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을 벗어나는 길, 남북의 교류·협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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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현 / 빗장 풀리지 않는 남북, 대결할 것인가 협력할 것인가


남과 북의 지도자들은 지난해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밝혔었다. 그러기에 2015년에는 분단극복을 향한 조그만한 진전이라도 이루어 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광복 70년인 지난 2015년, 남북관계의 숨통이 트이리라는 민족적 기대는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8월 군사적 충돌 위기를 봉합한 8·25합의도 있었고 남북당국자들간의 접촉도 있었고 이산가족 상봉도 이루어졌지만 남북관계의 진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겨레> 2016년 1월 11일자 1면
<한겨레> 2016년 1월 11일자 1면

어떤 이들은 그래도 종교인들과 대북지원단체들의 방북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을 들어 민간교류도 늘고 있으니 그래도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사실 이명박 정부 이후 지속적으로 후퇴한 남북관계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지난해 11월 금강산에서 ‘남북종교인 평화대회’가 열리는 등 부분적인 남북교류는 일어나고 있지만 금강산 관광은 중단되어 있는 등 여전히 일상적인 남북교류가 단절되어 있다. 무엇보다 남북간의 교역을 전면적으로 중단한 5·24조치가 해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이명박 정부와 달리 남북관계가 진전되리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드레스덴 선언’ 등은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보다 진일보한 대북정책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남북관계의 빗장은 풀리지 않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벌써 집권 4년차를 맞이하는 박근혜 정부에게 남북관계에 성과를 남길 수 있는 시간도 그리 길게 남아 있지 않다고 볼 때 대북정책의 근본문제를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북한붕괴론'에 바탕한 대북정책, 남북 개선 불가능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근본문제는 정책의 밑바탕에 ‘북한붕괴론’이 있다는 것이다. 이름만 ‘통일대박론’으로 변경되었을 뿐 이명박 정부의 ‘통일준비론’과 본질적으로는 아무 차이가 없다. 이명박 정부는 “통일은 도둑같이 온다”며 통일기금을 모은다고 ‘통일항아리’를 만들며 북한이 곧 무너지는 상황을 기정사실화 했다. 박근혜 정부도 겉으로는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통일대박론’은 북한급변사태를 전제로 하고 있다.

지난 해 7월10일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내년에라도 통일이 될지 모르니 준비를 더욱 잘 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북한붕괴론’을 굳게 믿고 있는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지난해 9월과 10월 중국과 미국을 상대로 벌인 소위 ‘통일외교’도 기실은 북한붕괴를 전제로 미국과 중국이 한국주도의 통일을 승인해달라는 것이었다. 통일 상대방인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주변국들에게 하는 '통일외교‘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는 마치 결혼 상대방의 의사는 묻지 않고 상대방 부모의 승인을 얻고자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혼을 하려면 결혼 상대방에게 선물도 주고 데이트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단점을 찾기 전에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북한의 체제를 부정한 채 곧 붕괴될 것이라는 ’희망‘을 신념화 한 채 추진하는 대북정책이 성공할 리 없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북한 급변 시나리오 대신 남북 경제협력 대책 필요"

북한붕괴론이라는 유령은 1994년 여름부터 한반도 상공을 떠돌기 시작했다.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추진하던 김일성 주석이 회담을 앞두고 그해 7월 8일 갑작스럽게 서거한 후 북한붕괴론은 김정일 건강이상설과 사망설이 발생할 때나 김정일 사망이후에도 주기적으로 되풀이 되었다. 특히 보수정권이 들어섰을 때 북한붕괴론은 증폭되었다. 하지만 보수정권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북한은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20년 이상 유지되고 있다. 이쯤되면 북한붕괴론은 허구에 가까운 것이라고 봐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사회에 북한붕괴론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고 있는 층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기업가들의 인식전환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사용자 단체인  대한상의의 박용만 회장은 지난 3일 출입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상의에서는 북한 급변 시나리오를 준비해왔는데, 북한의 시장경제 이행이 시작됐고 지방도시는 전부 다 시장경제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먼저 의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그는 “북한의 체제 불안을 전제로 한 기존의 시나리오 대신에 남북한 간 경제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미 대한상의에 앞서 한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지난해 7월 남북 모두에 도움이 되어야 하고 북한이 주도하는 경제개발 등 남북경제교류의 신 5대 원칙과 7대 전략과제를 제시해 북을 상생의 동반자로 대하려는 인식전환을 발표한 바 있다.

<한국일보> 2016년 1월 4일자 19면(경제)
<한국일보> 2016년 1월 4일자 19면(경제)

사실 이는 때늦은 일이다. 이미 북한이 기회의 땅이라는 것은 전 세계 경제인들에게는 상식적인 인식이다. 세계적 투자자인 로저홀딩스의 짐 로저스 회장은 "할 수만 있다면 모든 돈을 북한에 투자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심지어 “북한이 1980년대 중국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보인다”고 했다. 대북사업가인 호주코스트그룹 천용수 회장도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한인경제대회에서 “북한은 우리에게 최고의 경제 파트너”라며 “남한은 지금 GDP 3만 달러를 앞에 두고 정체된 느낌인데, 이를 해결할 답은 북한. 가장 좋은 파트너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왜 움직이지 않는나“며 중국이 북한에서 무수히 많은 자원과 노동력 등을 빼내가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헬조선을 벗어나는 길, 남북의 교류협력에 있다

북한은 신년사에서 제 7차 당대회를 앞두고 “강성국가 건설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자!”는 핵심구호로 '경제 강국 건설'을 최대목표로 내걸었다. 경제강국 건설을 위한 환경조성에는 조중관계의 발전은 물론이고 남북관계의 진전도 필요하다. 인민경제생활을 획기적으로 도약시키기 위해서는 평화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함이 기본임은 물론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금강산 관광의 재개와 개성공단의 조성이 정상화되어 경제적 도움을 얻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북은 이를 위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밝혔다. 물론 조국통일 3대원칙과 6.15공동선언, 10·4선언을 존중하고 성실히 이행해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역으로 기존 합의들에 대한 이행의지를 보인다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에 얼마든지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남측 당국의 의지이다. 우리는 과연 남북관계 개선과 북과의 교류, 협력의 필요성이 없는가? 어쩌면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은 북한보다 남한에게 더 있을지도 모른다. 경제불황의 장기화를 극복할 새로운 경제동력의 창출과 청년들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기회가 북을 통해 대륙으로 가는 길에 있다. 어쩌면 남북관계 개선과 북과의 교류와 협력이 지금의 우리사회의 절망적 표현인 ‘헬조선’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겨레> 2016년 1월 7일자 1면
<한겨레> 2016년 1월 7일자 1면

6일 오전 북한은 전격적으로 4차 핵실험(수소탄 시험)을 감행했다. 이에 대해 UN과 미국, 한국정부는 강력한 추가제재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익숙한 대응이다. 하지만 이러한 익숙한 대응으로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이 북한의 핵능력 강화 과정에서 확인되고 있다. 대화와 협상이 이루어질 때는 북한 핵은 동결되었고 제재와 봉쇄가 이루어질 때는 북한 핵능력은 강화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즉자적 대응으로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고 동북아에 냉전적 대결구도를 재현시켜낼 것인가? 아니면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방안을 주도하여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 안보공동체의 길을 개척해 나갈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북과 대결할 것인가 아니면 협력할 것인가의 선택에 있는 것이다.






[김두현 칼럼]
김두현 /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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