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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당신께 드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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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기획 - 성매매 없는 사회 만들기 1>
차정옥(동화작가)...“당신이 바라는 평등한 세상이 남성들만의 평등은 아닐 터이지요?”
“오늘도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부른다면
...내일은 내가 그 자리에 있겠


잘 지내고 계십니까?
겨울입니다. 안도현 시인의 시, 기억하고 계신가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마음으로부터 울컥 솟아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연탄재. 가난한 삶의 상징이 되어버린 존재, 환멸과 멸시의 대상, 폭력 속에 으깨어지는 운명. 그러나 그러한 연탄을 발로 차버릴 자격이 나에게 있는가, 돌아봅니다. 자신의 몸을 태워서 방을 데우고, 방을 데워서 누군가의 언 몸을 녹히는 것이 연탄의 삶이었단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그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찰 수 없을 것입니다.

시인은 거리를 나뒹구는 연탄의 일생을 공감하면서 이 시를 썼을 터이고, 우리는 그 시인의 마음에 공감하며 감동하였을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까닭들에 대해 지구상 인간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답이 나와 있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공감의 능력’을 꼽고 싶습니다.

자기가 아닌 삶에 대해 인정하고 지지하는 능력, 그것이 공감이라면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얻고자 노력하는 것이 바로 공감의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였을 적부터 공감의 능력을 배워왔습니다. 친구의 것을 뺏거나 해꼬지를 하고 돌아올라치면 부모님은 제게 ‘니가 그 친구의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봐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렇게 공감을 가르치고 있겠지요?

제가 사랑하는 당신 역시 그런 공감의 능력이 뛰어난 분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앞이 보이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에 공감하고, 자식처럼 가꾼 쌀을 불태워야 했던 농민들의 울분에 공감하고, 버스를 타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했던 장애인의 삶에 공감하며 진보적으로 양심껏 살아가려 하시는 당신. 저는 그런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토록 타인의 삶에 아프도록 절절하게 공감 하는 당신이 유독 공감하지 못하는 상대가 있습니다.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고 당신과 성매매 여성의 삶에 대해 무수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당신과 마치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늘 받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당신과 저를 이토록 다르게 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혹시 당신은 그들을 연민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나 성매매 여성들은 연민의 대상이 아닙니다. 동정과 연민은 상대보다 내가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저나 당신이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낄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어떤 이들은 ‘그들은 우리의 자매요, 이웃’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이 ‘자매요, 이웃’이기 전에 바로 ‘저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추장사를 하면서 육남매를 키우신 어머니의 희생이 없었다면 또래 친구들처럼 열서넛부터 공장에 다녀야 했을 나, 큰언니의 헌신이 없었다면 대학 공부는 꿈도 꾸지 못했을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고 싶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벌고 싶었던 나, 그들은 바로 마땅히 내가 살고 있을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더 똑똑해서 그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압니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의 삶을 동정이 아닌, 절대적 공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성을 팔면서 만나야 하는 그 모멸과, 폭력과, 공포는 바로 나의 것이 될 수 있었던 것들입니다.
아니, 이미 여성이라면 누구나 어떤 삶을 살든, 또 다른 억압을 만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공감 속에서 저는 성매매 문제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고민의 결과, 성매매를 반대하고 그들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당신.
당신은 가끔 성매매를 반대하는 행위가 도덕적으로 우월한 어떤 행동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도덕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노동운동을 도덕의 문제로 이야기합니까? 누가 장애인의 싸움을 도덕의 문제로 이야기합니까? 그것은 생존의 문제이고 인권의 문제입니다. 성매매 여성들이 처한 현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노동자이신 당신.
당신이 바라는 노동해방이 설마 자본가들이 당신을 불쌍히 여겨서 몇 푼 더 던져주고 당신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더 많은 착취를 해가는 것은 아닐 터이지요?

진보적 지식인인 당신.
당신이 바라는 평등한 세상이 설마 남성들만의 평등은 아닐 터이지요?

사랑하는 당신.
성매매의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남성- 당신에게, 가슴을 열고 동시대를 살고 있는 가난한 여성, 그들의 삶, 저의 삶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 그들의 삶에 공감해 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법은 세상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법은 당신을 도울 뿐입니다.

오늘도 당신이 노래방에서 도우미 여성을 부르고 있다면, 오늘도 당신이 접대를 핑계 삼아 여성의 성을 사고 있다면, 그 자리에 내일은 제가, 모레는 당신의 딸이, 그리고 글피에는 당신의 아내가, 그글피에는 당신의 어머니가 앉아 있겠지요.
그래도 되나요? 묻고 싶습니다.

차정옥(동화작가)

* 1971년 대구에서 태어난 차정옥 님은, [민주노동당] 대구시당 초대 여성위원장과 [대구 여성의 전화] 성교육 강사로 활동했으며, 지난 200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동화)로 등단한 뒤 지역에서 동화작가의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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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 성매매 없는 사회 만들기>는,
[성매매 없는 사회 만들기 대구시민연대(34개 단체)]와 [평화뉴스]가 함께 마련해
2004년 12월 23일 첫 글을 시작으로 오는 2005년 2월 25일까지 모두 10차례 이어집니다.
우리 사회의 올바른 성문화와 인권을 위한 이 기획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글 싣는 순서 -
차정옥(12.23)
강세영(12.30) 안이정선(1.6). 김희진(1.13). 김동옥(1.20).
박정희(1.27). 김양희(2.4). 영숙(2.11). 윤종화(2.18). 이두옥(2.25)

대구경북 인터넷신문 PN<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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