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치마에 허리까지 오는 가발을 쓴 드랙퀸(여장 남자)과 정장에 넥타이를 맨 드랙킹(남장 여자)이 지나간다. 행인이 노골적으로 쳐다보자 보란 듯 웃으며 손가락에 키스를 날린다. 옆 사람 팔뚝에는 "나는 성(性)소수자를 지지합니다"라고 적힌 무지개 스티커가 붙어있다. 분홍색 티셔츠를 입은 '한국게이총연합회' 한 청년은 "Gay(게이)는 주님의 자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 손수건, 옷, 가방, 팔찌 등 모든 곳에 무지개가 떴다. 모두 밝고 당당하다.
22일 오후 제5회 '대구퀴어문화축제'를 맞아 대구 동성로에 퀴어(Queer.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내걸렸다. 퀴어란 레즈비언(여성동성애자)과 게이(남성동성애자), 바이섹슈얼(양성애자), 트랜스젠더(성전환자) 등을 지칭하는 말로, 이들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권리를 촉구하는 행사는 매년 미국 시카고(프라이드 퍼레이드)와 브라질(게이프라이드) 등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구ㆍ서울 2곳에서 열린다.
300m 남짓한 거리에는 성소수자와 관련된 다양한 전시와 공연이 펼쳐졌다. 입구에는 남성이 남성을, 여성이 여성을 안아주는 '프리허그'가 진행됐고 '동성애처벌법'으로 불리는 "군형법 제92조의 6항(동성간음죄) 폐지", "차별금지법(학력・혼인・종교・정치적 성향・전과・성적지향 차별금지) 제정" 서명운동이 각각 이어졌다. '동성애', '혐오', 'STOP' 같은 문구를 도장으로 파는 시민참여 행사도 진행됐다.
<대구퀴어문화축제준비위원회>는 '오해하지마세요'를 주제로 5번째 <대구퀴어문화축제>를 열었다. 이날 축제에는 시민 3백여명이 참석했으며 문화제와 행진을 포함해 5시간가량 진행됐다.
이날 축제에서는 레즈비언 갱스터랩 듀오 <하레와 우야>가 레즈비언의 애환을 담은 '혼란기에 들으면 더 혼란 주는 노래'를 불렀고 장애인지역공동체 활동가 이민호씨는 들국화의 '더 이상 내게'를 부르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이 세상 모든 차별을 철폐하자"고 말했다. 마임이스트 이정훈씨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우산에 달아 깃발이 바다에 잠겼다 하늘로 날아가는 공연을 선보였다.
공연과 전시가 끝난 후에는 동성로 일대에서 1시간 30분가량 '자긍심의 퍼레이드(거리행진)'를 펼쳤다. 참석자들은 "저들은 혐오하고 우리는 사랑한다", "멈춰라 동성애혐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해치지 않아요", "성적으로 다양한 사회는 풍요롭습니다" 등 다양한 피켓과 무지개 깃발을 들고 행진했다. 특히, 가수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구호를 외쳐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눈살을 찌푸리는 시민들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은 손을 흔들거나 사진을 찍으며 행진을 반겼다.
배진교 조직위원장은 "대학생, 직장인, 누군가의 딸과 아들. 많은 이들이 성소수자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오해와 편견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있다"며 "모두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친구다. 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오해를 없애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는 "성소수자의 인권은 이 사회의 인권 척도가 됐다. 기독교가 앞장서서 그들을 차별한다는 것은 오해다. 제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에 따라 성적지향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다"면서 "대구에서 무지개 꽃밭이 활짝 피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퀴어문화축제조직위는 이번 문화축제의 하나로 지난 14일 대구 방천시장 '토마갤러리'에서 '대구퀴어미술전-여기 퀴어 있다' 오프닝을 갖고 오는 30일까지 매일 오전11시~저녁7시까지 무료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앞서, 21일에는 대구MBC에서 '차별금지법-오해하지마세요' 토론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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