 분을 새롭게 만날 수 있어야 한다"며 "이것이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알아보는 표징'(루카복음2,12)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성탄메시지 -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가난한 이들 가운데 계신 주님


    아기 예수님의 평화가 교우 여러분의 가정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어 죄를 빼고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아지기를 원하신 주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영광을 떠나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못난 우리가 보살펴드리고 안아드릴 수 있도록 힘없고 작은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추운 계절인데도 성탄을 맞아 절로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사랑 때문에 이토록 먼 거리를 내려오신 주님의 겸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안보와 민생, 교육과 복지의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둘러싸고 갖가지 논란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경제 위기의 와중에 경기가 위축되고 일자리도 줄어들어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이 금세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밖으로부터는 전쟁과 재난의 소식도 끊이지 않고 들려옵니다. 며칠 전에는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나라 살림을 맡아 일할 새 대통령도 뽑았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저무는 해를 보내지만 우리 주변에는 희망을 걸어볼 만한 여지조차 없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정치의 쇄신이나 경제의 민주화와 같은 긍정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제도상의 개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사랑입니다. 스쳐지나가는 관심이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랑, 멀리 떨어져서 대책을 논의하는 도움보다는 찾아가서 함께 있어 주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남아도는 것을 나누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꺼이 손해를 보고 불편을 감수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랑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 사랑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을 뿐 아니라, 스스로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 사셨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하신 말씀은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진실입니다. 가장 크신 분께서 작은 이들을 형제라고 부르셨으니, 주님의 제자 된 우리는 마땅히 작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야 할 것이며, 힘들어하는 이웃을 볼 때마다 바로 주님을 뵙는다고 여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자선의 정신이며, 주님의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처음 오실 때에 그러하셨던 것처럼 주님께서는 이 성탄절에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십니다. 추운 겨울에 방을 얻지 못해 한 데서 태어나신 분께서는 우리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5)하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참된 평화가 있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꽃이 있습니다. 은총 가득한 이때에 주님께서 모든 교우들에게 참 사랑을 충만히 부어주시기를, 그리고 그 사랑이 넘쳐나서 우리의 이웃에게 흘러가기를 기도합니다.


성탄메시지 - 천주교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
강생의 신비와 새로운 복음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요한 복음사가는 주님 성탄의 벅찬 기쁨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토록 자신을 낮추시고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신 것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하느님에게까지 오를 수 없는 비천한 우리들을 들어 높이기 위해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 많은 우리 인간들을 한 사람도 구원에서 놓치지 않기 위하여 가장 누추하고 버림받은 자리인 마구간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서 친히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신 ‘강생의 신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처럼 놀랍고 오묘합니다. 그러면서도 지극히 겸손하고 단순합니다. 오로지 상대방의 처지에서 상대방과 함께하는 사랑, 내려갈 때까지 내려가는 지극히 겸손한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 낮은 자리에서 상대방을 위해 내놓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내놓는 지극히 단순한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분이십니다. 오늘 주님 성탄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이 바로 그러한 사랑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통해 우리 가운데 드러내신 ‘강생의 신비’가 바로 그 사랑의 구체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강생’으로 우리 인간이 구원되고 우리 인간이 하느님과 하나 되는 친교를 이루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 성탄의 신비, 강생의 신비인 것입니다.

강생의 신비는 그분이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니 우리도 그에 맞갖게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작고, 약하고, 힘없는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우리가 주님을 알아보고(마태 25,31-46 참조), 주님을 섬기듯 그들을 극진히 섬기며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들 또한 ‘강생의 신비’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신앙의 해’(2012년 10월 11일-2013년 11월 24일)를 보내고 있습니다. “신앙의 해는 온 세상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주님을 향하여 참으로 새롭게 돌아서라는 초대입니다.”(「믿음의 문」 6항) 그러므로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주님으로부터 멀어진 이들이 신경(Credo)에서 고백한 신앙을 새롭게 재발견하고 새로운 열정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은 신앙의 해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책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고 세례 때 ‘입으로 고백한 바를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얻기 위해서입니다.’(로마 10,10 참조) 2000년 전에 우리에게 오셨던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새롭게 오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탄 미사 전례 때 외치는 그대로입니다. “오늘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태어나셨다.”(성탄 밤 미사 화답송) 이러한 의미에서 강생의 신비는 우리 신앙 안에서 오늘도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강생의 신비를 항상 새롭게 살아야 하는 것이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책무라면, 이런 신앙을 이웃에게 전하고 이런 신앙을 살도록 이끌어 주는 것 또한 이 신앙의 해에 우리 모두가 함께 이루어 나가야 할 ‘새로운 복음화’의 길이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강생의 신비를 항상 새롭게 살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선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구유의 아기 예수님’(루카 2,12 참조)이 우리의 메시아, 구세주이심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신앙 안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며 다가오시는 그분을 알아 뵙고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을 향한 ‘새로운 열정’을 우리 신앙 안에서 불러 일으켜야 합니다. 믿음이 약하거나 미지근한 사람들이 ‘구유의 아기 예수님’을 입으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얻어 누릴 수 있도록 그분의 새로운 현존 방식을 ‘새로운 표현’으로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버림받고, 상처받은 이들 안에서 그분을 새롭게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루카 복음사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이 우리에게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알아보는 표징’(루카 2,12 참조)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강생의 신비를 항상 새롭게 사는 우리의 새로운 생활양식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조건과 처지가 아무리 보잘것없고 비참하더라도, 아무리 죄스럽고 약하다 하더라도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구원해주는 분이십니다. 오히려 가장 보잘것없고 비참하고 죄스럽고 약한 이들 가운데 거처하시면서 그들을 구원하는 분이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이 바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셔서 모든 것을 함께 나누신 사람이 되신 하느님, 곧 ‘구유의 아기 구세주 예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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