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보기

“자본주의에서 내 돈주고 내가 하는데 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매매 없는 사회만들기 5>
김동옥(미.시.모)...“나도 어쩔수 없는 남성?”
“성매매를 둘러싼 논리와 문제...여성단체를 넘어 시민사회에 공론화 되기를..”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현재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초창기 기억은 소중하다. 나 또한 시민단체 상근자로 활동하면서 처음 시작할때의 고민과 기억들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학생운동의 티를 벗지 못한 시기, 시민단체 활동의 새내기 시절 충격적으로 겪었던 우리사회의 성매매와 관련된 생각들은 나에게 여전히 의미있게 다가오고 있다.

80년대와는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90년대 초반, 여전히 최루탄이 난무하고 수업거부와 점거농성 등의 플랜카드를 쉽게 볼 수 있던 시기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렇게 군에갔고 1999년 가을 제대를 하면서 현재 있는 ‘미군기지되찾기 대구시민모임’의 상근활동을 시작했다.
상근 활동을 하면서 나는 지역,인권,환경,여성,통일,평화 등 대학생 때 가졌던 이념과는 사뭇 다른 여러 가치들을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2000년 군산 성매매종사자들의 화재 참사사건을 접했다.
이 사건은 내게 결코 작지 않은 운동적 충격으로 와 닿았다. 그러면서 충격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여전히 내가 하고자 하는 시민운동의 어려운 숙제로 남겨지고 있다.

시민단체 상근활동 초창기인 2000년 군산시 대명동 속칭 ‘쉬파리골목’ 무허가 건물 2층 성매매업소에서 발생한 화재참사!. ‘사회적 약자들인 성매매관련 종사자들이 무참하게 죽어간 사회적 문제 앞에서 시민단체는 왜 이렇게 밖에 대응하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으로 혼자 속앓이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데...

사건이후 나는 내가 속한 단체는 물론 많은 시민단체들이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모순이 불러일으킨 극단적인 참사에 당연히 대응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분명하게 틀렸다. 불과 얼마전 415총선을 매개로 전개되었던 총선연대 활동과 비교했을때 시민단체들의 대응은 너무나 극단적인 대조를 보인 것이다. 왜 인지는 지금까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일까? 지난 연말 결성된 ‘성매매없는 사회만들기 대구시민연대’의 활동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여성단체와 여성상근자들만의 활동이라는 사실을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가 없다. 너무나 많은 사회적 이슈들에 일일이 대응할 수 없는 노릇이라는 상근자들의 일반적인 고충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활동가들의 적극성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기는 힘들다. 총선연대와 탄핵반대의 가치 앞에 사회적 약자들의 죽음은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인가? 이런 고민밖에 못하는 현실이라니.......

우리사회에 너무나 만연해진 성매매의 현실에서 오는 일종의 무력감 때문이라면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의 탄압은 일반적이지 않아서 투쟁했던가? 성매매 종사자들이 ‘팔자’라면 외국인 노동자들도 ‘그들의 팔자’가 되어야 하는가? 소위 고급유흥가에서 돈도벌고 자신도 즐기는(?) 일부 계층 여성들의 이야기라면 억압적인 환경에서 삶을 유린당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덮여져야 하는것인가? 이런 스스로의 우문우답은 더욱 깊은 허전함과 고민만을 남긴다.

주변의 여러 극단적인 주의, 주장이 오가는 대목에서 한가지 개인적 경험이 생각난다.
군산 참사를 두고 내가 제기한 생각이 주변 사람들에게 ‘공창제 지지자’로 규정되었던 적이 있는데, 내 생각은 이랬던 것 같다.
“성매매 종사자들이 죽었다. 이들은 화재가 난 사실을 알고도 탈출할 수 없었다. 그들이 쇠창살이 박힌 방에 갇혀서 생활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21세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인간이 인간을 구속하는 구시대적인 노예와 같은 삶의 잔재가 남아 있을 수 있느냐? 이것은 말 그대로 너무나 구시대적인 사회모순이다. 절대 간과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당장 성매매를 근절하거나 뿌리뽑지 못한다손 치더라도 최소한 이런 비인간적이고 노예같은 삶을 강요하는 법이면 법을, 제도면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생각은 곧바로 ‘공창제’ 주장으로 정리되었다. 난 사실 그때 ‘공창제’라는 개념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결과적으로 비인간적인 노예와 같은 삶을 방치한 제도와 사회가 아니라 성매매 자체가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본다면 내 생각은 ‘공창제’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당시 학생운동의 관성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성매매라는 구체적인 사회현실을 도외시했던 전제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

