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공포의 정치사회학

다산연구소
  • 입력 2015.06.0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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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포럼] 김동춘 / "영리병원이 공중보건을 책임질 수 있나"


  이번의 메르스 확산 과정을 보면서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이반 일리치(Illich)의 경구가 떠올랐다. 최경환 국무총리대행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메르스는 모두 의료기관에서 감염된 사례들”이라고 시인했다. 평택 성모병원에서 발병한 환자는 삼성병원의 의술과 명성을 알고서 그곳으로 치료받기 위해 갔을 것이다. 그런데 삼성병원은 전염병 환자를 별도로 격리해서 치료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한 영리병원일 따름이었다. 한국 최고의 병원으로 알려진 삼성병원은 역설적으로 메르스 바이러스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허브 역할을 했다.

영리병원이 공중보건을 책임질 수 있나

   사람들은 이번 메르스 감염자들을 제대로 격리하지 않았던 삼성병원을 크게 비난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일은 삼성병원의 소관사항이 아니다. 과거나 현재나 전염병 백신을 개발하거나 확산을 막고 발생한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공중보건은 영리병원이 아닌 국가나 정치의 영역에 속한다. 민간병원에게 전염병 환자는 오히려 기피 대상 고객이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할 때도 민간병원은 환자 받기를 꺼렸다.
 
  그렇게 보면 의술의 발전, 병원의 대형화와 현대화, 의료장비의 첨단화는 공중 보건의 질 제고에는 별로 기여하지 못한다. 기업화된 병원은 충분한 치료비를 준비해 오는 고객의 요구에는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이런 고액의 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다수 국민들의 건강은 물론 심지어는 자기 회사 직원인 의사나 간호사들의 건강과 생명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전염병 환자가 자기 병원에 있었다는 것은 중요한 영업 비밀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정부는 공중 보건보다는 삼성병원의 위신과 이익에 신경을 쓰는 태도를 보였다.
 
  전염병의 확산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차단할 수 있는 행정조치 및 공권력 동원이 가능한 정부가 공익, 즉 국민 건강의 관점에 서서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면 초기에 쉽게 진압할 수 있는 전염병이 마구 퍼져 온 국민을 환자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몇 분야의 의술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의료 선진국 한국이 하루아침에 의료 후진국의 오명을 뒤집어썼고, 국가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즉 환자의 건강과 생명보다는 이윤에만 관심 있는 병원, 국민의 안전과 생명보다는 이들 힘 있는 영리병원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정부나 정치권은 전염병 환자와 공포에 질린 국민에게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경실련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은 인구 1천 명 당 병상 수는 9.46 개로 세계에서 일본다음으로 많다고 한다. 그런데 1천 명 당 공공병상 수는 1.19개로 OECD 24개국 중 최하위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위급한 사태가 발생해도 감염된 환자들을 격리시켜 치료할 병동이 없다. 자가 격리시키는 것 외에 별다른 대책을 마련할 수가 없다는 것인데, 자가 격리라는 것은 결국 병을 가족에게 옮기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닌가 

정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관심 있나

   사실 이번의 메르스 사태는 겉으로는 정부의 대응 과정, 혹은 전염병 방지 시스템의 붕괴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잘못된 시스템에 더 큰 원인이 있다. 즉 최고의 의술과 시설, 막대한 의료비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시스템이 문제다. 첨단 의료장비를 갖춘 영리병원은 중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지만, 국민 일반의 건강과는 무관한 것일 수도 있고, 오히려 공공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가로막거나, 이번처럼 전염병이 창궐하면 오히려 국민을 심한 공포와 불안에 빠트리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오늘날처럼 대도시에 인구가 밀집하고, 수천 명의 환자가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상황은 과거에는 없었던 엄청난 위험 요소를 갖고 있다. 그래서 전염병에 대한 예방과 확산을 막기 위한 국가와 정치권의 공중보건 강화 노력이 없다면, 처음에 우습게 시작한 전염병도 전쟁과 같은 대참사를 가져올 수 있다.
 
  이번 박근혜 정부의 대처 모습은 지난해 세월호 사건과 거의 판박이다. 이 정권의 관심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보다는 권력 유지, 대기업의 이익 보장에 주로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 그래서 문제는 결국 정치다. 더 이상의 사망자가 나오기 않기를 기원한다.










[다산연구소] 다산포럼 / 2015-6-9 (다산연구소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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