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그 치유의 끝이 있을까...”

평화뉴스
  • 입력 2005.11.0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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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처음 열린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
“성폭력 생존자의 힘겨운 말떼기, 그리고 나를 다시 온전히 사랑할 때까지...”


지난 10월 22일, 대구에서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가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이날 행사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이 겪은 아픔을 드러내고 서로 상처를 보듬었다고 합니다.
다만, 행사 특성상 시간과 장소, 참여자 등 모든 내용이 비공개로 진행됐고 언론에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행사를 마련한 [대구여성의전화]에 부탁해 그 날의 이야기를 글로 대신 전합니다 - 평화뉴스.



지난 10월 22일, 계명대학교 동서문화관에서 오후 3시부터 늦은 10시까지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서는 성폭력생존자의 시와 그림, 원예작품 전시회, 한지수첩 만들기, 책.비디오 전시회, 생존자 치유에 도움 되는 말 남기기, 은박호스로 만들어진 나무장식아래 한지와 철사로 직접 만든 등, 다양한 천으로 아늑하게 장식하고, 따뜻한 천으로 꾸민 이야기 방, 쉬는 방이 있는 사전행사에 이어, 드디어 오후 5시 ‘치유를 위한 명상’의 시간을 갖고, 성폭력 생존자의 용기 있는 힘겨운 말떼기가 시작되었다.

따뜻한 60여명의 시선을 받으며 미리 말하기를 신청한 참여자 두 명이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었다.
두 명의 생존자의 경험에 이어 일곱 명의 생존자들이 즉석에서 자신의 피해경험을 말하겠다며 신청을 하고 한명씩 무대로 나섰다.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 전시물...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 전시물...
말하기 참여자로 미리 신청했던 생존자 K씨는 행사장 곳곳에서 자신이 배려 받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다는 말로 시작했다. K씨는 고등학교 시절 성폭력 피해를 경험하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무가치한 존재로 존중받지 못할 존재라는 생각으로 가해자와 결혼까지 하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면화된 순결이데올로기 하에서 수치스러움과 자기비하에서 견디지 못했던 경험을 드러내었다. 자신의 피해경험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치유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얘기를 꺼내려고 하니 또 눈물부터 난다는 얘기에서 성폭력 생존자의 치유의 끝이 있는가 라는 슬픔이 느껴졌다.

또 다른 생존자는, 어린 시절 동네아저씨로부터 성폭력을 경험하고 부모에게 알렸을 때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야 한다’ 는 엄마의 말에서 수치심을 느꼈다고 한다. 뭔가 흠이 있다고 생각하고, 왠지 모를 더러움 같은 것이 습처럼 따라 온다고 생각해 참 힘들었는데, 이제는 온전히 나로서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라는 희망적인 얘기를 전하였다.

상처받은 이들의 아픔이 담겨 있다...
상처받은 이들의 아픔이 담겨 있다...
그러자 누군가 무대로 나와 말을 한 참여자에게 꽃다발을 주고, 포옹을 하며 축하해 주어 함께한 모든 이들도 가슴이 따뜻해졌다.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단 한 번도 털어 놓을 수 없고, 들을 수 없었던 가슴 깊은 곳에 숨겨 놓았던 고통스러운 얘기를 눈물로 쏟아냈을 때 청중석 곳곳도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모두 그 상처를 자신의 것으로 함께 나누는 감동의 도가니였다.

점점 하나 되어 가는 고조된 분위기로 행사시간만 더 주어진다면 밤이라도 샐 것 같았지만, 아쉬운 시계를 탓하며 즉석신청접수는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내일은 당신을 죽이리라, 마음에 마음을 새겼어’ 로 시작되는 가사의 ‘증오는 나의 힘’ 과 ‘봄날이 오면’의 힘찬 노래공연에 이어 ‘살아남은 목소리, 푸른 하늘을 날다’ 시낭송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꽃처럼 피어나는 새봄을 장식하는 퍼포먼스로 흩뿌려지는 꽃송이 속에서 듣기 참여자, 말하기 참여자 모두 하나 되는 집단치유의 경험을 가슴에 담는 아름답고,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자원봉사단, 기획단으로 함께 했던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얘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하지 못했다며, 다음엔 꼭 함께 나누고 싶다며, 아쉬운 마음을 전하기도 하였다.


정리하면서, 우리가 이 행사에서 생존자로 부르는 이유는, 성폭력 피해자가 지닌 약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견디기 힘든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생존자로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주체적인 존재로서 보자는 것이다. 혹자는 생존자라는 용어에 전쟁터 갔다 온 것도 아닌데, 성폭력 당하면 죽으라는 얘기도 아닌데 왜 생존자라는 말을 쓰냐고 의문을 제기하지만, 우리 사회문화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더 크나큰 상처로 본다. 그래서, 그 상처를 드러내고 함께 나누고 공감하는 장들이 지역에서 많이 만들어져, 생존자들이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대부분의 피해 생존자가 남성에게 받은 상처들이어서 생존자의 배려차원에서 남성은 입장을 불가하였고, 행사날짜와 장소를 비공개하였다. 그러나, 성폭력 없는 세상을 위해 앞으로는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성폭력 피해를 말할 수 있는 사회문화가 되도록 더욱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글. 허복옥(대구여성의전화 인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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