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르신들이 그린 '우리 민화 우리네 삶'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3.06.2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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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교육문화센터, 1년간 배운 솜씨로 '민화 전시회'..."처음 붓잡아 작은 소원을 담았지"


<대현교육문화센터> '우리 민화 우리네 삶' 민화전을 감상하는 시민들(2013.6.24.북구청 민원실)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현교육문화센터> '우리 민화 우리네 삶' 민화전을 감상하는 시민들(2013.6.24.북구청 민원실)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먹고 살기 바빠서 평생 처음 붓 잡아봤네"


대구 북구 대현동에 사는 박동표(76) 할아버지는 24일 북구청 민원실 한쪽 벽면에 걸려있는 '모란도'  앞에 섰다. 한참 활짝 핀 노란색, 빨간색 모란꽃을 바라보며 할아버지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난 1년 동안 할아버지가 직접 그린 우리나라 전통 '민화(民畵)'다. 할아버지는 모란꽃 잎사귀 아래를 가리키며 "수전증이 있어서 그림 그리다 조금 떨었더니 물감이 번졌다"고 아쉬운 말투로 말했다.  

박동표 할아버지와 최이조 할머니의 '모란도'(2013.6.24.북구청 민원실)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박동표 할아버지와 최이조 할머니의 '모란도'(2013.6.24.북구청 민원실)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할아버지는 1983년부터 20년 넘게 목공으로 지내며 가족 생계를 책임졌다. 매일 무거운 망치를 들고 공장과 공사장을 오갔다. 그리고, 지난해 '대현교육문화센터'(센터장 구인호)에서 '민화' 강좌를 배우며 처음 붓을 잡았다. 처음에는 '무슨 그림이야'라며 거부했지만 차츰 동심의 세계로 빠졌다. 수전증 때문에 망친 경우도 많았지만 민화를 통해 노년기의 소박한 꿈을 담느라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모란은 부귀와 화합을 상징한다. 내 평생 돈도 많이 못 벌고 시간이 없어 가족한테 잘해주지도 못했다. 남은 인생은 두 가지 소원을 다 이뤘으면 좋겠다. 좀 잘 풀렸으면 좋겠다. 그림에 소원을 담았다"

전시회를 감상하는 시민들(2013.6.24.북구청 민원실)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전시회를 감상하는 시민들(2013.6.24.북구청 민원실)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예순, 일흔 살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직접 그린 '민화' 전시회가 열렸다. <대현교육문화센터>는 지난 24일 오프닝을 갖고 오는 28일까지 북구청 민원실에서 '우리 민화 우리네 삶'을 주제로 민화전을 연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리며 입장료는 무료다. 24일에는 작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구인호 대현교육문화센터장, 이종화 북구청장, 유병철 북구의원 등 시민 3백여명이 참석했다.

대현교육문화센터는 지난 2011년 대현1・2동이 '대현동'으로 통폐합되면서 주민센터가 신청사로 옮겨가자, 북구청이 기존 주민센터를 주민 문화시설로 활용하면서 만들어졌다. 옛 대현1동 주민센터는 대현교육문화센터로 리모델링돼 '경로당'과 '노인교육문화센터'로 지난해부터 이용되고 있다. 옛 대현2동 주민센터는 '마을도서관'과 '주민쉼터'로 조성될 예정이다. 

특히, 대현교육문화센터는 노년층의 배움과 여가에 도움을 주기 위해 민화, 한자, 한글, 생애 최초 영어, 민요, 컴퓨터, 탁구교실 같은 다양한 강좌와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운영은 강사비와 시설비 같은 예산 일부만 북구청이 지원하고 지역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이끌어가고 있다.  

'즐거운 인생 행복한 노년'...민화전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희망문구를 넣어 만든 부채들도 전시됐다(2013.6.24.북구청 민원실)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즐거운 인생 행복한 노년'...민화전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희망문구를 넣어 만든 부채들도 전시됐다(2013.6.24.북구청 민원실)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번 전시회는 문화센터 홍보와 운영기금 마련을 위해 열렸으며 지난 1년 동안 '민화' 강좌를 수강한 대현동 주민 할머니, 할아버지 9명 전원의 민화와 붓글씨, 사군자가 새겨진 부채 등 작품 10점이 전시됐다. 부채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네', '받고 싶은 마음에서 주고 싶은 마음으로', '즐거운 인생 행복한 노년'과 같은 작은 희망사항이 담겨있다. 

또, 이들의 지도강사인 정옥희, 구정애 작가 같은 전문화가들 작품도 전시됐다. 이들은 모든 작품을 무료로 찬조했으며 판매 수익금은 대현교육문화센터 운영기금으로 전액 기부하기로 했다. 특히, 구정애 작가는 밥상에 쌀밥과 수저를 그려 넣은 '외할머니의 숟가락'이란 작품과 콩나물시루에 '너만 성질 있냐 나도 대가리부터 밀어 올린다', 소주병에 '나보다 가난한 친구에게 술 한잔 얻어 마시고 돌아서면 도둑놈 같다 내가'라는 문구를 넣은 작품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지도강사인 구정애 작가의 찬조 작품들(2013.6.24.북구청 민원실)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지도강사인 구정애 작가의 찬조 작품들(2013.6.24.북구청 민원실)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모란도 2점을 전시한 최이조(72.대현동) 할머니는 "40년 동안 동대구시장서 노점하고 자식들 키우느라 바빴는데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전시도 하게 돼 기쁘다"며 "늦은 나이에도 이렇게 뭔가를 배울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지도강사인 정옥희 작가는 "민화는 민중의 염원을 담은 가장 서민적인 그림이다. 그림에 능숙하지 못하더라 누구나 쉽게 그리고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인호 대현교육문화센터장은 "어르신들의 소박한 작품을 주민들께 선보이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문화센터를 운영하며 배운 공동체 의식을 다른 주민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또, "노년층 복지와 배움의 기회가 다양해지길 바란다"면서 "지원과 관심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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