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신문은 도와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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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뉴스 10돌] 유영철 / "신문이 약자의 편에 서서 일해야 한다는 명제"


  신문(언론)이 '약자(서민)의 편에 서서 일해야 한다'는 명제는 누군가가 만든 신기루인지도 모른다. 신문사에 갓 입사한 수습기자에게 대대로 신문은 부유층 지배권력층의 편에 서서 일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뭔가 신심을 불러일으키는 보편적인 선전(프로파간다)이 필요했을 것이다. 대외적으로도 신문의 사명과 같은 그럴듯한 문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신문은 약자의 편에 서서 일해야 한다”는 신기루가 설정되고 그것은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더 잘 보이는 전시용 표어가 된 것 같다. 위약효과처럼 그 표어는 기자지망생에게는 정의를 추구하게 했고, 독자에게는 신문을 신뢰하게 했다.

  신문이 약자(서민)의 편에 서서 제작한다면 그 신문은 얼마 못가서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약자(서민)는 신문을 볼 시간도 없을 만큼 생업이 고단하며 구독에 쓸 재화도 없을 만큼 생활이 가난하다. 설령 약자의 편에서 제작하는 신문이 너무나 고마워서 약자가 즐겨 본다고 하더라도 약자가 즐겨 보는 이 신문에 누가 광고를 낼 것인가. 그래서 팔리는 신문이 되려면 누가 뭐라해도 구매 여력이 있는 강자를 위해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신문이 그렇게 잘 만들고 있지 않는가. 프로급 신문일수록 철저하게 수익을 던져주는 재벌 대기업 등 강자 위주로 제작하지 않는가. ‘피리 값을 지불한 고객이 곡조를 선택하듯’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는가. 때로는 올바른 기자가 쓴 기사를 삭제하고, 심려를 불편하게 한 데 대해 사주가 사과하고... 신문에게 일용할 양식을 선사하는 그들은 신이 돼버린 것 같다. 

  신문을 수익의 도구로 삼아 광고나 홍보 대가로 대기업이나 자치단체가 던져주는 부스러기를 챙겨먹는 방법은 의외로 쉬운지도 모른다. 치졸함을 감수하고 시키는 대로 하거나 알아서 행하면 된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겸해서 구미에 맞는 기사를 제조하면 때때로 경제권력은 물론 정치권력도 귀여워 해 줄 것이고 이를 발판으로 권력으로 진출하는 반대급부도 수반될 것이다. 신문이 신문이기를 포기하면 길은 이처럼 순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눔과 섬김을 기치로, 지역공동체를 살리고 나아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면서 10년 전에 창간한 한 신문은 도대체 ‘발전’이 없다. 이 신문은 아직도 조금도 윤택하지 않다. 배부른 양식장에서 광고주가 던져주는 먹이를 먹고 자라는 양식광어가 되지 않은 이 신문은 맛과 향은 뛰어나지만 배고픈 자연산 광어로 살고 있다. 방법을 몰라서도 아니다. 윤택함을 싫어해서도 아니다. 먼저 신문이기를 바랐을 뿐, 서민을 위하고 약자의 편에 서는 그런 신문을 제작하고 싶었을 뿐이다.

  정부는 그런 신문을 도와줄 만큼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사상의 다양성 차원에서도 그런 신문을 지원하는 여유가 필요하나 정부는 그런 신문을 도와주지 않는다. 아무도 그런 법을 만들지도 않는다. 자치단체도 그런 신문은 도와주지 않는다. 정부가 하는 일에, 자치단체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신문은 알고도 정치권력 경제권력 언론권력이 싫어하는 제작태도를 고수한다. 정부를 비판하고 자치단체를 비판하고 재벌기업을 비판하는 신문을 누가 반길 것인가. 그래서 가난하고 정직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후원으로 살아왔다.

  가만히 보면, 이 신문에는 다른 신문에서 만나지 못하는 기사가 많다. 예를 들어, 신문이 신문답지 못한 기사를 실었다가 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주의나 경고를 받은 심의내용은 거의 유일하게 이 신문에서 매월 볼 수 있다. 영리를 앞세운 기사, 정치권력을 두둔한 기사, 명예를 훼손한 기사, 출처를 밝히지 않고 표절한 기사,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않은 기사 등이 그것이다. 신문은 신문다워야 하기 때문에 신문답지 못한 부분을 뉴스소비자에게 알려줌으로써 신문에 대한 올바른 의식을 일깨우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신문은 그래도 지난한 신문의 사명을 안고 10주년이 된 오늘도 그렇게 가고 있다. 권력이란 권력은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더라도 그래도 간다. 잘못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환인지부기지(不患人之不己知) 환부지인야(患不知人也)라!(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염려하지 말라, 내가 남을 알아줄 안목이 없음을 염려하라.)

  신문이 '약자(서민)의 편에 서서 일해야 한다'는 명제를 실천하는 신문, 이 사회에 백신과 같은 신문이 없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유영철 칼럼 13]
유영철 / 언론인.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언론정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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