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마당을 아시나요?"

평화뉴스
  • 입력 2005.01.06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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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없는 사회 만들기 3> 안이정선(대구여성회)
“자갈마당,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자갈 깔아"
..."성노예를 강요당한 여성들의 삶...”
...“성매매방지법, 제대로 정착시켜야"
...옆 사람을 변


대구에서 유명한, 전국에서 알아주는 것으로 무엇이 있을까?
옛날에는 사과의 고장이라 미인이 많이 난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이제는 사과밭 모조리 없어진지가 오래이고, 시에선 섬유도시대구를 내세우지만 밖에서 아직 그리 알아주는 것 같지가 않다. 굳이 꼽자면 한약재향이 늘 그윽한 약령시장 골목과 팔공산의 갓바위 정도가 될까 모르겠다.그런데 대구사람들이 내세워 알리지 않아도 사실은 유명한 곳이 있다. 대구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자갈마당이 바로 그것이다.

서울 청량리의 오팔팔이나 부산의 완월동과 함께 소위 말하는 집창촌으로 유명한 곳이 바로 대구의 자갈마당이다.
그 이름에 대한 유래도 알고 보면 참 서글프다. 자갈을 밟으면 소리가 나니까 여자들이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포주가 집 주위에 자갈을 깔아놨었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쇠창살에 갇힌 채 성노예 생활을 해야 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대구의 자갈마당? 아, 그런 데가 있지. 뭐하는 데냐고? 그렇고 그런 데지. 왜 있잖아 남자들이 가끔 자러 가는 데.’ 상식있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없이 누구나 그 정도는 알은 체를 한다. 남자들끼리라면 허풍을 좀 섞은 무용담이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방 전 일제 시대 때부터 유곽이 있었다는 그곳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또 제대로 알고 있는 대구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그곳은 대낮에는 죽어 있는 조용한 곳, 사방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사람들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볼일(?)있는 남자 손님들만 그 골목을 드나들 뿐 여자들은 다가가기조차 힘든 곳이기 때문이다.

군산의 성매매업소 밀집지역에서 화재가 나면서 젊은 여성들이 갇힌 채 숨지는 끔직한 사고가 잇따랐고, 그것을 계기로 성매매의 근절을 위한 새로운 법의 제정운동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대구여성회가 반 년에 걸쳐 실시한 대구지역 성매매업소의 실태조사에 의하면, 2002년 6월 현재 대구광역시에 등록되어 있는 식품위생업소는 7개구 1개군에 모두4300여 곳이었다. (유흥주점 1247개소, 단란주점 285개소, 다방 2755개소, 안마시술소 41개소 그리고 특수업태부 79개소) 특수업태부란 술이나 음식을 취급하지 않고 그야말로 아가씨의 몸만 파는 자갈마당의 업소들을 가리키는 행정상의 용어이다.

또한 식품위생법시행령에 의하면 이들은 6개월에 1회(다방의 여자종업원) 또는 3개월(안마시술소의 여자종업원)이나 1개월(유흥접객원), 1주일(특수업태부의 여자종업원)에 1회씩 성병검사를 받도록 되어있다. 당시 각 구별 보건소에 의뢰하여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매주 성병을 검진받거나 매달 혹은 6개월에 1회씩 등 정기적으로 성병검사를 받는 여성의 수가 약13000여명으로 추정되었다.

비온 뒤의 죽순처럼 늘어나던 유흥업소들과 모텔들을 볼 때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은 무수한 업소들과 그 종사자들은 또 과연 얼마나 될 것이며, 각 구청에서 담당하면서 시에서 통괄하고 있는 이러한 성병검사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군위안소를 만들고 운영하였던 일본군대가 식민지와 점령지에서 강제연행해 간 여성들을 위안부로 관리하면서 1주일에 한 번씩 군의관에게 성병검사를 받도록 하였던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성병이 발견된 여성은 며칠씩 쉬도록 하면서 치료를 받게 하였는데, 병이 몇 번 재발하면 어느 날부턴가는 그 여성이 보이지 않았다는 증언도 있다. 일본 군대가 그처럼 철저히 성병을 관리하고자 하였던 게 과연 그 여성들을 위해서였을까?

나는 이 질문을 21세기가 된 오늘날 지자체와 대한민국 정부에 다시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40년간 사문화된 윤락행위등방지법과 함께 ‘국가관리 차원의 성매매업 장려’가 묵인된 채 사실상 지속되어 왔던 셈이 아닌가! 기생관광을 외화벌이라고 미화하며 떠들고 장려하였던 삼십년 전의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그동안 한 발자욱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두워진 다음 자갈마당이나 유흥주점 집결지에 누구나 한번 나가보기 바란다.
정육점의 분홍불빛 아래 거의 다 벗고 짙은 화장을 하고 앉아서 남성들의 손길에, 자본주의의 돈에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여성들을 한번 보기 바란다. 이들이 구매자와 업주 그리고 관리인의 육체적, 정신적인 폭력에 얼마나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지도 한번 관심가져 보기 바란다. TV의 뉴스에서 보던 태국의 홍등가가 바로 내 이웃에, 내 곁에 있는데, 나와는 상관없으니까 나는 나의 웰빙만을 추구하며 살면 되는 것일까?

지진과 해일의 재난이 전지구 차원의 자연재앙이듯이,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으로 성매매의 늪에 자신도 모르게 한 발을 내디딜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을 사회의 필요악이라고 외면한 채, 법과 제도와 GNP의 수치만으로, 내 가족의 안녕만으로 잘 사는 복지국가를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성매매피해자를 보호하고 성매매알선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성매매방지법>의 제정은 더 이상 방치할 수없는 상태까지 간 ‘성매매천국 대한민국’을 위한 절실한 자구책이었다. 이제 이 법을 우리사회에 제대로 정착시키는 일만이 남았다. 또한 그것은 법의 제정보다도 더 중요하고 힘든 일임을 잘 알고 있다. 알고 뜻있는 사람이 나서야 한다.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한다. 옆의 사람을 변화시키면서 함께 나서야 한다.

안이정선(대구여성회 회장)
*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난 안이정선 회장은, 지난 ’91년부터 ’94년에 이어 지난 2002년부터 지금까지 [대구여성회] 회장을 맡아 지역 여성운동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또한,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공동대표와 [대구경북분권혁신협의회] 위원,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운영위원으로 많은 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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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 성매매 없는 사회 만들기>는,
[성매매 없는 사회 만들기 대구시민연대(34개 단체)]와 [평화뉴스]가 함께 마련해
2004년 12월 23일 첫 글을 시작으로 오는 2005년 2월 25일까지 모두 10차례 이어집니다.
우리 사회의 올바른 성문화와 인권을 위한 이 기획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글 싣는 순서 -
차정옥(12.23), 강세영(12.30)
안이정선(1.6). 김희진(1.13). 김동옥(1.20).
박정희(1.27). 김양희(2.4). 영숙(2.11). 윤종화(2.18). 이두옥(2.25)

대구경북 인터넷신문 PN<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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