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층에 소금을 뿌려라”

평화뉴스
  • 입력 2005.02.2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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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의 고백 40.끝>
유영철(영남일보 편집국장)...“기자 고백에 대한 소회”
“어떤 기자가 될 것인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 "스스로 비전을 만들어 가라”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져야...역


얼마 전 내가 졸업한 대학의 학보사 출신 선후배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다. 전국에 흩어져 살면서 대부분 언론 외의 직종에 종사하는 동문들이었지만, 학보사 출신이라는 공통분모로 모인 만큼 화제는 그때 그 시절 ‘학보사 기자’였다. (지금은 ㅇㅇ대신문으로 바뀌었지만, 그때는 ㅇㅇ대학보 였다. 5.16이후 대학 신문이 무슨 신문이냐, 학보이지, 학보로 바꿔! 였다는 역사도 그날 처음 듣고 알았다. 서울대만 빼고.)
당시 선후배간의 기강이 얼마나 칼 같았던지, 한두살 차이인 70가까운 분들이 털어놓는 언어 속에 아직도 그대로 녹아 있었다.
“ㅇㅇ선배가 편집국장일때, 내가 기자하면서 겪은...”, “내가 편집국장할 때 ㅇㅇ씨가 수습기자로 들어 왔어...”로 시작하는 회고 속에 취재 명령(지시가 아닌)의 서릿발이 어려 있었다.
독하게 시켰던 수습기자 교육에 대한 에피소드 등등을 들으면서 30여년전 내가 학보기자할때와 별반 다르지 않는 기억도 떠오르기도 했다. (아! 기자교육도 독재정권하에서는 독재로, 민주정부아래서는 민주주의로 하는구나!)

그날 한 대선배의 취재담은 좌중을 전율하게 한 압권이었다.
61년 5.16이후 군부가 총장실에 순시한다는 정보를 접한 편집국장은 수습 막 떨어진 기자에게 취재지시를 내렸다. 대선배인 그 기자는 청소부 복장을 하고 밀대와 물통을 들고 미리 총장실에 들어갔다. 넓은 총장실 한쪽 구석에서 밀대를 미는 척 했다. 군부와 함께 총장이 들어왔다. 그 청소부는 총장이 군부에 보고하는 내용을 몰래 듣고 있었다. 보고내용중 핵심인 교수들의 성향까지, 짤라야할 교수 면면까지 다 듣고는 끝나기 전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기사를 작성해 넘겼다. 나중에 총장도 깜짝 놀랬다.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기자란 참 매력있는 직업이다.”
종사하는 사람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그렇게 여기는 것 같다. 우리는 잘 못 느끼지만 남들은 해보고 싶은 직업으로 꼽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많고, 기자로 인해 피해를 봤다고 여기는 사람은 치를 떨지도 모르지만 여기서는 긍정적인 쪽만 예를 든 것이다.) 우리들도 처음에는 기자가 매력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기자가 안 됐으면 계속 그렇게 선망하고 있을지 모르나, 막상 해보니깐 그게 아니구나 하는 실망을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다른 직업도 그럴 것이다. 환멸이 없는 직업은 없다. 본연의 업무는 모두 고귀하나 구성원 또는 조직에서 오는 비인간적 비도덕적 요소 때문에 그럴 것이다.

평화뉴스에 올려진 39편의 기자고백은 모두 부정적인 측면만 다루었다. (현직기자가) 부정적으로 쓸려고 애쓴 흔적도 역력하다. ‘고백’ 자체가 잘못된 점을 이실직고하고 죄의 사함을 받으라는 의미가 강함 만큼, 부정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 (바쁜 가운데) ‘기자고백’ 청탁을 받고는 편집자의 의도에 충실하게 따르려고 애쓴 것 같기도 하다. 어쩔수 없이. 어느 누구가 자신과 관련된 잘못을 공공연한 마당에 풀어 놓으랴. 그런 면에서 평화뉴스의 편집자는 어떻든 이를 이끌어냈으니 대단하다 할수 있다.

고백 중에는 자기비하나 자조도 많다. 조직의 하수인이라거나,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라거나, 회사 생존논리에 순응하는 월급쟁이라는 등이 그것이다. 또한 악바리 정신이 없다거나, 연차가 늘어나면서 적당주의 편의주의 타성에 젖게 된다거나, 아무렇게나 휘갈기게 된다는 등의 자기성찰도 많다.

낮은 급여수준 때문에 당장 먹고사는 일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는 생활고 호소가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적었고, 촌지에 대한 언급도 스님으로부터 받은 책갈피속의 촌지외에 없었다. 촌지를 안받는 가운데 안주는 풍토도 조성된 것 같다.