논리상으로도 마찬가지다. 비인권적이지 않으면, 노예적인 삶의 형식만 아니라면 성매매를 허용해도 된다는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백번 논리의 오류는 인정하더라도 여전히 남는 생각은 군산 대명동과 같은 억울한 죽음에 분명히 반대하는 생각을 ‘공창제’ 발언으로 ‘성매매를 인정하는 것’으로 귀결시키고, ‘너도 어쩔수 없는 남성’이라는 일방적 폭력성에 기반한 논의 전개과정에서 좌절했던 기억은 지금까지도 끔찍할 따름이다.

논리의 폭력성이라는 말이 나온김에 덧붙여 보면, 성매매 문제와 관련해서 너무나 극단적인 주장과 논리만이 무성했던 경험이 많다. 대화 중 나도 어쩔수 없는 남성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이때부턴 도저히 이성적인 논의와 토론은 물건너 간다. 그렇게 되면 가해자인 남성과 일방적 피해자인 여성의 문제로 대립각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나만의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성매매 문제를 가지고 이견을 가진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을때 동의점을 쉽게 찾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특히 상대가 여성의 경우 ‘외면’ 아니면 ‘너 잘났다’와 남성의 경우 ‘자본주의에서 내 돈주고 내가 하는데 왜’ 앞에서는 더 이상 논의가 진전되기 힘들었다. 내 능력의 부족이겠지......

너무나 많은 논란과 이견,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입장의 차이가 비단 성매매 문제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사회 제반영역에서 모순이 드러나면 날수록 논란과 대립은 더욱 첨예해 질 것이다. 케케묵은 원칙이지만, 이럴 땐 배타적이지 않으면서 상호존중을 통한 합리적 차이의 검증을 바탕으로 상호이해를 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제 성매매 문제를 여성단체의 주도적인 흐름에서 뭇 시민단체들의 몫으로 만들어 내는 것을 우리의 과제로 상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것이 우리 시민사회를 성숙하게 하는 우리들 스스로의 중요한 과제로 손색이 없을 듯 한데......

대한민국 남성들의 접대문화에 대해 군대문화, 총각딱지떼기 등을 통해 분석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남성들을 동일한 범죄영역에 끌어들임으로써 서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받았다는 군사독재시기의 교묘한 정치논리를 비판했다. 그럼으로써 국민들을 범죄에 대해서조차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주장이었던 것 같다.

남성.여성의 문제, 일방적 가해자.피해자의 대립과 같은 주장이 난무한 곳에 풍부한 고민의 잣대들을 제시하는 노력이 중요할 것 같다. 그동안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한 소중한 투쟁의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을 토대로 성매매 문제가 여성-인권-자본-권력의 종합적 측면에서 다루어지면서 어두운 그늘을 벗겨낼 수 있도록 모든 시민사회단체의 화두로 상정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동옥(<미군기지 되찾기 대구시민모임> 사무차장)

1973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동옥씨는, 군대에서 제대한 1999년부터 ‘미군기지 되찾기 대구시민모임’에서 상근 활동하고 있습니다.



-----------------------------------

*<공동기획 - 성매매 없는 사회 만들기>는,
[성매매 없는 사회 만들기 대구시민연대(34개 단체)]와 [평화뉴스]가 함께 마련해
2004년 12월 23일 첫 글을 시작으로 오는 2005년 2월 25일까지 모두 10차례 이어집니다.
우리 사회의 올바른 성문화와 인권을 위한 이 기획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글 싣는 순서 -
차정옥(12.23), 강세영(12.30)
안이정선(1.6). 김희진(1.13). 김동옥(1.20).
박정희(1.27). 김양희(2.4). 영숙(2.11). 윤종화(2.18). 이두옥(2.25)

대구경북 인터넷신문 PN<평화뉴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치를 생각하는 대안언론, 평화뉴스 후원인이 되어 주세요. <후원 안내>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