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어머니를 안았습니다”

평화뉴스
  • 입력 2005.09.16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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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대구 수성구 목욕탕 폭발사고...
“어린 나를 수만번도 더 안았을 우리 어머니...”

검은 연기와 붉은 화염이 타오르고 나는 미친 듯이 그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뭔가 다급히 소리치며 물을 뿜어대는 소방관과 폴리스라인 앞을 가로 막은 경찰들.

“이 안에 들어가시면 안됩니다. 안됩니다”
나를 붙잡는 그들의 팔을 세게 밀치며 무조건 앞으로 내달렸습니다.
“목욕탕 안에 너 어무이가 있다”는 아버지 전화 한통에 나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막상 사고 건물 앞에 섰을 때 나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소방관들조차 건물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고, 불은 하염없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떨렸고,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검은 연기 속으로 무작정 다가갔습니다.

누군가 “나가라”며 호통치는 것 같았지만 내게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사고 현장에는 눈에 익은 여러 기자들이 바쁘게 전화를 하고 있었고, 무슨 영화의 긴박한 한 장면처럼 눈이 흐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내 몸이 연기 속으로 다가가고 있을 때, 갑자기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였습니다. “지금 병원으로 가고 있단다. 세동병원이라 카더라. 빨리 가바라. 나는 집에 옷 챙겨 가께”

이제 정신이 들었습니다.
병원으로 갔다면, 적어도 이 연기 이 불길 속에서는 빠져나왔다는 뜻.
나는 긴 한숨에 다시 골목에 세워둔 승용차를 타고 이내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10여분 만에 도착한 세동병원 응급실.
치료받고 있는 어머니를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살아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폭발한 건물 내벽과 날까로운 유리 조각에 찔린 어머니의 두 발을 의사가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몸은 떨리고 있었고 통증과 치료에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다행이다 다행이다 수없이 되뇌였습니다.

내 가슴에 감싸인 어머니 얼굴.
어린 나를 수만번도 더 안았을 우리 어머니.
그러나, 내가 어머니를 안은 건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



 

 

 

 

20년 넘게 살아 온 수성구 수성3가.
어머니는 여느 때처럼 그 목욕탕에 가셨고 날벼락 같은 사고를 겪으셨습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목욕탕 천정이 무너져내렸고, 온 바닥이 파편으로 뒤덮였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연이어 무너지는 것을 피해 2층 계단으로 내려왔고, 피투성이가 된 발과 파편으로 상처가 많이 났습니다.

상처 난 어머니의 맨몸을 어느 동네 아주머니가 옷으로 감싸주신 뒤, 아버지에게 대신 전화를 걸어 다급함을 알려주셨다고 합니다.

기자가 되어 이런 저런 현장을 다녔지만, 피해자 이름에 내 가족이 적힌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사고 현장의 첫 느낌은, 아찔했던 대구지하철 참사 때 본 검은 연기와 상처들 그대로였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그들 피해자와 가족의 아픔을 막연하게 얘기하지는 않았나 되돌아봅니다.
“이만하기 정말 다행이다”며 위로하지만, 그 사고로 숨지거나 더 큰 상처를 받은 피해자와 그 가족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혼자 있으니 그 참상의 기사를 제때 쓰지 못했고, 뒤늦게나마 이렇게 그 아픔의 기억을 남깁니다.

난생 처음 안아 본 어머니...
이런 일만 아니다면, 장난 삼아라도 가끔은 꼭 안아드려야겠습니다.

글.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사진 제공. 브레이크뉴스 대구경북 이동욱 기자

(이 글은, 2005년 9월 6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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