기자고백 중 전준호기자의 ‘경찰사칭‘이 눈길을 끈다.
1998년 10월, 대구시장 선거운동을 도운, ’깡통천사‘로 불리던 모씨가 시청 화장실에서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선거캠프와 깡통천사 간에 오간 녹음테이프 내용 공개가 차일피일 미뤄지자, 심층취재에 나선 기자가 경찰을 사칭, 녹취사무소에서 녹취내용을 다 듣고 기사화했다. 그뒤 경찰사칭이 문제가 돼 난리가 난 적이 있다는 내용이다. 전기자의 한 건 ’욕심‘ 은 기자근성이 메마른 기자들이 배울만한 일이다.

이번 기자고백에 불려나온 착한 기자들은 성찰과 고백을 남들 앞에 하고는, 되풀이 되지않기를 바라는 글귀로 서둘러 끝맺었다. 나도 고백을 하자면 위의 후배기자들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다. 27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므로. 하지만 기자고백의 마지막 피고로 소환된 게 아니라, 관전평을 주문 받은 참관인 자격으로 불려나왔으므로 고백은 하지 않겠다.

기자로서 사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광고 판매 등등의 기사외적인 사안에 협조(?)하다 보면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됐는 지 한심한 생각이 드는 수도 있다. 혹 조직의 하수인으로 전락한게 아닌가하는 느낌도 들 때가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적당하게 했을까. 때로는 허탈감에 빠지고 실망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마찬가지이고 그만두고 싶어도 그것도 힘들고... 사표 썼다가 찢다가 하다보면 어느 날 출입처에서 나오는 아이템이나 긁적거리는 모습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또 돈 쓸 데는 어찌 그리 많은지. 월급으로는 생활이 어렵고 부업할 만한 것도 잘 없고, 갈등은 계속 되고. (사주는)월급은 쥐꼬리 만큼 주면서 미안하게 생각하기는커녕 되레 생색내면서 닦달하기만 하고...취재할 거리는 있지만 택시비 또는 기름값도 부담되고 이러니 대충대충 전화로 나날을 떼우게 되고... 그러면서 만나는 이들은 지도층 기득권층 부유층 등등이고, 그런 속에 빠져서 왔다갔다 하다보면 자신이 기자인지 아닌지 자신도 모를 정도로 처량하게 여겨지기도 할 것이다.

“지사형 지식인형 샐러리맨형, 혹은 월급쟁인와 언관(言官)...어떤 기자가 될 것인가?”
“정치권력과 유착돼 있다면, 지도층과 밀착돼 있다면 누가 그런 언론을, 그런 기자가 쓴 기사를 신뢰하겠는가”


그러나 기자고백의 주인공들도 늘 고백과 같은 상황속에 던져진 것은 아닐 것이다.
부름받은 선량한 기자들이기에 어렵더라도 슬기롭게 헤쳐나갈 능력도 갖추었으리라 짐작한다. 어느 고백기자의 언급 대로 지사형 지식인형 샐러리맨형 등 3가지 기자 유형 가운데 어느 유형의 기자를 따르느냐는 자기자신의 자유의사에 달려있다. 또 어느 고백기자의 구분처럼 언론인 언론종사자 언론사직원 등의 유형에서도 선택권은 자신에게 속해있다. 자신이 월급쟁이라고 생각하면 월급쟁이가 되는 것이다. 다른 차원의 언관(言官)이 되고자 한다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나는 기자들이 비전을 갖고 살기를 바란다.
회사가 비전이 없다거나, 회사가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자기외적인 환경을 탓하지 말라. 스스로 비전을 만들어 가라. 비전 없다거나 제시하지 않는다면서도 그속에서 딩구는 것은 자기인생마저 내팽개치는 꼴이다. 이왕 기자의 길로 접어들었으면 포기하지 말라. 대충대충도 살지 말라. 앞으로 기자 10년 20년 계획을 세워 실행해 나가면, 10년 20년 뒤에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어느 지역의 기자냐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서울의 중앙 일간지 기자만 훌륭한 기자는 아닐 것이다. 어느 신문 어느 방송의 기자냐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비록 처음 계획 단계에는 보잘것 없다고 여기는 지역에서, 메이저가 아닌 그렇고 그런 신문사(방송사)에서 시작했더라도 꿋꿋하게 기자의 정도를 걸어간다면, 실력을 갖춘다면, 어느 누구도 범접못할 성역도 구축할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과거 어느 때 누리지 못한 언론자유시대다.
일제때, 이승만정권때, 박정희정권때, 전두환정권때 그 때를 생각해보라. 기자다운 기자가 얼마든지 될 수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이냐. 기자협회 언론재단 문화재단 등의 기자 지원도 얼마나 많은 편인가.

