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그림자 '활동보조' 12년, 밥값·교통비 0원..."막막"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7.06.2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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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수당 0원으로 최저임금보다 사실상 낮은 임금, 노동시간 쪼개기에 휴게시간도 강제
대구경북 활동보조 노동자만 6천여명...노조준비위 "처우개선비 지급·지자체 직고용" 촉구


이옥춘씨가 노동실태를 대구노동청 앞에서 말하고 있다(2017.6.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옥춘씨가 노동실태를 대구노동청 앞에서 말하고 있다(2017.6.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제 이름은 이옥춘, 1963년생입니다. 신암동 살구요. 장애인 활동보조로 12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21일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앞. 이옥춘(54)씨가 꼬깃꼬깃 접은 A4용지를 꺼내 자신의 소개를 시작했다. 40대에 첫 발을 들인 돌봄노동자의 길. 10여년만에 지역에 처음 생긴 활동보조 노동조합 준비위에 가입해 대중 앞에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온화한 성품과 조용한 말투, 수줍음 많은 중년 여성노동자는 장애인 곁의 그림자노동 '활동보조'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알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이씨는 대구시와 계약을 맺은 한 중개기관 장애인기관 소속 노동자로 각각 반야월과 성서에 사는 40~50대 뇌병변1급 여성장애인 2명(이용자)을 맡아 주5일 돌본다. 월·수요일은 오전 8시~저녁 10시까지, 화·목요일은 오전 10시~저녁 9시까지, 일요일은 아침 9시~저녁 10시까지 일한다.

식사, 목욕, 이동, 청소, 옷입기를 포함해 생각치도 못한 잡무 등 장애인의 모든 활동을 보조한다. 임금은 정부가 올해 활동지원 수가로 책정한 시급 9,240원 중 중개기관이 수수료 25%(2,310원)를 떼고 75%(6,930원)를 시급으로 받는다. 올해 최저임금 6,470원에 비하면 시간당 460원이 많은 셈이다.

얼핏 보면 그렇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활동보조 임금체계에는 부당한 곳 투성이다. 밥값, 교통비, 명절상여금, 휴가비 등 각종 처우개선비는 제도 시행 12년 동안 0원이고, 30분 단위로 급여를 책정하는 점오계약에 분단위 근무시간 산정,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기 위한 1시간당 10분 무급 휴게시간 확대, 주 60시간에 맞추기 위한 노동시간 강제 쪼개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구 장애인 활동보조 노동자 이옥춘씨(2017.6.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장애인 활동보조 노동자 이옥춘씨(2017.6.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기자회견 전 얘기를 나누는 활동보조인들과 한 장애인 이용자(2017.6.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기자회견 전 얘기를 나누는 활동보조인들과 한 장애인 이용자(2017.6.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장애인 '이용자'를 보조하는 돌보는 내내 김밥 한 줄, 컵라면 하나도 노동자 자신의 돈으로 사먹어야 하고 식당에 들어가도 밥값은 본인이 지불해야 한다. 택시비, 버스비도 이용자를 따라다니는 시간 동안 자신의 몫이다. 밥을 만들어 장애인의 식사를 돕지만 정작 자신의 끼니는 챙기지 못할 때도 많다. 

고용불안정성도 상당히 심각하다. 50대 여성 이모씨는 2013년부터 대구에서 장애인 활동보조로 일하다 지난 5월 갑자기 해고됐다. 이용자가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용자 요청시 즉각 해고 되는 것이 활동보조 관례처럼 굳어졌다. 이씨는 4년 넘게 일하고도 퇴직금 한 푼 못 받았다.
 
이옥춘씨는 "우리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식사는 마음대로 못하고 부축을 하다보니 족저근막염이 생겨 이 순간도 고통스럽다. 그런데도 우리는 최저임금도 안되는 쥐꼬리 월급을 받으며 힘들게 일한다. 갈수록 나아지는 건 없고 막막하다. 조금씩 바뀌었으면 좋겠다. 교통비, 식대라도 받고 싶다"고 호소했다.

노조 가입을 홍보하는 티셔츠를 입은 노동자들(2017.6.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노조 가입을 홍보하는 티셔츠를 입은 노동자들(2017.6.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경북 장애인 활동보조 분회 준비위원회'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돌봄지부'는 21일 대구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사각지대에 놓인 대구경북 6,000여명 활동보조 처우개선"을 촉구했다. 대경활동보조준비위는 지난해 8월 공공운수노조 돌봄지부에 가입하고 올해 10월 정식 발족을 목표로 활동 중이다. 대구경북 활동보조 노동자 100여명이 준비위원으로 가입했다.

이들 단체는 "사회서비스 노동자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나쁜 일자리가 장애인 활동보조 노동자"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부당한 현실을 우리 스스로 바꾸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활동지원 수가 인상 ▷최저임금+주휴수당 인건비 최소한 7,764원 지급 ▷중개기관의 노동시간 줄이기 즉각 중단 ▷미지급 임금 지불 ▷처우개선비 지급 ▷지자체 직고용 전환 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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