자기성찰은 많이 할수록 도움이 된다.
적당주의 편의주의 등은 ‘내 탓’이다. 그러므로 바꾸면 된다. 자기비하는 이제 그만 할 때가 됐다. 조직에 구성원에 잘못이 있다면 고쳐나가야 된다. 수긍할수 없는 데스크의 주문(또는 그 이상 간부나 사주의 불합리한 지시 등)이 있다면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기자도 살고 언론사도 살수 있다. 우선 급해서 주문에 응하다보면 자학도 생긴다. 나태도 따라붙는다. 엉뚱한 길로 접어들기도 하는 것이다.

언론의 주요기능중 하나가 감시 견제다.
기자가 기자답지 못하고 제 역할과 기능을 하지 못하면 욕을 먹는다. 만일 검찰이 비리있는 자를 잡아들이지 않는다면 검찰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판사도 엄격하게 형량을 선고하지 않는다면 누가 존경하겠는가. 외과의사는 환자의 환부를 정확히 도려내야 이름이 빛난다.

언론이, 또는 기자도 그렇다. 어느 정치권력과 유착돼 있다면, 지도층과 밀착돼 있다면 누가 그런 언론을, 그런 기자가 쓴 기사를 신뢰하겠는가.

기자는 지도층에 소금을 뿌려라.
대상인물은 물론 사회가 썩는 것을 방지하는 일이다. 재수없다고 뿌리는 장사꾼의 마음이 아닌, 진정 부패 비리 방지와 건강한 사회를 위하는 마음으로 연민을 갖고 소금을 뿌려야 한다.

또한 기자들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기를 바란다.
국민학교때 중고때 교과서에서 배운 왜곡된 역사지식이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바탕이 그러하면 계속 재생산되는 왜곡과 조작마저도 사실로 착각하는 돌이킬수 없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기자가 매력있는 직업이 되기 위해서는 기자들이 가꾸어 나가야 한다.

유영철(영남일보 편집국장. yoo@yeo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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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지난 한해동안 <기자들의 고백>에 참여해 주신 기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평화뉴스] 창간 한달 뒤인 2004년 4월부터 매주 연재해 온 <기자들의 고백>은,
대구경북지역 신문.방송사와 중앙언론 등 20개 언론사 40명이 글을 썼으며,
영남일보 유영철 편집국장님의 글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현직 기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고백들이
언론계의 올바른 문화를 만드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 사회 많은 곳이 스스로의 고백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남을 탓하기는 쉽지만 스스로 반성하고 남 앞에 고백하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마음의 글을 써 주신 대구경북 40명의 기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기자님들의 이름이 독자들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랑을 보내주신 독자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 매일신문 조두진 / 2. 연합뉴스 김용민 / 3. TBC 양병운 / 4. 한겨레신문 박주희
5. 영남일보 김기홍 / 6. 내일신문 최세호 / 7. 경북일보 김정혜 / 8. 대구신문 최용식
9. 뉴시스 최재훈 / 10. 대구일보 노인호 / 11. CBS대구방송 권기수 / 12. 대구MBC 도건협
13. 한국일보 전준호 / 14. 경북일보 이기동 / 15. TBC 이혁동 / 16. YTN 박태근
17. 영남일보 백승운 / 18. 매일신문 이창환 / 19. 대구신문 최태욱 / 20. 영남일보 정혜진
21. 대구일보 황재경 / 22. 오마이뉴스 이승욱 / 23. 경북일보 류상현 / 24. 교육저널 강성태
25. 매일신문 한윤조 / 26. 대구MBC 심병철 / 27. TBC 이지원 / 28. 대구신문 윤정혜
29. 경북일보 김종득 / 30. 영남일보 이춘호 / 31. 매일신문 최정암 / 32. TBC 이종웅
33. 대구MBC 윤영균 / 34. 영남일보 이진상 / 35. 평화뉴스 배선희 / 36. 매일신문 김태완
37. 시민기자 허미옥(참언론대구시민연대) / 38.경향신문 백승목 / 39.한국경제신문 신경원
40. 영남일보 유영철 편집국장

[평화뉴스]는 <기자들의 고백> 코너를 그대로 남겨 늘 다시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오는 3월 첫 일요일(3.6)에는 <기자들의 고백 - 후기>를 통해 뒷얘기를 전할까 합니다.

앞으로 <기자들의 고백>에 이어 <교사들의 고백> 시리즈를 싣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만, 밖에서는 누구도 알기 어려운 학교와 교무실. 교실의 이야기.
3월 중순부터 싣는 현직 교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교육의 가치와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면 좋겠습니다.
교사들의 참여와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평화뉴스 http://www.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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